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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 | 성경 어떻게 읽는가

시대와 종교권력 크기 따라 해석 변화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시대와 종교권력 크기 따라 해석 변화

시대와 종교권력 크기 따라 해석 변화
이게 웬 잔혹극인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살점이 팍팍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참느라 일그러진 얼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그려지고 있는 예수의 모습은 마음을 지극히 불편하게 한다. 육체적인 수난에 괴로워하는 예수의 표정에선 신의 아들, 혹은 ‘왕 중의 왕’이라는 절대 존엄자보다 평범한 한 청년의 고통이 읽힐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파격적이지만은 않은 것은 예수의 이미지가 상당히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신의 형상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역사적으로 예수의 삶에 대한 해석은 신비의 꺼풀을 벗기고 인간적 면모를 점점 더 많이 드러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봤다는 점에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보다 더 도발적인 영화가 이미 몇 년 전에 나왔다. ‘예수의 마지막 유혹’(사진)이라는 작품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후에 벌어진 일을 다루면서 성경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앞에 하나님이 보낸 수호천사라고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명령이라며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통인간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이 말을 사실대로 믿은 예수는 보통 남성이 돼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고 살면서 인간의 행복에 빠진다. 예수는 나이가 든 후 죽어가는 병상에서 그것이 악마의 유혹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쓴 작품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보수 기독교단의 입장에선 이단도 이만저만한 이단이 아니라 촬영 때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애초에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던 영화사가 들끓는 항의에 밀려 포기했을 정도다. 기독교단체들이 ‘악마의 필름’으로 규정한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교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수입된 뒤 개봉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이 같은 논란의 바탕에는 결국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성경을 철저히 그 자구에 충실하게 받아들이던 게 과거의 성경 독해법이었다면 이제는 성경을 상징으로 가득한 하나의 텍스트로 이해하고 있다. 마태나 마가 등 복음서의 저자들이 글자를 모르는 이들이었다는 점이나 성경 속에 당대의 설화와 민담 등이 섞여 있다는 점들에 주목하면서 성경 속 이야기들은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가령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천 군중을 먹였다는 5병2어의 기적을 일부 민중신학에서는 ‘군중들이 싸온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니 배불리 먹을 정도가 됐다는 얘기의 비유’로 해석하고 있다.

예술이나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가장 보수적이라 할 바티칸 교황청 역시 이 같은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1950년대 말 교황에 즉위한 요한 23세는 가톨릭의 최고권력자라는 권위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대중 속으로 뛰어드는 서민적인 면모를 보인 인물인데, 대중과 함께한 그의 행태는 필연적으로 가톨릭의 일대 개혁을 이끌어냈다. 60년대 초 열린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그는 기존의 성경 해석에 대한 폭넓은 접근의 인정, 그리스 정교 등 다른 종파와의 화해의 길을 열었다.



사실 요한 23세는 가톨릭 권력을 양분하고 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세력의 다툼 속에서 정략적 타협의 산물로 교황에 오른 이였다. 그런 그가 대대적 개혁에 나서자 기존 가톨릭 지배세력들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고 교황을 ‘공산주의자’로 몰기까지 했다.

결국 ‘신성해 보이는’ 종교에서 경전의 해석은 현실의 종교권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해석이 도전받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랄 수 있는 막달레나는 흔히 창녀로 알려졌는데, 이야말로 남성들이 지배해온 가톨릭 권력층에 의한 왜곡이라는 게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이들의 주장이다.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마라는 제자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해 불신자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막달레나는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줬다.

그런 막달레나가 창녀로 알려진 것은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던 초기 기독교 권력층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라는 것이다. 중세 가톨릭의 여성 비하엔 막달레나도 한 요인이었을 것이라는 혐의도 그래서 아주 근거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주간동아 433호 (p87~87)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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