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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감동시대

빼앗긴 얼굴, 더 넓어진 마음

화상 입은 이지선씨 ‘인간극장’서 감동 선사 … 의연한 삶에 시청자들 가슴 뭉클 ‘격려 쇄도’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빼앗긴 얼굴, 더 넓어진 마음

빼앗긴 얼굴, 더 넓어진 마음

아파트 정원에서 엄마와 함께. 신앙과 가족은 지선씨가 다시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작은 사진은 사고 전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지선씨.

“사랑하는 아내와 백일 지난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선님을 알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지선씨보다 더 예쁜 여자는 다시 못 볼 것 같습니다. 우리 딸도 지선씨처럼 멋있게 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지선씨 홈페이지 ‘주바라기’에서)

이지선씨(26)는 요즘 바쁘지만 행복하다. 3월31일부터 4월4일까지 방송된 ‘인간극장-지선아 사랑해’ 방송 이후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홈페이지 ‘주바라기’(http://www.ezsun.net)가 터져나갈 지경이다. 방송 이후 홈페이지의 누적 방문객은 200만명을 넘어섰다. 4000여통의 메일이 쏟아진 날도 있다. 나중에는 가족들이랑 나누어서 메일을 읽어야 했다고. 이 이야기를 하다 “아차, 이 말 하면 메일 주신 분들이 섭섭해하실 것 같아요. 그냥 제가 다 봤다고 해주세요” 하면서 웃는 지선씨.

그러나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전까지는 지선씨를 보고 화들짝 놀라거나 “어쩌다 그렇게 됐누, 쯧쯧” 하면서 혀를 차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내 얼굴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해도 바깥에 나가면 저절로 위축되곤 했어요. 하도 많이들 쳐다보셔서 나중에는 ‘내가 연예인이 됐다고 생각하자’고 맘먹을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방송 후부터는 저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따뜻해졌어요.”

7개월간의 입원·11차례 수술에도 밝은 마음 그대로



‘인간극장’에서 방송된 내용처럼, 지선씨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이던 2000년 7월 여름 큰 사고를 당했다. 오빠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 차에 부딪힌 것. 차에 불이 나는 바람에 지선씨는 몸의 5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의료진들이 “가망 없다”며 치료도 안 할 정도였다고. 7개월간의 입원, 또 일본으로 건너가 받은 11차례의 수술로 많이 회복되었지만 예쁘던, 정말 예쁘던 얼굴을 되찾지는 못했다.

“인간극장 팀들이 처음 오셨을 때 기획 콘티를 짜 오셨는데 그걸 보고 막 웃었어요. 제목이 ‘울지 마 지선아’였거든요. 제가 밝은 척, 씩씩한 척 살지만 남몰래 혼자서 울고, 가족들도 눈물 흘리고 그럴 줄 알았나봐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제가 안 울잖아요. 오히려 시트콤처럼 막 장난치고, 까불고 하니까 제작진 아저씨들이 고민 끝에 제목을 ‘지선아 사랑해’로 바꾸신 거예요. 한 달 동안 촬영하다 일본에 갔을 때 딱 한 번 울었는데 그때 제작진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구요.”(웃음)

그 자신의 말처럼 지선씨는 밝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힐 만큼 무서운 사고를 당했지만, 그리고 그 사고의 여파로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았지만 더 이상 지선씨는 사고에 얽매여 있지 않다. “저는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다행히 사고 당시를 잘 기억하지는 못해요. 그래서 사고 이야기 꺼내는 걸 별로 힘들어하지 않고요. 남들은 몸이 힘든 만큼 마음도 고생했을 거라 생각하시는데, 저는 몸이 아픈 게 힘들었지 마음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사고로 제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지선씨는 담담하게, 아니 명랑하게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빼앗긴 얼굴, 더 넓어진 마음

그런 당당하고 밝은 모습은 지선씨의 홈페이지 ‘주바라기’ 회원들과 ‘인간극장’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인간극장-지선아 사랑해’의 장면들.

2001년 10월 탄생한 화제의 홈페이지 ‘주바라기’도 그런 생각 때문에 만들었다. 사고 전까지는 글 쓰는 데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병문안 온 친지들이 자신 앞에서는 애써 웃다가도 병실 복도에서 ‘머리가 아플 만큼’ 우는 걸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로 하면 안 믿으시지만 글로 쓰면 제가 괜찮다는 사실을 믿으실 거 같아서요.”

화상으로 손가락 절단수술을 했기 때문에 두 엄지손가락만 자유로운 상태에서 지선씨는 병원 침대에 앉아 글을 썼다. 홈페이지도 혼자 만들었다. 이 홈페이지가 세상과 지선씨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조금씩 사연이 알려지면서 책을 출간하자는 제의도 받았다. 홈페이지 회원 중에는 개그맨 남희석씨도 있다고. 안면마비로 활동을 중단하고 쉬고 있던 당시 지선씨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남씨는 지선씨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홈페이지에 오신 많은 분들이 ‘내가 가진 고민은 별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하세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럽지 않아도 다들 말 못하는 마음의 상처가 있나봐요. 그걸 제 홈페이지에 털어놓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또 제가 빨리 회복되기를 기도해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지선씨는 지난 한 해 동안 화상 치료 겸 어학연수를 위해 일본에 머물렀다. 학교보다 병원에서 배운 일본어가 더 많았지만,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의식해야 했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좋았다. “저는 햇빛이 피부에 직접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갈 때는 모자를 쓰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실내에서도 모자를 쓸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일본인들은 원래 속내를 안 보여주는 사람들이어서인지, 거리에서 절대 저를 두 번 쳐다보지 않더라고요. 사실 자기네들도 제 얼굴이 왜 이렇게 됐는지, 속으로는 얼마나 궁금했겠어요.”(웃음)

요즘 지선씨는 그동안 쓴 글에 가족의 글을 보탠 자신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5월 초에 출간될 예정인 이 책의 제목을 아직 확정짓지 못해 고민이라고. 6월에는 손가락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12번째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몸의 기능이 많이 회복되어 생활에 큰 불편은 없는 상태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지만 사고를 계기로 지선씨의 꿈은 약간 바뀌었다. “사고로 장애인이 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 병원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환자의 심리적 상실감이나 분노를 살펴주지 않는 거죠. 외국의 병원들은 이런 환자들에게 심리치료를 병행한다고 해요. 저 역시 아파봤기 때문에 아픈 사람 심정을 잘 알거든요. 그래서 상담심리를 공부해서 전문적인 상담가가 되고 싶어요.”

사실 지선씨를 만나기 전까지 기자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인터뷰하기를 힘들어하면 어떡하나, 혹시 이야기하다 눈물이라도 흘리면 어떡하나, 나중에라도 인터뷰한 것을 후회하게 되지나 않을까 등등.

그러나 실제 만나본 지선씨는 예상처럼 불행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건강하고 씩씩했다. 지선씨가 이렇게 강해진 데에는 신앙의 힘이 크다. 지선씨의 가족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지선씨도 사고 전까지 성가대 활동을 했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어차피 뺏아갈 거면 왜 예쁜 얼굴을 주셨는지 신이 원망스럽지 않냐”고 묻자 지선씨는 “20년 동안이나 예쁜 얼굴로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릴 때나 학교 다닐 때는 조금만 이상해도 놀림감이 되잖아요. 저는 사춘기를 다 넘기고 어른이 돼서야 사고를 당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지선씨네 집을 나오면서 기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나 괜히 쑥스러워 담아둔 말을 못하고 머쓱하게 악수만 하고 나왔다. 지면에서라도 꼭 하고 싶다. “지선씨, 당신 참 멋진 사람이에요.”



주간동아 2003.05.01 382호 (p62~63)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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