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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건강검진? 소용없어요

방사선 촬영 부실 등 형식적 검진 여전 … ‘이상 없음’ 판정 불구 뒤늦게 중병환자 속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무료 건강검진? 소용없어요

무료 건강검진? 소용없어요

70mm 간접촬영용 필름(왼쪽)과 직접촬영용 필름. 직접촬영용 필름이 30배나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보험공단)이 실시하는 무료 건강검진이 각종 질병의 조기 발견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특히 폐질환 여부를 판정하는 흉부 방사선 촬영의 경우, 일반 병원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폐기한 가로 세로 70~ 100mm짜리 필름을 이용한 간접촬영을 실시하고 있어 검진 자체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지적과 함께 보험료만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 해 1000억원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전 국민 건강검진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해 1000억원 투입 실효성 의문

서울에 사는 김영진씨(가명·56)는 9월23일 비소세포성(非小細胞性) 폐암 4기 확정 진단을 받았다.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돼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 담당 의사는 김씨에게 “약물 투여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며 식이요법과 요양을 권했다. 자주 몸이 쑤시고 마른기침이 났지만 건강검진에서 늘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아왔던 터라 건강을 자신했던 김씨는 갑작스러운 말기암 선고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격년마다 나라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을 받아왔어요. 올 6월에 한 검사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기에 철썩같이 믿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차라리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암을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 찾아가 당시 필름을 살펴본 김씨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병원 측에서 검진 결과라며 내놓은 폐 사진 필름이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크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 김씨는 “그동안 이런 검진 결과를 믿어왔다니, 가슴을 칠 도리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3월23일 발표한 건강검진 실시 기준에 따르면, 보험공단이 하는 무료 건강검진에서 흉부 방사선 촬영에 사용하는 필름은 가로 세로 100mm짜리 간접촬영용 필름이다. 출장검진 시에는 가로 세로 70mm짜리도 사용할 수 있다. 김씨가 촬영한 것이 바로 이 필름으로, 크기가 일반 병원에서 사용하는 가로 14인치, 세로 17인치짜리 직접촬영용 필름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크기가 작은 만큼 폐질환에 대한 진단은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내 한 중소 병원의 방사선과 전문의는 “70mm짜리 필름의 경우 크기가 작고 해상도도 낮기 때문에 폐에 있는 작은 종양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돋보기로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인체를 크기대로 찍어내는 직접촬영 필름과는 차이가 큰 게 사실”이라며 “이 필름을 이용해 폐 이상을 조기 검진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복지부의 ‘건강검진 실시 기준’은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진단방사선과나 결핵과 전문의 2인 이상이 복수로 판독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여러 명이 본다고 해서 작은 필름이 크게 보이느냐”며 문제의 본질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료 건강검진? 소용없어요

건강검진 대상자들이 혈압 측정을 하고 있다.

방사선과 전문의들이 지적하는 간접촬영 필름의 또 다른 문제점은 낱장이 아닌 롤 형태로 되어 있다는 점. 필름 한 롤을 촬영기에 걸어놓은 뒤 일련번호대로 촬영해나가기 때문에 각 장마다 피검진자의 이름을 적게 돼 있는 직접촬영 필름에 비해 촬영 과정의 오류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필름이 섞이거나 일련번호가 잘못 기록될 경우, 피검진자는 전혀 다른 사람의 폐 사진을 자기 것으로 받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간접촬영기 심각하게 낡은 중고”

한 롤로 통상 수백명의 사진을 찍기 때문에 촬영 도중 실수가 생긴다 해도 오류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한 방사선과 전문의는 “촬영 도중에 필름이 뒤틀리거나 기기가 고장 나면 선명도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재촬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촬영 필름의 오류는 판독 과정에서 알 수 있는데, 직접촬영을 한 경우라면 필름에 이름이 적혀 있는 당사자를 찾아내 다시 찍을 수 있지만 간접촬영의 경우 현실적으로 재촬영이 불가능하다. 일련번호로만 기록돼 있는 수백명의 촬영자를 찾아내 일일이 재촬영을 요구하느니 차라리 모두에게 ‘이상 없음’ 소견을 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고백했다.

복지부 지침에는 ‘사진 불량인 경우 수검자에게 통보하여 반드시 재촬영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를 충실히 지키는 검진 기관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 의사는 “보험공단 건강검진의 경우 이상을 굳이 발견하려 하면 복잡하고 혼란만 생긴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없으면 모두 정상이라고 본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집단 건강검진이 있는 날이면 하루에 수백장씩 필름을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보험공단의 검진 결과만을 믿고 건강을 확신해온 많은 서민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고백이다.

현행 흉부 방사선 촬영 방식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간접촬영 방식의 또 다른 단점은 70mm나 100mm 필름용 촬영기가 이제는 일반 병원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아 대부분 상당히 낡은 상태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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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대상자들이 채혈을 하고 있다.

개인 부담으로 흉부 방사선 촬영을 하는 이들에게 병원은 예외 없이 직접촬영기를 사용한다. 그것이 폐의 이상을 진단하는 데 더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촬영을 통해 질환이 의심되면 CT나 MRI 같은 정밀검사 방식도 동원한다. 하지만 보험공단 건강검진의 경우 예외적으로 간접촬영기를 사용하는 것. 정부가 70mm 간접촬영용 필름 가격에 맞춰 진단비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방사선과 전문의들은 “일부 후진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간접촬영기를 사용하는 나라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기계들은 다 심각하게 낡은 중고”라고 지적한다. 한 의사는 심지어 “70mm 필름의 경우 폐가 제대로 보이는 사진이 거의 없다고 할 만한 수준”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보험공단이 이처럼 문제 많은 간접촬영 방식을 고집하는 유일한 이유는 가격이다. 70mm 필름의 한 명 촬영분 가격이 129원, 100mm는 250원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해 직접촬영용 필름 가격은 한 장당 900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올해 건강검진 대상자만 전국적으로 1652만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보험공단으로서는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액수다.

무료 건강검진? 소용없어요

병원에서 흉부 방사선 촬영을 하고 있는 피검진자.

복지부와 보험공단은 부정확한 진단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올해 건강검진부터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70mm 필름을 출장검진 시에만 예외적으로 사용하게 하고, 가격이 2배가량 비싼 100mm 필름으로 전량 교체토록 했다. 하지만 직접촬영이 아닌 한 폐질환 진단 능력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오히려 70mm 필름용 기계를 사용하던 중소 병원들이 이 기계를 폐기하고 한 대당 5000만원이 넘는 100mm용 기계를 새로 구입해야 하는 부담만 생겼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흉부 방사선 촬영을 하는 모든 병원은 이미 직접촬영기를 갖고 있다. 보험공단의 건강검진만을 위해 평소에는 사용하지도 않는 간접촬영용 기계를 또 사야 한다는 말이냐”며 “당장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직접촬영을 마다하고 100mm 간접촬영을 고집하는 보건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가입자 수검률 20% 안팎 불과

이에 대해 보험공단 측은 “70mm용 필름과 100mm용 필름은 크기와 가격 면에서 두 배나 차이가 나고, 100mm 필름 정도면 직접촬영과 별 차이 없는 수준의 진단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많다”며 “보험공단은 정확한 건강검진을 위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수단을 찾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보험공단의 건강검진이 부실한 운영 관리로 질병의 조기발견 기능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끊임없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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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을 제외하고는 모든 항목에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은 김준규씨의 보험공단 건강진단서. 그러나 김씨는 며칠 뒤 위암 및 직장암 선고를 받았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김준규씨(66)도 건강검진 피해자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김씨는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라온 사람. 건강검진도 매번 빠지지 않고 받아왔다. 하지만 늘 ‘이상 없음’ 판정을 받던 그는 지난해 9월, ‘3만원만 내면 위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검진 병원 관계자의 말을 듣고 위내시경 검사를 했다가 암 선고를 받았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보험공단의 ‘건강상 아무 이상 없다’는 통지서와 해당 병원의 ‘위암 진단서’가 김씨에게 전해진 것이다.

더 심각한 일은 수술을 위해 입원한 병원의 정밀검사 결과 드러났다. 암세포가 직장에도 퍼져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항문이 막힐 상황이었다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김씨는 부랴부랴 직장을 모두 도려내고, 위의 5분의 4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암수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씨는 “만약 추가 비용을 들여 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하다”며 “추가검진 항목을 필수항목으로 넣어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상 없음’ 진단을 내리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민원 홈페이지에 ‘건강검진의 형식화를 어디에 고발해야 하나요’라는 글을 올린 이수현씨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이씨는 “평소 건강 하나만은 자부하던 아버지가 7월26일 담낭암 진단을 받았다. 그것도 간까지 다 퍼져 손도 쓸 수 없는 말기라고 한다”며 “2004년 5월28일 건강검진 때 추가 비용을 들여 초음파 검사까지 받았는데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두 달 만에 말기 암이라니,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분노를 토해냈다. 이씨의 아버지는 현재 병원에서도 달리 손쓸 방법이 없다고 해 집에서 식이요법으로 요양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공단의 건강검진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낮은 수검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보험공단은 건강검진에 대해 ‘질병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를 통해 국민의료비를 절감하고 질병의 사전 예방을 통해 국민건강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소개하지만, 정작 건강검진을 받는 국민들은 해마다 대상자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 특히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받게 되는 직장가입자를 제외한 지역가입자의 경우에는 건강검진을 받은 비율이 2001년 19.1%, 2002년 17.8%, 지난해 25.1% 등으로 매해 20% 안팎에 불과하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설애자씨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 “키, 몸무게, 시력 같은 검사 항목을 체크하기 위해 오랫동안 줄 서서 기다려야 하고, 의사들에게 뭣 좀 물어보려고 해도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검사를 위해 뭐 하러 시장바닥 같은 곳에 가서 하루 종일 고생하느냐”고 말했다.

보험공단이 수검 비율을 높이기 위해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심지어 출장 검진차까지 동원해도 실적이 매해 제자리걸음인 것은 일반 국민들의 건강검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은 “전 국민 건강검진이라는 허울 속에 국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이 보험공단 건강검진의 현실이라면 제도를 대대적으로 수술하는 수밖에 없다”며 “나이에 맞게 반드시 필요한 검진 항목을 정하고 불필요한 검사들은 축소하는 방법, 국민들이 일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좀더 질 높은 진단이 가능하도록 검사 시설과 기계를 교체하는 방법 등 다양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04.10.28 457호 (p42~44)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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