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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속의 性ㅣ이혼에 대한 예수의 견해

결혼은 신의 뜻 실천 인간이 함부로 파괴 말라

바리새인들 모세 이혼법 오해 따끔한 질책 … 십계명 중 두 계명 할애 ‘가정 지키기’

결혼은 신의 뜻 실천 인간이 함부로 파괴 말라

결혼은 신의 뜻 실천 인간이 함부로 파괴 말라
이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이미 이혼을 경험했거나 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아픔을 겪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혼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고 거기에 대해 할 말도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언급하기에 여간 조심스러운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혼이나 이혼 위기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물고 있는 상처를 도지게 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회 문제였고 지금도 심각한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이혼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어보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가 갈릴리 지역을 떠나 유대 지경(地境)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서 백성들을 가르칠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아내를 내버리는 것이 옳으나이까?”

‘이혼 증서’ 써준 것은 여성 인권 보호해주려 한 것





여기서 옳으냐는 말은 바르다는 의미보다 법적으로 허용이 되느냐는 의미가 강하다. 표준 새 번역은 이런 의미를 살려 이 구절을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바리새인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정말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상대방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이 내려놓은 결론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자기들의 결론과 어긋나는 대답을 하면 꼬투리를 잡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예수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종교 교육을 담당하는 두 계열의 랍비 학교가 있었다. 하나는 힐렐(Hillel)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삼마이(Sammai) 학파이다. 삼마이는 원래 힐렐의 수제자였으나 나중에 스승의 노선에서 이탈했다. 힐렐 학파는 율법을 해석할 때 좀더 융통성 있게 해석하였고, 삼마이 학파는 될 수 있는 대로 엄격하게 해석하였다.

모세 오경에서 대표적인 이혼법인 신명기 24:1-4에 대한 해석에서도 힐렐 학파와 삼마이 학파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었다. 그 이혼법 첫 조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결혼은 신의 뜻 실천 인간이 함부로 파괴 말라
여기서 ‘수치되는 일’을 과연 어떤 성격의 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이혼 사유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게 된다.

삼마이 학파는 이혼은 간음 이외에 다른 사유로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엄격하게 해석하는 반면, 힐렐 학파는 간음과 같은 심각한 사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성실치 못한 행실도 이혼 사유가 된다고 폭넓게 해석하였다.

그런데 신명기 22장의 간음자 처벌법에 따르면 간음한 남녀는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으므로 간음은 이혼 사유가 아니라 사별의 이유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혼법의 ‘수치되는 일’은 간음을 의미한다기보다 그외 다른 불성실한 행실을 가리킨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힐렐 학파의 해석이 더 타당성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해석하다 보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 식으로 남성 위주로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다시 말해 하찮은 것을 꼬투리 잡아 이혼 사유라고 합리화하였다. 그들은 이혼 증서를 써주는 법적 절차만 밟으면 어떤 일이든 꼬투리로 삼아 아내를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 이혼에 관한 질문을 던져 예수가 힐렐 학파의 견해를 지지하는지, 삼마이 학파의 견해를 지지하는지 시험해본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여기서도 ‘뿔 사이로 피하기’ 논법을 구사했다. 힐렐 학파나 삼마이 학파나 다 같이 존경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모세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쓸데없는 논쟁에 휩쓸려 들지 않고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예수가 오히려 그들에게 반문하고 있다.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명하였느냐?”

그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내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이 모세를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해주었다.

“너희 완악함으로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이혼 증서를 써주어 아내를 내보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남자들이 완악하여 함부로 아내를 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제지하기 위해 일정한 법적인 절차를 밟게 한 것이다. 모세 율법이 있기 이전에는 여자들이 남자에게서 버림받고 이혼을 당해도 다른 남자와 재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혼을 했다는 증빙서류가 없으므로 버림을 받아도 여전히 이전 남편의 소유처럼 살아야 했다.

이렇게 남자들이 아내를 함부로 버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혼 증서를 써주어 내보내라고 한 것이다. 이혼 증서에는 ‘보라, 그대는 어느 누구와 자유롭게 결혼해도 좋다’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성경에서 아내를 내버린다고 할 때 ‘내버린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루오(απολυω)’는 원래 ‘해방하다, 놓아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혼 증서는 여성의 인권을 보호해주는 해방문서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즈음도 간음하거나 불성실한 행실을 했다는 이유로 아내를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끈질기게 괴롭히면서 이혼은 안 해주는 남편들이 더러 있다. 비록 아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런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은 지옥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이혼은 그 여자에게 수치이긴 하지만 해방이기도 하다.

이혼의 위기 닥쳐오면 결혼의 근본 의미 생각해야



이와 같이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주라고 한 것은 남자들의 완악함으로 인해 여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지, 이혼을 장려하기 위해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은 이혼을 합리화하는 데 모세 율법을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도 이혼법이라는 것은 당사자 일방의 완악함과 간교함으로 다른 일방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이혼을 대폭 허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혼법이 있기 때문에 그 법적 절차에 따라 이혼을 하면 되는가 보다 하고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 모세의 이혼법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후 결혼의 근본 의미에 관하여 창세기 말씀을 인용해 풀이하였다.

이혼의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사람들은 대개 이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혼의 절차에 대해 따지기를 잘한다. 그런 때일수록 결혼의 근본 의미로 돌아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우리 인간은 신의 뜻 가운데 창조된 피조물이고, 부부는 그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일생 동안 서로 돕는 배필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제정된 결혼은 인간이 함부로 파괴할 수 없는 신성한 제도이다. 십계명에도 결혼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두 계명이나 할애되어 있다. ‘간음하지 말라’(제7계명),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제10계명).

간음은 가정을 파괴하고 가족 구성원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범죄다. 하지만 비록 배우자가 간음을 했다 하더라도 결혼의 근본 의미로 되돌아가 서로 용서하고 가정을 끝까지 지키는 부부는 그들이 겪은 고통만큼이나 위대하다. 위대한 신의 사랑이 거기에 있기에.



주간동아 2004.10.28 457호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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