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2

2003.05.01

기 세운 검찰, 숨죽인 청와대

檢, 나라종금 수사에 강력한 의지 … 盧 대통령, 측근들 사법처리 땐 큰 부담 ‘고민중’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3-04-24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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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최근 법원에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에 대해 포괄적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포괄적 압수수색영장은 웬만해서는 발부되지 않는 ‘고강도’ 영장. 그동안 포괄적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검찰은 안 전 사장을 이번 사건의 사실상 ‘몸통’이라고 보고 그를 통해야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이런 판단에 법원 역시 영장을 발부, 화답했다. 검찰과 법원의 이 같은 ‘의기투합’은 이번 사건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결정적 좌표가 될 것 같다.

    ‘강금실 검찰’은 나라종금 사건에 검찰의 명운을 걸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의 한 소식통은 “만약 나라종금 사건마저 특검으로 가게 된다면 검찰의 존재 의미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검찰을 지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라종금 수사에 나선 담당검사들은 ‘걸리면 친다’는 전의를 불사르고 있는 듯 보인다.

    검찰, 달라진 모습 보이는 첫 시험대

    검찰이 강력한 수사의지를 드러내자 정치권 주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검찰 간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그런 추측은 정치권의 피해의식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일축한다. 지난 검찰 인사파동을 거치면서 비록 국민들에게 욕을 먹기는 했지만 검찰 내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어쨌든 검찰 내부에서는 대통령과의 토론을 통해 검찰로서 할 말은 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며 “그 사건과 파격인사를 거치면서 과거처럼 윗사람 눈치 보던 관행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윗사람도 일선 검사들에게 함부로 원칙을 벗어나는 지시를 할 수 없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소신껏 일해보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바로 이런 검찰 내부 분위기가 이번 사건수사의 강도를 높인 계기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노대통령의 개혁인사로 기가 살아난 검찰이 나라종금 사건을 자신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첫 시험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근 이번 사건과 관련,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우선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이 받은 2억원이 전액 생수회사에 투자되지 않았다는 점,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이 받은 돈도 당사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5000만원을 넘는다는 점이다. 생수회사에 투자했다던 안부소장과 김호준 보성그룹 회장측의 알리바이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김회장으로부터 정치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수사 방향과 스피드에 대해 청와대 주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자 강금실 장관은 “청와대는 수사에 영향을 주는 발언을 삼가라”고 공식 요청하며 각을 세웠다.

    검찰의 이런 기세에 청와대는 매우 놀라는 눈치다. 일각에서는 나라종금 2막2장의 예고편으로 보기도 한다. 의혹을 사고 있는 안부소장은 최근 청와대 모 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요지는 “각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대통령에게 있어 안부소장은 신체의 일부분 같은 사람이다. 그가 이 문제로 상처를 입는 것은 개혁정부의 도덕성에 금이 가는 일이다. 따라서 안부소장이 사법처리를 받는다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노대통령이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자연 노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진다. 노대통령은 4월14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제 측근이 불미스러운 이유로 조사받고 있다”며 부담감을 토로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이 문제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4월15일 3시간 동안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노대통령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화와 토론의 달인인 노대통령은 몇 차례 회의석상에서 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측의 고민은 안부소장을 겨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당내에도 엄존한다는 점이다.

    나라종금을 취재중인 기자들은 민주당 당직자들은 물론 구주류 인사들로부터 ‘뜻밖의 정보’를 전달받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노대통령 측근들의 추가 비리의혹에 관한 것이다. 민주당을 출입하는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꺼져가던 나라종금 의혹의 불씨가 되살아난 진원지는 당(구주류)”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위기에 몰린 구주류가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주류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청와대와 신주류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여권 내부의 주요 전선이 노무현 정권 대 민주당 구주류 대결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당내 보이지 않는 손도 안부소장 겨냥?

    이와 관련, 검찰 소식통은 “안 전 사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전 사장은 20년 이상 금융권에서 일해온 금융전문가. 그의 돈 씀씀이는 최근까지 밖으로 일절 드러나지 않았다.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인물이다. 그런 안 전 사장 주변을 터는 과정에서 검찰은 안 전 사장이 정치권 깊숙이 선을 대고 있다는 의혹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앞서의 소식통은 “안 전 사장은 민주당, 특히 민주당 구주류와 친분이 있는 인물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라종금 사태는 의외의 방향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자신의 측근을 희생시키는 극약처방을 통해 노대통령이 또 다른 정치적 변화를 노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읍참마속의 통과의례를 거치는 과정은 매우 복잡미묘한 방정식과 수순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수족만 자르는 악수로 귀결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노대통령은 양날의 칼날에 서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가설일 뿐이다. 이런 정치적 해석이 개입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특히 최근 독립선언을 한 검찰이야말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존재. 과연 나라종금 사건은 노대통령에게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노대통령은 취임 후 첫 정치적 시험대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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