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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

‘김기덕 감독’이 사는 법

낯선 영상미학, 진실을 벗기다

‘김기덕 감독’이 사는 법

‘김기덕 감독’이 사는 법
빈집’에 사는 ‘악어’, 그는 ‘악어’다. 그래서 그의 주변은 늘 습기로 가득 차 있다. 먹이를 찾는 매서운 눈을 보라. 그는 늘 공격적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공격성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의 자기 방어적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벗어나 ‘파란대문’을 열고 처음으로 ‘섬’에 갔을 때, 그것은 위험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낯설고, 기이하고, 병적인 그의 모습에 경악했다. 그는 물고기의 살을 뜯고 다시 물속에 놓아주거나, 전선을 물고기에 연결해 고문하거나, 아니면 낚싯바늘을 목구멍 속으로 집어삼켰다. 그것은 ‘실제상황’이었다.

맨땅에 헤딩식 영화감독 데뷔 … 첫 작품부터 관객들 경악

그가 사람들을 향해 쓰는 편지는 언제나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왔고, 그를 ‘나쁜 남자’라고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졌으며, 그렇게 상처받을 때마다 그는 다시 물가로 돌아가 ‘해안선’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 들어 있는 태아처럼, 그는 물속에 있을 때 상처받지 않고 가장 따뜻함을 느낀다. 물 위에 절을 짓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오는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그 자신, ‘사마리아’처럼 구원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빈 집’에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편제’의 100만 신화가 이루어진 1993년, 무명 청년 김기덕은 2년간의 파리 유랑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둔 뒤 야간 전수학교를 거쳐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그는, 단기 하사로 7년 동안 복무했다. 해병대 생활은 그에게 너무나 잘 맞았다. 군대생활이 체질이 아닐까 싶어 직업군인의 길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제대했다.

그리고 편도 요금만을 마련해서 파리로 갔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충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 체류 2년 동안 그는 한국 관광객들의 가이드를 하며 혼자 그림을 그렸다.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여전히 세상과는 소통 불능이었다. 94년, 한국 영화 시장점유율이 이제 막 20%대로 뛰어올랐지만, 지식인층 사이에서는 한국 영화는 수준 낮아서 보지 않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었다(이름만 대면 알 만한 문화계 모 인사가 당시 나에게 정말 그렇게 말했다).

그때 김기덕은 골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라는 것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지만, 우연히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를 보고 노트에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이 입선했는데 가장 놀란 사람은 김기덕 자신이었다. 그에게, 처음으로 세상이 반응해온 것이다. 그때부터 시나리오 창작 입문서도 사서 읽고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빈 라면 박스에 시나리오가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95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서 그는 ‘무단횡단’으로 대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된 영화사 사장에게 자신이 쓴 또 다른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 영화사 사장은 시나리오를 팔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자신이 직접 영화를 찍고 싶었다. 당연히 영화사 사장은 거절했다.



전문적인 영화 공부는 물론, 영화 찍는 현장도 한 번 가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쓴 시나리오만을 믿고 무작정 감독 하겠다고 했을 때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나 시나리오는 탐이 났다. 팔아라, 못 판다, 이런 똑같은 대화가 날마다 계속되었다. 일주일 뒤, 결국 영화사 사장은 말했다. “그래, 네가 만들어.” 김기덕의 데뷔작 ‘악어’는 그렇게 태어났다. 96년이었다. 한강 둔치에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밑바닥 부랑아들의 삶을 그린 ‘악어’는, 거칠었지만 아름다웠다. 서툴렀지만, 매력이 있었다. 특히 수중 촬영의 엔딩 신은, 김기덕이라는 이름이 한국 영화계에 어떤 파문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갖게 해주었다.

‘악어’는 김기덕 영화의 원형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이후 김기덕 영화는 또 다른 ‘악어’들이다. 사회의 중심에서 소외된 주변부 인물이 주인공이라거나, 그의 영화에 언제나 어른거리는 물의 이미지, 그리고 가장 논란이 된 여성에 대한 가학적 태도 등 ‘악어’는 김기덕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프랑스 올 로케이션으로 찍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언론으로부터 차가운 반응을 받은 뒤, 김기덕은 자신의 영화를 혹평한 기자를 비난하는 글을 전 언론사에 팩스로 보냈다. 기자들의 반응은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 이런 식이었다. 그가 이제는 다시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무기, 시나리오를 써서 당시 막 새로 생긴 지원제도, 영화진흥공사의 판권담보 융자 3억원을 받아 세 번째 영화 ‘파란대문’을 찍었다. 김기덕이 외부 세계로 알려진 것은 99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파노라마 부문 오프닝작으로 ‘파란대문’이 상영되면서부터였다. 포항의 한 사창가 새장 여인숙을 무대로, 한집에 사는 창녀와 여대생의 갈등과 화합을 그린 이 독특한 감성의 영화를, 유럽의 프로그래머들은 눈여겨보고 김기덕이라는 이름을 메모했다.

‘김기덕 감독’이 사는 법

9월14일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고 돌아온 김기덕 감독(오른쪽)에게 하재봉씨가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다.

연이은 수상 해외서 더 유명인사 지금 모습 잃지 말기를

국내에서 페미니즘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섬’은, ‘공동경비구역JSA’를 제작한 명필름에서 제작에 참여했지만 참담하게 흥행에 실패했다. 거의 대부분의 여성평론가들이 여성에 대한 그의 가학적 태도를 공격했다. 특히 다른 남자와 통정하는 아내를 죽이고 낚시터로 도망쳐 온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낚시터 여자의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차는 장면을 보고 분노했다.

김기덕은 다시 물속 깊숙이 수장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를 구원한 사람은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였다. 2000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섬’이 상영되었을 때, 영화를 보던 여기자 2명이 졸도했다. 남자가 떠나자 여자가 낚싯바늘을 자신의 질 속에 넣고 자해하는 장면에서였다. 영화 상영은 약 2분간 공식 중단되었다. 여기자가 구급차로 실려나간 뒤 다시 영화는 계속되었지만, AP통신을 통해 이 소식은 전 세계에 급파되었다. 국제적으로 그는 문제적 감독으로 떠올랐다. ‘섬’ 이후 김기덕은 ‘수취인 불명’ ‘빈 집’ 등으로 베니스영화제를 세 차례 찾았다. ‘베니스의 권상우’라는 보도가 있을 만큼 그는 그곳에서 유명인사다. 많은 시민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거나 사진 찍기를 원한다. ‘나쁜 남자’와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에도 두 번 진출했고, 결국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받은 그는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 이제 칸영화제 수상만 남겨놓고 있다. 베니스 감독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김기덕은 “로카르노의 표범, 베를린의 곰, 베니스의 사자까지 가져왔기 때문에 동물농장을 차려야 되지 않을까”, “울타리에 종려나무가 필요하다”는 말로 칸영화제 수상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김기덕의 목소리는 여유 있었다. 베니스 시상식에서 시상 직전 임권택 감독에게 예의를 표한 것도 그의 변화 가운데 하나다. 반항아 김기덕이 주류 영화감독의 대표적 인물인 임권택에게 예의를 차리다니. 더구나 그는 점퍼에 모자가 아니라, 비싼 정장 차림이었다. 입장식에서는 모자까지 벗었다. 그의 영화는 그 낯섦으로 여전히 대중에게는 불편하다. 그러나 그는 블록버스터의 유혹을 이겨내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저예산 비(非)스타 제작방식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스타를 쓸 수 없고(제 발로 걸어온 장동건이나 위기에 빠져 있던 이승연의 경우는 예외지만), 영화를 빨리 찍을 수밖에 없다. 김기덕이 또 영화 찍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 벌써 그는 촬영 마치고 편집하고 있다. 길어야 2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영화는 콘티도 스토리보드도 없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들고 머릿속에 있는 그림대로 현장에서 지휘를 한다.

그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들고 난 후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많이 외로워했다. 다음 영화 때는 배우로 캐스팅해달라는 나의 부탁을 그는 언제나 무시한다. 이제는 당신 하는 일이나 잘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런 그가 밉지 않다. 그의 수상을 축하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의 모습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주간동아 454호 (p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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