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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지태 나쁜 거래를 했다”

박용기 전 중정 지부장 “부정축재자 재산 뺏고 사면” … 김씨 유족들 “터무니없는 얘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박정희와 김지태 나쁜 거래를 했다”

“박정희와 김지태 나쁜 거래를 했다”

5·16 직후의 고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 모습.

박용기 전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75)은 박정희 정권에 재산을 강탈당했다고 밝힌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를 수사한 장본인이다. 박씨는 5·16 당시 이한림 장군(1군 사령관)을 직접 체포해 서울로 압송한 ‘혁명 주체세력’의 핵심 인사.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씨의 재산을 몰수하고 김씨를 석방한 것에 대해 반발했다가 박 전 대통령의 눈 밖에 나 ‘권력 핵심’에서 밀려난 뒤 결국 군복을 벗기도 했다.

박씨는 2000년 3월 ‘진주지’에 기고한 글에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김씨 조사를 지시받았다”는 등의 내용을 밝힌 바 있다. ‘진주지’에 실린 박씨의 증언은 ‘재산 강탈’의 정황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김씨 유족은 수사 과정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이 적힌 박씨의 편지를 공개했는데, 이 편지 역시 부당한 수사와 재산 강탈의 정황 증거로 간주된다. 다음은 박씨가 자필로 쓴 편지 내용의 일부.

“좀더 사회 경험과 사회 실정을 알았더라면 김사장님과 저의 관계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 당시 그렇게 조종한 인간들에게 휩쓸려들지도 않았으리라고 믿습니다. 군대생활 17년 동안 일선 지구만 헤맨 탓인가 싶습니다.”

박씨는 또 모 언론과 한 전화통화에서 “박정희 의장에게서 수사 지시를 받았다”고 확인해주었다. 이 언론은 박씨의 증언과 진주지에 기고한 글 등을 근거로 “박씨의 증언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 문제는 이제 ‘강압’이냐 ‘헌납’이냐 하는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정수장학회의 향후 행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주간동아’는 정수장학회가 ‘강탈’됐다는 정황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박씨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강탈’에 무게가 실린 당시 정황을 확인하려 했던 기자에게 그가 쏟아낸 첫 발언은 의외였다.



“단언컨대 나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보냈다는 편지 등이 당시 상황을 왜곡하는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잘못 알려진 사실은 바로잡아야 한다.”

“박정희와 김지태 나쁜 거래를 했다”

박용기 전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

그러나 박씨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단 한 차례도 기자와 인터뷰를 한 일이 없다”면서 모 언론의 기사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러 차례 걸려온 전화에 응대해준 것을 녹취해 기사로 작성했다는 것.

“왜곡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간동아’의 거듭된 취재 요청에 박씨는 결국 “모든 것을 다 밝히겠다”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9월2일 서울 정릉의 한 음식점에서다. 박씨가 언론과의 대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장 만나

박씨와의 인터뷰는 4시간가량 이어졌다. 박씨는 작심한 듯 김지태씨 수사 과정뿐만 아니라 5·16 준비 과정과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일어난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털어놓아 기자를 긴장시켰다.

박씨는 이 인터뷰에서 “김씨에 대한 수사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재산을 빼앗고 죄를 사면한 박 전 대통령과 비리를 저지른 김지태씨가 모두 잘못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와 김지태 나쁜 거래를 했다”

60년대 초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마중 나온 박용기씨(왼쪽에서 세 번째)와 부산지역 실력자들.

김지태씨 재산 강탈 여부와 관련해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재산을 빼앗고 죄를 용서해줬다는 사실 외엔 얘기할 게 없다. 나는 강탈인지 헌납인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서 “재산 몰수 과정에 참여한 관련자들이 대부분 사망해 강탈 헌납 여부를 증언해줄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 전 대통령이 수사 결과를 이용해 개인의 재산을 몰수한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공익재단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재산을 몰수하고 죄를 사면해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도 당시 상황을 소상히 알려줬다고 한다.

-박근혜 대표를 만난 적이 있는가.

“박대표가 만나자고 해서 얼마 전 서울 신사동 박대표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대표와는 어떤 얘기가 오갔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라. 1960년대 어머니(고 육영수 여사)와 함께 부산에 내려왔을 때 내가 동백섬에서 머리칼을 쓰다듬어줬던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하더라. 내가 김지태씨 수사를 할 때 박대표가 11살인가 13살인가 그랬다(박대표는 1952년생이다). 박대표가 당시 일어난 일을 하나도 모르고 있는 게 당연하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소상하게 당시 얘기를 해줬다.”

-박 전 대통령이 김지태씨를 수사하라고 지시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수사는 혁명 세력이 조직적으로 모의해 이뤄진 것인가.

“독자적인 수사였다. 김씨에 대한 수사는 반드시 이뤄져야 했던 일이다. 김씨는 부산 경남 지역에서 부정축재 혐의자 순번을 매긴다면 단연 1위였다. 박 전 대통령이 수사를 잘하라고 지시한 일은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지시는 당연히 해야 할 수사를 잘하라고 챙기는 수준이었다. 지시가 없었더라도 수사는 당연히 진행됐다. 자유당 정권 시절 권력을 이용해 부를 쌓은 김씨에 대한 평판은 지역에서 좋지 않았다. 혐의는 처벌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박 전 대통령은 김지태씨의 비리 혐의를 어떻게 알았나.

“군수기지사령관 시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지태씨의 행태는 지탄받고 있었다.”

-평판이 어느 정도로 나빴나.

“4·19 때 농민, 시민들이 부산일보 앞에 몰려가 시위를 했다. 이들이 시위 장소로 왜 부산일보를 선택했겠나. 권력을 이용한 김씨의 부정축재 때문이었다. 4·19 이후 들어선 장면 정권도 감히 김씨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만큼 김씨의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혁명 세력의 지시가 아니라 독자 판단에 의해서 수사를 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소스는 알려진 것처럼 국제신문이 아니라 부산일보 내부(김지태씨 첫 부인의 인척들)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 유족은 박씨의 이 같은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김씨의 3남 영주씨(59)는 “아버지는 4·19 직후에 부정축재자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다”면서 “5·16 이후 느닷없이, 터무니없는 혐의가 덮어씌워져 부정축재자 명단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평판이 나빴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소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황용주 전 부산일보 주필을 통해 자금을 요청해온 일이 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거사 자금이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박 전 대통령과 황 전 주필은 대구사범 동문으로 가깝게 지냈다. 자금 요청 건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아버지를 찾아온 일이 있는데 아버지께서 여러 가지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그때부터 박 전 대통령과 아버지의 관계가 어긋나게 된 것이다. 터무니없는 혐의를 덮어씌운 표적 수사와 재산 강탈이 사건의 핵심이다. 박씨 주장은 당시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국방위원 신분 이용 농지 헐값 구입”

영주씨는 부산일보 앞 시위와 관련해서는 “부산일보가 모 대학의 비리를 보도한 것을 두고 어용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와 시위를 한 것을 박씨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며 “4·19 혁명 당시 아버지가 사장으로 재직하던 부산일보는 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씨 시신 사진을 1면에 게재하고 마산의 시위 상황을 밖으로 알리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고 밝혔다.

부산일보는 4·19 혁명에서 적지 않은 몫을 했다. 마산 시민들의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 당시 사장이었던 김씨가 부산 문화방송의 주조정실 기능을 부산일보 사장실로 옮겨 송출하게 했다고 한다. 1960년 4월12일자 부산일보 1면엔 충격적인 사진이 실린다. 4·19의 도화선이 된,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군의 주검 사진이 게재된 것이다.

-당시 김씨의 혐의는 무엇이었나. 입증은 됐나.

“입증이 됐으니 재산을 내놓은 것 아니겠느냐. 당연히 모두 확인됐다. 탈세, 농지개혁법 위반 등 여러 가지였다. 농지개혁법 위반은 가난한 농민들을 이용한 사건인데, 김씨는 군에 징발되어 있는 농민들의 전답을 국회 국방위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헐값에 구입해 개인적으로 치부했다. 김씨가 땅을 징발당한 농민들의 원성을 산 것은 그 때문이다.”

김씨 유족이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부산 시내 땅은 10만147평에 이른다. 현재 가치로 1조원이 넘는 금싸라기로 부산진구 개금동 5만평, 남구 대연동 4만평, 해운대구 우동 1만평, 수영구 남천동 300평 등이다. 박씨가 김씨 측이 헐값으로 인수해 치부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곳은 이중 대연동 땅 일부다(‘주간동아’ 452호 ‘부산 대연동 땅 수천억 대박 누가 맞나’ 참조).

그러나 유족의 주장은 다르다. 영주씨는 “아버지는 전쟁 중 군에 사용하라고 땅을 자발적으로 내놓기도 했던 분이다. 토지 매입은 모두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토지 브로커들이 농민들에게 인수한 토지를 아버지가 나중에 구입한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묘한 방법, 부적절한 방법으로 땅을 인수했다는 등의 일부 농민들의 주장도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고 김지태씨 역시 62년 4월에 쓴 해명서에서 토지 관련 수사의 부당함을 제기하고 있다. 다음은 ‘주간동아’가 입수한 해명서의 일부.

“…고학생에 대해서는 부일장학회를 조직하고 부산 시내 토지 10만평을 매수하여 이를 기본 재산으로 하는 재단법인 부일장학회를 설립코저 토지 매수를 사무 당국에 지시하였음. 우 토지는 재단법인의 이사 될 인사 명의로 매수하여 그 명의로 설립 신청키로 결정되어 있음. 내가 토지 부로카(브로커) 방모씨를 지시했다고 억설했으나 본인은 아직 방씨 얼굴도 본 바 없고 수속 절차에 대해선 아는 바 없음….”

10만여평 현재 가치로 1조원

박씨와 김씨 유족의 주장은 이처럼 엇갈리는 부분이 많다. 박씨는 “부일장학회가 토지 등 재산의 탈세 수단으로 이용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씨의 미망인인 송모씨는 모 언론 인터뷰에서 “박정희 주체 세력은 나를 인질 삼아 재산을 강탈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 수사는 공정했다. 거듭 말하지만 자유당 시절 대표적인 부정축재자가 김씨였다. 당시 수사는 경남도경(경찰)의 지원을 받아서 이뤄졌다. 김씨에 대한 수사도 피의자들의 신분을 고려해 한국은행 부산 지폐소에서 했다. 탈세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경찰 경제반 출신들이 주로 조사를 맡았다. 그런데도 송씨는 중정 사무실로 끌려갔다는 등 전혀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민간인을 군인이 수사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하나.



“당시는 군정 기간 아닌가.”

“박정희와 김지태 나쁜 거래를 했다”

고 김지태씨가 쓴 해명서

-유족에게 전한 편지가 강탈의 정황 증거가 되고 있다.

“김씨가 몸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간적인 미안함이 들어 보낸 것이다. 예우 차원이었다. 유족이 그 편지를 증거니 하며 제시하고 있는 게 이해가 안 된다. 1970년대 초 김씨가 편지의 내용을 왜곡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편지 내용을 바로잡는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오해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인간적인 예우로 보낸 것이니 악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편지에서 박씨는 “조시형 장군으로부터 김사장에 대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로 차원에서 편지를 보냈으니 곡해하지 말라”며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상자기사 참조).

“63년 5월16일 비원에서 혁명 자축 파티가 열렸는데 조시형 장군이 김사장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해서 위로하려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 수사관은 누구나 자기가 수사한 피의자가 형을 살고 나오면 최대한으로 위로를 해주는 게 본분이다. 그러니 편지 내용에 대해 비약하거나 오해하지 마라.”

박씨의 증언대로라면 유족이 공개한 그의 편지는 강탈의 정황 증거가 되지 못한다. 박씨는 “유족이 왜 두 번째 편지는 공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두 번째 편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밝혔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JP)다. JP는 전말을 알고 있을 것 같다.



“JP가 승인해줬으니 석방이 된 것은 맞다. 당시 중앙정보부법에 따르면 JP가 승인을 해줘야 석방될 수 있다. 하지만 종필이(박씨는 JP와 육사 8기 동기생이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알고 있지 못하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사망한 것 같다. 박대통령의 최측근 범위에서 재산 몰수 작업이 이뤄졌다.”

-‘강제 헌납’, 즉 ‘강탈’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한 번도 기자를 만난 일이 없고, 누구에게도 강탈이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강탈이었다고 보나, 헌납이었다고 보나.

“모른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도 비리가 드러나면서 재산을 내놓은 일이 있지 않은가. 헌납이니 강탈이니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이 개인재산을 뺐고 죄를 용서해줬다는 점이다. ‘바터(거래)’를 통해 범법자를 풀어준 건 정말로 잘못된 일이다.”

박씨는 박 전 대통령이 김씨를 풀어준 데 대해 반발했다가 박 전 대통령에게 ‘찍혀’ 이후 요직에서 밀려났다. 그는 “김씨 석방은 ‘혁명 정신’을 거스르는 사건이었다”면서 JP 등이 득세하고, 자신과 같은 야전군 출신들의 상당수가 몰락하게 된 이유를 길게 설명하기도 했다.

“군정이 아니었다면 김씨를 구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4·19로 들어선 민주당 정권도 김씨를 건드리지 못했다. 5·16이 있었기에 그의 혐의를 조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바터’를 해 김씨를 풀어줬다. 거듭 말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개인재산을 국가가 받고 죄를 면해주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김씨는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가고 법적 절차에 따라 추징금을 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영주씨는 “자유당 말기에 아버지는 자유당 비주류였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장관직을 제의받을 만큼 평판이 좋았다”고 강조했다.



“장학금 받은 盧대통령도 엄단했을 것”



-정수장학회 측은 공익재단(정수장학회)을 세웠으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부일장학회 등을 넘겨받아 공익재단을 세웠다고 해도 재산을 받고 죄를 용서해준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김씨가 운영하던 부일장학회와 정수장학회는 사실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부일장학회는 엄격히 따지면 정수장학회의 전신이 아니다. 당시 5·16장학회가 넘겨받은 것은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등이 전부로 부일장학회는 포함돼 있지 않다. 5·16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부산일보 등을 넘겨받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5·16장학회에서 이름을 바꾼 정수장학회가 부일장악회로부터 넘겨받았다는 10만여평의 땅도 정수장학회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토지는 부산일보를 인수하면서 자연스레 정수장학회로 넘어온 것으로, 장부상에서만 일시적으로 정수장학회 앞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62년 7월 설립 당시의 정수장학회 기본재산 목록에는 10만여평의 땅이 들어 있으나 현재는 목록에 잡혀 있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의 당시 경영 상황은 좋지 않았다. 특히 부산일보는 자산보다 부채가 훨씬 많았다”면서 “빈껍데기를 넘겨받았을 뿐 실제로 넘겨받은 재산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론사에 투자된 자본과 언론사가 갖고 있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정수장학회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어쩌면 강탈과 헌납의 구분은 박씨의 주장처럼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이나 박대표가 1원의 재산도 출연한 적이 없음에도 박대표는 김씨의 재산으로 만든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박대표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은 재산이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불법성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탈을 명백하게 입증할 증거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보는가.

“박 전 대통령이 공익사업이건 뭐건 간에 재산을 몰수한 건 잘못이다. 사퇴 여부는 뭐라 얘기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 과거사 논쟁이 한창이다. 어떻게 보는가.

“386세대 의원들을 이해할 수 없다. 김지태씨 사건은 그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다. 부일장학금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김씨를 고맙게 여긴다는 말을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박정희가 아니라 노무현이었다면 김씨를 법적인 절차에 따라 엄단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까까머리 시절 장학금을 준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고맙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박대표와 마찬가지로 노대통령도 과거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특정한 시각으로 보면 같은 자료도 다르게 해석되게 마련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가지고 역사를 그르게 기록해서는 안 된다.”





주간동아 453호 (p30~3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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