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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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놓고 金 먹기’ 기자들 잇단 출사표

취재 통해 갈고 닦은 정치판 실전 경험 ‘최대 무기’… 국회 입성 몇 명? ‘관심거리’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2-04 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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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 놓고 金 먹기’ 기자들 잇단 출사표

    MBC 기자 출신 박영선씨(오른쪽)가 지난 1월13일 열린우리당 입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언론계는 법조계와 더불어 정치권 인재 수혈의 양대 창구였다. 5, 6공화국과 3김 시대를 거치면서 언론인들은 꾸준히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그리고 3김 시대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언론인들은 여야의 간판 주자로 떠올랐다. 조선일보 출신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MBC 출신 정동영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의장 체제의 등장은 언론인 출신이 우리 정치권에서 갖는 무게를 대변하는 사건이었다.

    한국 정치를 이끄는 세력이 됐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언론계 출신의 정계 진출은 양과 질에서 과거만 못하다. 2000년 16대 총선을 거쳐 여의도에 첫발을 디딘 언론계 출신 국회의원은 불과 7명. 한나라당 박종희(전 동아일보 기자) 고흥길(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강성구(전 MBC 사장), 민주당 박병윤(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이낙연(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우리당 김성호(전 한겨레신문 기자), 자민련 정진석 의원(전 한국일보 차장)이 그들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국회에 첫발을 디딘 당선자가 16대에만 19명에 이른 것과 비교해도 언론계의 영화가 과거만 못하다는 자탄이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다가올 총선에서 언론계는 과연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것인가. 법조계 출신이 전국적으로 100명 이상 출사표를 던진 것과 비교해 언론계 출신은 양과 질에서 그에 못 미친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기자정신으로 나서면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16년간 다니던 동아일보사를 그만두고 정계에 입문한 양기대씨(42)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부정부패 사건을 취재하고 비리를 파헤치면서 부패척결 없이 우리 사회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기자로서 부정비리를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한계를 느끼던 차에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현역 기자시절 양씨는 자타가 공인한 특종기자. 이형구 전 노동부 장관 수뢰사건, 김현철씨 비리, 의정부 판사 금품수수비리,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안기부 자금 신한국당 유입사건 등 그가 특종 보도한 뉴스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결과 기자협회가 수여하는 ‘한국기자상’ 2회, ‘이달의 기자상’ 7회 수상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출사표를 던진 지역은 경기 광명.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맞상대다.



    40대 특종기자 출신들 다수 포진

    한국일보 출신으로 서울 광진갑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를 준비 중인 홍희곤씨(41)는 “정치부 기자생활을 하면서 정치적 소양은 갖췄다고 자부한다. 일간지 출신이라 시간관리에 철저한 편인데 이런 점도 지역 당원이나 유권자들에 좋은 평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판단과 분석 등 일선 기자시절 늘 부닥치던 상황들이 정치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까닭에 홍씨에게 기자생활은 정치 입문을 위한 수련과정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바로 사람 관리가 그것. 홍씨는 “한 사람을 달래면 다른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고, 이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가 터지는 등 겸손과 과단성의 경계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갑에서 우리당 후보로 출마를 준비 중인 노웅래씨(47)는 MBC 보도국 사회1부장을 지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뒤 마포구청장을 연임한 노승환 전 의원이 그의 부친이다. 그의 선거사무실은 공덕동 로터리에서 용마루길로 오르는 언덕에 있는데 이곳은 노 전 의원의 자택으로 노 전 의원이 현역시절 의원 사무실 간판을 내건 건물이기도 하다. 대를 이은 출마에 대해 노씨는 “아버지 시대는 독재와 싸우던 시절로 구호와 투쟁이 앞서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생활정치, 서비스정치의 시대”라며 “50년 정통 야당의 지조를 지킨 부친에게서 계승할 것은 계승하겠지만 정치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그에 맞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펜 놓고 金 먹기’ 기자들 잇단 출사표

    양기대, 홍희곤,노웅래(위 왼쪽부터),최창환,조희천,최구식(아래 왼쪽부터)

    서울 은평을에서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민 최창환 전 이데일리 대표(42)도 우리당이 미는 언론계 출신 후보.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최씨는 “주로 경제지 기자와 경제전문지 사장을 지낸 ‘경제전문가’라는 점에 유권자들이 호감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정치가 변해야 한다고 말들은 하면서도 구태의연한 정치지망생 중심으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우리 정치에 희망이 없다”며 “기자정신과 도전정신은 통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기 고양 덕양갑에서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 나선 조희천씨(35)는 몇 달 전까지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선을 누볐다. 2003년에 발행된 국회수첩에 아직도 국회출입기자로 이름이 올라 있는 그는 현실 정치인으로 일선을 다녀본 소감을 묻자 “정말 장난이 아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현장 다녀보니 정치인에 대한 불신 크다”

    “지역은 한마디로 중앙정치의 축소판이다. 단체장이 있고 시·도의원이 있고 지역에 뿌리내린 각계 각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나름의 영역을 갖고 지역사회를 끌어가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현지 분위기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과정에 기자시절 취재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우리당에서는 최근 정동영 의장의 권유로 입당한 박영선 선대위 대변인(44·여)도 주목받는 언론계 출신 인사. MBC 보도국 경제부장을 지낸 박대변인은 여성 프리미엄까지 얹어 전국구 당선 안정권에 배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한겨레신문 기자인 이용희씨(49)도 우리당 공천으로 출마를 노리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를 준비 중인 언론계 출신 인사들로는 경남 진주의 최구식씨(43)와 강원 강릉에서 터를 닦고 있는 이교관씨(39)를 꼽을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조선일보 출신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출신인 최경환(49)·신영섭씨(49)와 SBS 국제부장을 지낸 정군기씨(43),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길성씨(43) 등도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현직에서 막 나온 언론인 출마자가 많지 않은 편. 김대중 정부시절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KBS 출신 조순용씨(52)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지낸 중앙일보 출신 김현종씨(42), 그리고 민주당 대변인인 한겨레신문 출신 유종필씨(47) 등이 호남과 서울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또 국민일보 차장 출신인 박찬희씨(45)와 중앙일보 기자였던 구동수씨(50)도 민주당 출마를 위해 입당했다.

    언론인 출신 출마 예정자들은 한결같이 “현장을 다녀보니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대단하더라”고 입을 모았다. 한 출마 예상자는 “기자들이 정치하니까 정말 깨끗해졌더라는 평가를 받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기자 출신들의 당찬 출사표에 과연 유권자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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