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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교과서’ 체첸 또 유혈 총성

카디로프 대통령 피살로 정상화 물거품 … 50여 민족 얽히고 설킨 카프카스는 ‘화약고’

  • 모스크바=김기현 동아일보 특파원 kimkihy@donga.com

‘분쟁 교과서’ 체첸 또 유혈 총성

또 체첸이다. 5월9일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축제 가운데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 그런데 바로 이틀 전인 7일 취임식을 하고 집권 2기 임기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이날은 또 다른 악몽의 시작이었다. 친(親)러시아 체첸공화국 수반인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이 피살됨으로써 그동안의 ‘체첸 정상화’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1999년 체첸을 침공해 수도 그로즈니를 점령한 러시아는 2003년 10월 체첸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카디로프 정권을 출범시켰다. 직접 통치가 아닌 ‘체첸인의 손에 의한 자치’의 모양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카디로프의 사망으로 체첸사태는 다시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됐다.

그동안 위축돼 있던 체첸 반군은 기세를 올리며 반격에 나섰고, 잠시 멎었던 총성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급히 체첸에 병력을 증파했다.

체첸은 경상북도만한 넓이(1만7000km2)에 인구는 겨우 80여만명. 이 작은 나라가 왜 대표적인 국제 분쟁지가 됐을까? 전문가들은 체첸사태는 ‘분쟁의 교과서’라고 입을 모은다. 민족 종교 역사적 갈등에 정치적 경제적 이해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구소련 붕괴 직후부터 분쟁 가열



세계적인 분쟁지역을 꼽으라면 흔히 발칸반도(옛 유고 지역)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화약고’가 체첸이 있는 카프카스(Kavkaz) 지역이다.

코카서스(Caucasus)라는 영어 이름이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 지역은 카스피해(海)와 흑해(Black Sea) 사이에 카프카스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이곳에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그루지야가 있고, 러시아연방에 속해 있는 자치공화국인 체첸과 다게스탄 북(北)오세티아 인구셰티아 등이 있다.

이 지역에서는 1991년 소련 붕괴 직후부터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 내에 있지만 주민 대부분이 아르메니아인인 나고르노-카라바흐주(州)의 영유권을 놓고 6년 동안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당시 러시아는 같은 정교도인 아르메니아를 은근히 지원했고 터키계인 아제르바이잔은 이를 계기로 탈(脫)러 친서방 정책으로 돌아섰다.

그루지야에도 내전이 일어났다. 이유는 그루지야 안에 있는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이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분리 독립을 추진했기 때문. 가까스로 휴전에 합의했으나 현재 압하지야에는 러시아군이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해 있어 사실상 그루지야로부터 독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그루지야에서 최근 또다시 내전이 일어날 뻔했다. 아자리야 공화국까지 독립 움직임을 보인 것인데, 이 사태는 러시아의 중재로 겨우 마무리됐다.

카프카스 국가들은 한결같이 내전과 독재 부정부패 등 불안한 상황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령에 속해 있는 지역 역시 거의 날마다 테러와 살인 납치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카프카스 지역이 한때 ‘지상의 마지막 낙원’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시인은 생전에 “카프카스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다”며 러시아어를 공부해 화제가 됐다. 이곳은 물과 공기 기후가 좋아 세계적 장수촌(長壽村)으로도 유명하고, 소련 시절에는 대표적 휴양지였다.

카프카스 지역 분쟁의 역사적인 뿌리는 더 오래됐다. 제정(帝政) 러시아는 18세기부터 본격적인 팽창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팽창 정책은 남쪽의 카프카스 정복으로 이어졌다.

이 지역에까지 밀고 내려온 러시아군은 1800년 그루지야를 귀속시키고 1830년에는 카프카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카프카스산맥에 근거를 둔 유목민족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들은 7세기부터 이 지역에 살던 이슬람교도인 나흐(Nakh)족이었는데 거칠고 사납기 그지없었다. 당시 유럽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러시아군이었지만 고전을 거듭해 무려 50여년 동안 전쟁이 계속됐다. 서부 나흐족은 그나마 손을 들었지만 동부에 거주하던 나흐족은 끝까지 항쟁을 멈추지 않았다.

‘분쟁 교과서’ 체첸 또 유혈 총성
이때부터 러시아는 동부 나흐족을 체첸인으로, 서부 나흐족은 인구슈인으로 부르며 구분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체첸의 길고 질긴 악연이 시작된 것이다.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러시아어로 ‘무서운’이라는 뜻이다. 러시아군이 체첸의 격렬한 저항에 얼마나 몸서리쳤으면 수도를 그로즈니라고 이름붙였겠는가? 그 후로도 체첸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봉기했다. 점차 민족적 자각에 이슬람원리주의까지 더해졌다. 러시아로부터의 민족해방 전쟁이면서 동시에 슬라브 정교의 러시아에 대항하는 ‘성전(聖戰)’의 성격까지 띠게 된 것이다.

1930년대 소련은 카프카스의 지식인과 민족 지도자 등 10만여명을 검거해 처형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강제 추방했다. 1944년 독재자 이오세프 스탈린은 아예 모든 체첸인과 인구슈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마치 극동 지역에 살던 20여만명의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것과 비슷했다.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체첸인들은 스탈린 사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강제이주 사건으로 뼛속까지 스며든 반러 감정은 더욱 심해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면 현재 체첸인들이 벌이고 있는 치열한 대러 항쟁의 원인이 이해된다.

그런데 스탈린이나 당시 소련 비밀경찰국장으로 강제이주를 지휘했던 라브렌티 베리야는 체첸의 이웃에 있는 그루지야인이었다.

경제·종교 갈등 외부 세력도 개입

카프카스의 여러 민족 사이에도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살기 좋은 곳이어서인지 카프카스 지역에는 일찍부터 다양한 민족이 모여들었다. 현재도 50개가 넘는 민족이 카프카스 지역에 살고 있다. 이러니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카프카스 민족 중 그루지야인이나 아르메니아인은 정교도고, 체첸인과 다게스탄인 아제르바이잔인 등은 이슬람이어서 종교적 갈등도 심각하다. 체첸 반군 중 일부 원리주의자들은 카프카스에 이슬람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을 정도다.

카프카스 지역의 분쟁은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국제화화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특히 이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의 의지가 강하다.

러시아가 체첸을 놓아줄 수 없는 이유는 많다.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전으로 떠오른 카스피해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체첸을 거쳐 러시아로 공급된다. 러시아는 체첸이 독립할 경우 안보 자원 중 하나인 석유 수송을 체첸에 의존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체첸은 대규모는 아니지만 상당한 양의 원유 매장량도 갖고 있다. 또 체첸의 독립을 허용할 경우 다른 공화국의 독립 열망을 자극해 자칫하면 카프카스 지역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미국 등 서방이 그루지야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이유도 카스피해 유전의 석유를 유럽으로 운송할 송유관이 그루지야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슬람원리주의 세력까지 가세했다. 체첸전이 일어나자 ‘체첸의 이슬람 형제들을 돕자’며 아랍이나 수단, 심지어 인도네시아에서까지 이슬람 의용병들이 체첸으로 몰려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과거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들로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카프카스 지역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분쟁과 갈등의 요인이 산재해 있다. 체첸 사태가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주간동아 436호 (p68~69)

모스크바=김기현 동아일보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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