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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그들은 ‘저항자’인가 ‘비겁자’인가

베트남 전쟁 중 캐나다로 간 미국인 논쟁 재연 … 기념물 건립 추진 계획 미국서 ‘발끈’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그들은 ‘저항자’인가 ‘비겁자’인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베트남전 당시 약 10만명의 미국 청년들이 전선 투입을 앞두고 캐나다로 일종의 ‘망명’을 했다. 징집영장을 받기 전에 미리 건너간 사람들도 있었고, 영장을 받은 뒤 입영하지 않거나 입영 뒤 부대를 이탈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도 있었다. 캐나다에 도착 직후 이들은 정당하지 못한 전쟁을 피해 건너왔다고 주장함으로써 난민 자격으로 영주권을 얻어 정착했다. 여러 해 뒤 미국 정부의 사면을 통해 일부는 돌아갔고, 나머지는 아예 캐나다인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들 ‘청년 망명객’이 과연 양심의 결정에 따라 영원히 고국에 못 돌아갈 것을 각오하고 이국살이를 택한 용기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중대한 시기에 국민의 의무를 팽개친 비겁한 사람인가.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한(1973년)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문제로 논쟁이 뜨겁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 문제가 다시 타오른 곳은 캐나다의 한 소도시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남쪽, 미국과의 국경 가까운 곳에 넬슨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인구 약 1만명인 넬슨은 19세기 말 광산촌이었으나 지금은 예술인·공예가들이 많이 사는 고장이자, 베트남전 당시 북으로 온 미국인들이 다수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주민의 성향은 이념 면에서 진보적이다.

난민 자격 10만여명 국경 넘어

‘우리의 귀로(Our Way Home)’라는 이름의 한 민간단체가 이 도시에 베트남전을 피해 온 미국인과 이들을 도운 캐나다인을 상징하는 동상을 2006년까지 건립하고 그 제막식 때 음악회 등의 기념행사를 열겠다는 계획을 9월 초 발표했다. 이에 앞서 2002년 미국의 유명한 다큐멘터리영화 제작자 마이클 무어가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베트남전 당시 캐나다로 온 사람들을 위한 기념물이 캐나다에 세워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무어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 수행을 비판하는 ‘화씨 9/11’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이다.



동상 건립 계획이 미국에 알려지자 많은 미국인, 특히 베트남전 참전자와 우파적 성향의 사람들이 달아올랐다. 이에 항의하는 이메일이 홍수처럼 넬슨에 밀려왔다. 대부분 화난 사람들이 보낸 것이었지만 더러는 좋은 일이라는 격려와 함께 동상이 세워지면 꼭 가보겠다는 내용의 이 메일이었다.

회원이 240만여명인 미국의 해외참전용사회가 계획 실행 저지에 앞장서고 있다. 회장인 존 퍼게스는 “전쟁에 대해 누구나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비겁자들을 기념함으로써 전사들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계획 저지를 위해 외교력을 행사해주도록 청원했다. 이 같은 반론과 이에 대한 대응론이 지금 북미 신문들의 오피니언란을 장식하고 있다. 당시 캐나다로 왔던 사람들이 앞장서 대응론을 만들고 있다.

이 시비는 현재 진행 중인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 내 여론과 맞물려 돌아가는 양상이라 부시 행정부로서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센 미국 정부라 하더라도 캐나다 땅에서 벌어지는 이 일을 막을 수단이 마땅치 않고, 캐나다 정부 역시 민간이 사유지에 조형물을 세우는 것에 대해 간여하기 어려워 보인다.

캐나다는 당초 이들 미국 청년이 국경을 건너 올 때부터 골머리를 앓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캐나다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미국의 눈치를 예민하게 보아야 하는 처지다. 난민을 폭넓게 수용하는 나라라는 국가 이미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대단한 ‘줄타기’ 기량이 필요했다. 이 나라는 베트남전에 파병하지 않았고 미국인 징병 기피자와 탈영병들을 대거 수용하기까지 했으나 그 이면에는 고심참담이 깔려 있었다.

이들 미국인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양하다. 이 많은 호칭들을 통해 전쟁의 일그러진 모습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지금껏 ‘전쟁저항자(war resister)’라고 부르는 반면, 베트남전을 지지한 미국인들, 특히 참전자와 그 가족들은 이들을 ‘비겁자(coward)’라 단정한다. 미국 정부는 법률적인 면에서 이들을 ‘징병기피자(draft-dodger)’와 ‘탈영자(deserter)’로 구분해 불렀다. 캐나다에서는 이들을 ‘징집연령이민자(draft-age immigrant)’라고 점잖게 부르기도 했으나 언론매체는 보통 ‘신종난민(new refugee)’이라고 호칭했다.

신종난민들은 주로 육로로 국경을 넘어왔다. 수십개에 이르는 양국 국경 통과지점에는 입국자 관리와 통관 업무를 하는 양국의 검문소가 국경을 사이에 두고 하나씩 설치돼 있다. 검문소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든 자국을 떠나는 사람은 통제하지 않고 자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만 검문한다. 게다가 두 나라 국민은 상호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캐나다 땅을 밟기까지에는 아무런 위험이 없었다.

문제는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해 영주권을 주느냐 마느냐다. 이는 전적으로 캐나다 정부의 재량이다. 영주권 없이 오래 머무는 사람은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되고 합법적 취업과 의료보장, 공립학교 입학자격 등에서 제외돼 사람답게 살기 어렵다.

이라크전과 맞물려 미묘한 파장

급증하는 미국인 청년 입국자의 처리 방침 중 단순 기피자들에 대해서는 캐나다의 태도가 그런대로 분명했다. 정당하지 않은 전쟁을 피해왔다고 당사자가 주장하는 이상 이를 반박하기 어렵다고 보고 대부분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탈영병에 대해서는 이 나라 정부가 확실한 의견을 끝내 정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연방정부 이민심사관의 개별적 재량에 맡겨졌다.

탈영병 입국자 처리에 관한 토론 내용을 담은 1969년 각의의 회의록이 비밀 시효가 지남에 따라 2000년 공개됐다. 당시 각료들의 발언들 중에는 “미국에 굴종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탈영병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가 하면, “캐나다 탈영병은 처벌하면서 미국인 탈영병을 받는 것은 모순이다” “미국에 대들어야 하는 다른 상황도 많은데 굳이 이런 일로…” 등의 반론도 나온다. 한 각료는 단순기피자는 대개 중산층 백인 가정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청년들인 데 비해, 탈영병 중에는 흑인이나 못사는 집 자녀들이 많다는 점을 들어 ‘국익’을 위해 양자를 차등대우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미국 부유층 자녀들 중에는 학업을 이유로 징집연기 신청을 내는 등 이런저런 편법으로 전쟁을 비켜간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못사는 집 출신이 더 많은 비율로 전장에 투입됐다. 당시 징집연령이었고 뒷날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은 영국 옥스퍼드대학으로의 유학을 통해, 지금의 부시 대통령은 현역복무를 하지 않는 방위군에 편입됨으로써 각각 전쟁을 비켜갔다. 이와 반대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케리는 전선에 나가 훈장을 받고 귀국한 뒤 반전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캐나다로 온 미국 청년들 중에는 여자친구 혹은 아내를 동반한 경우도 많았다. 이들까지 합해 약 12만5000명의 신종난민이 캐나다에 머물렀다. 그 시절 캐나다인들이 이들을 썩 반기지는 않았다. 이들의 이 나라 정착을 조직적으로 지원한 세력은 학생운동권 정도에 그쳤다.

1977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 기피자와 탈영병을 사면함으로써 캐나다에 온 신종난민들 중 절반가량은 길게는 10여년, 짧게는 수년간의 이국 생활을 마치고 되돌아갔다. 캐나다 잔류를 택한 사람 중 상당수는 지금 지도적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신종난민 중에는 이념과 양심을 우선적 잣대로 삼아 캐나다행을 결행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전장의 공포가 더 결정적 요인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 양자를 구분하기는 어렵겠지만 존 케리처럼 일단 전장에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반전 논리나 징집을 거부해 미국 내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의 목소리에 비해, 캐나다로 왔던 사람들의 그것에는 힘이 덜 실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간동아 2004.10.28 457호 (p56~57)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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