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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추석, 아! 아버지 | 연극배우 | 손 숙

증오도 그리움도 한순간 남은 생 편안하시길 바랄 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증오도 그리움도 한순간 남은 생 편안하시길 바랄 뿐

증오도 그리움도 한순간 남은 생 편안하시길 바랄 뿐
“아버지는 1년에 한두 차례 추석, 설 때나 볼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어색하고 불편했죠. 어린 마음에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연극배우 손숙씨(61)는 어린 시절 추석날을 떠올릴 때면 늘 기억 한편으로 먼발치에서 훔쳐보던 아버지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손씨가 태어나기 전부터 서울에서 딴살림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명절 때만 고향집을 찾았고, 어머니와는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다음날 ‘바람처럼’ 떠나버리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마주 대하는 건 언제나 ‘어색하고 낯설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종손이던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어른들은 잔치 분위기였어요. 할머니는 어떻게든 우리 형제들을 아버지 가까이 있게 하려고 애쓰셨지요. ‘아버지 진지 잡수시라고 해라’ ‘아버지 담배 피우시게 재떨이 갖다드려라’ 하시며 계속 등을 떠미셨지만 우리는 아버지 얼굴조차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어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 속이 상한 어머니는 어른들이 보지 않는 집안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곤 하셨죠.”

철이 들고부터 추석을 떠올리면 늘 마음 한쪽이 아렸던 것은, 오랜 세월 그리워한 아버지를 눈앞에 두고도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속앓이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남 밀양의 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손씨의 아버지는 금지옥엽 온 집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다 15살 때 집안에서 정해준 동갑내기 색시와 혼례를 치렀다. 손씨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이 부부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버지는 방학 때나 집에 들렀고,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하던 어머니와 살뜰한 정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게다가 부모님이 열아홉 되던 해, 손씨의 언니가 태어난 뒤 아버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다.



“일본에 가기 전날 밤 늦게 사랑에서 건너오신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잡고 함께 도쿄로 떠나자고 사정을 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신부가 신랑을 따라 야반도주할 배짱이 있었겠어요. 어머니는 눈물로 그 애원을 뿌리치셨지요. 두 분의 애틋한 시간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 새로운 학문과 문화를 배운 아버지는 시골에서 4대의 제사를 모시며 종부로 사는 아내를 더는 찾지 않았다. 도쿄에서 새로 만난 ‘신여성’과 살림을 차렸고, 일본에서는 또 다른 아버지의 자식들이 태어났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실상 ‘남남’이 됐다.

언니와 여덟 살 터울로 손씨가 태어난 건 ‘종손이니 어떻게든 아들은 낳아야 한다’는 집안 어른들의 강권 덕분이었다. 억지로 붙들려와 어머니와 합방을 한 아버지는 그날로 일본행 길에 올랐고, 2년 뒤 마침내 남동생이 태어난 후부터는 ‘종손’의 부담 없이 자신의 생을 살았다.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서울서 살다가, 그 부인과 4명의 자녀를 남겨둔 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여성과 또 한 번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일본에 정착한 아버지는 손씨의 결혼식에도 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건 그 다음이었다. 손씨가 25살이던 1968년, 언니와 함께 일본으로 아버지를 찾아간 것이다. 어린 시절 명절 때 고향집에서 마주쳤던 이후로 처음이었지만, 그는 일본 공항에서 한 중년 신사를 보는 순간 그가 아버지임을 알아차렸다. 그곳에서 여배우 출신의 새어머니와 두 아들을 낳고 살던 아버지는 다 큰 딸들에게 자신의 삶을 이해시키려 애썼다.

자신은 결코 바람둥이가 아니라는 것, 일본에서 만난 신여성과 정말 사랑했지만 어머니와의 이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부득이 두 집 살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 후 일본인 어머니를 만나 다시 사랑이 싹텄고 이제는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

그 후 아버지와 딸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종종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94년 한평생 아버지만을 기다렸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손씨는 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셨다.

일본인 부인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는 이제 손씨가 찾아갈 때마다 “괜찮다. 바쁜데 오지 마라”며 미안한 기색을 보인단다. 한때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하고, 또 가슴 아프게 했던 멋쟁이 신사는 이제는 늙고 병든 여든여덟의 노인이 됐다.

손씨는 그 아버지를 뵐 때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저희가 다 알아서 잘할 테니 모두 맡기세요”라고 말한다고 했다. ‘모두 다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진정 바라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454호 (p46~46)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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