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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성형’ 자살에 이르는 길

고민 없이 수술, 부작용·후유증 팽배 … 성형미인 부추기는 한 불행 계속될 것‘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묻지마 성형’ 자살에 이르는 길

‘묻지마 성형’ 자살에 이르는 길

\'성형의 메카’, ‘성형왕국’으로 불리는 압구정 성형타운. 성형미인을 꿈꾸는 무분별한 성형은 엄청난 절망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

지난해 12월 ‘안티 성형’이라는 인터넷 카페의 게시판에는 자살을 예고하는 이런 글들이 가득했다. 정회원 숫자만 8만여명, 성형수술 관련 수술합병증과 부작용 등을 호소하는 이들로 넘쳐나던 이들 동호회 카페들은 12월 말 ‘유해한 정보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내린 사이트측의 일방적 폐쇄조치로 문을 닫았다. 이는 일단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이 카페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데 따른 후속조치로, 이에 분노한 네티즌들은 예고된 카페 폐쇄에 대해 “죽음으로 맞서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마지막 호소(카페 폐쇄 취소 가처분신청)는 끝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의료권력에 대항해 소비자들의 집단 항의를 담아내던 이들 사이트의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로부터 4개월 후, 네티즌들의 이런 ‘자살 경고’는 정확하게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성형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20대 여성 두 명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것. 성형수술 후 자신들의 참담한 사연을 쏟아낼 곳이 없었던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전전하다 하필이면 자살 사이트에서 동병상련의 동지를 발견하고, 결국 음독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이 비극의 두 여주인공은 서울 강북지역에 사는 고모(23), 김모씨(22·서울 K대 1년). 이들은 4월17일 밤 9시20분 강원 춘천시 온의동 시외버스터미널 뒤 야산에서 농약을 마셨다. 다행히 인근 주민에 의해 발견되긴 했지만 결국 다음 날인 18일 오전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이들의 자살이 성형수술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와 가족의 진술에서 바로 확인됐다.

“겉보기엔 괜찮지만 견딜 수 없어…”



“사랑하는 우리 엄마 미안해. 얼굴과 다리 마비는 겉보기엔 괜찮지만 뼈와 입 안의 둔한 감각 때문에 후유증에 시달려 견딜 수가 없었어요.(고씨의 유서 중)

고씨가 서울 강남 역삼동 A성형외과 클리닉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것은 1월16일. 쌍꺼풀 재수술과 턱 광대 안면교정술, 볼에 있는 몽고주름 제거 수술을 하는 데 든 비용이 무려 1050만원에 달했다. 2년제 대학 골프학과를 졸업한 후 세미 프로골퍼를 꿈꾸던 고씨는 성형수술을 하면 일에도 도움이 된다며 부모를 설득했고, 중산층인 고씨의 부모는 하나뿐인 딸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고씨의 어머니 김모씨(48)는 “2년 전부터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조르는 딸의 요구를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워 들어줬는데 수술 이후 바로 조금만 걸어도 다리에 통증이 오는 등 후유증이 심해 골프장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3개월째 집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씨의 가족들에 따르면 고씨는 수술 후 다리 마비 증상 외에도 볼 처짐, 생리불순, 턱 주변 뼈와 입 안의 마비 증상을 호소했다는 것. 이후 고씨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3월 중순 책상 서랍에서 “자살하겠다”는 메모를 발견한 고씨의 부모는 그를 달래는 한편 수술한 성형외과를 찾아 부작용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어머니 김씨는 “수술 부작용에 대해 해당 성형외과에 항의했더니 수술비용을 되돌려주면서 대신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은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으라’며 그에 대한 각서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묻지마 성형’ 자살에 이르는 길

성형미인에 대한 환상이 커지면서 상습적으로 얼굴을 뜯어고치는 성형중독증 환자도 크게 늘고 있다.

고씨가 수술을 받은 A클리닉은 성형외과 전문의만 6명이 공동원장으로 있는 명문 S대 동문 병원. 연건평 400평에 수술실만 7개를 갖추고 있고 마취과 전문의만 2명이 있는 초대형 성형클리닉이다. A클리닉은 2월5일 복부지방흡입술을 하던 한모씨(27·간호조무사)가 호흡곤란과 심장이상 증세로 숨진 바로 그곳으로 두 번씩이나 이런 일이 발생하자 A클리닉측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A클리닉측은 고씨의 자살과 관련해 “수술비용을 환불한 것은 사채를 끌어대 수술비를 충당한 고씨가 ‘빨리 갚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 등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여 한 생명을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취한 조치”라며 “수술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고씨가 자살한 것은 심각한 우울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 병원에서 고씨가 쓴 환불에 따른 서약서에는 “본인의 경제적인 사정(카드 빚, 사채 등)으로 인해 심각한 장애(자살 충동)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수술비용을 환불해주는 것”이라고 씌어 있다. 병원측은 또 지방흡입수술 도중 숨진 한씨에 대해서는 “사체 부검 결과 1만분의 1 확률로 발생하는 지방색전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져 병원측의 과실은 없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도의적 책임에서 원만하게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고씨와 함께 숨진 김씨의 유서에는 성형수술에 대해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가족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 최근 서울 강남의 모 성형외과에서 받은 쌍꺼풀수술이 자신의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 엄청난 부담감을 느껴온 것으로 드러났다. 4수 끝에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김씨는 쌍꺼풀수술조차 제대로 되지 않자 세상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는 것. 김씨의 어머니 박모씨(46)는 “어릴 때부터 빼어난 미모를 타고났다는 말을 듣던 아이가 고생 끝에 대학에 입학해 적응도 못하던 차에 쌍꺼풀수술까지 잘못돼 거울조차 보기 싫어지자 자살을 결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계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아빠 엄마 미안해. 정말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돼. 무기력해지고 열정도 없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 기쁜 일도 웃을 일도 없고….” 김씨의 유서에는 쌍꺼풀수술 후 무기력증에 빠진 여대생의 아픔이 그대로 묘사돼 있다.

성형수술 결과를 비관해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4일 인천 옹진군 자월면 승봉도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김모씨(27·여·인천 연수구)도 서울 강남의 모 성형외과에서 광대뼈와 턱뼈 교정수술을 한 후 부작용으로 고민하다 자살을 선택했다. 당시 발견된 유서에 따르면 광대뼈와 턱뼈를 깎는 성형수술(안면윤곽술)을 받은 김씨는 수술 이후 통증이 잦고 좌우 광대뼈의 균형이 맞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는 것. 이후 김씨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걸려 밖에 나가길 꺼렸다는 게 가족들의 증언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올 1월7일에는 콧등과 미간 사이에 실리콘을 삽입하는 성형수술을 한 30대 후반의 공무원 박모씨(38·전북 전주시)가 자신이 일하던 동사무소 천장 배관에 목을 매 자살했다. 콧등과 미간 사이에 넣은 실리콘이 썩어들어 가면서 심한 악취가 나고 두통, 실명증세까지 생긴 데다 부종현상으로 얼굴이 갈수록 기형적으로 변해갔기 때문. 실리콘을 빼낸 후에도 이 같은 현상이 없어지지 않자 결국 박씨는 자살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성형수술에 대한 불만이나 부작용 때문에 자살을 택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이유는 뭘까. 의료계에서는 이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2000년 이후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성형열풍은 ‘돈만 들이면 무조건 예뻐질 수 있다’는 헛된 망상을 우리 사회에 퍼뜨렸고, 이는 성형수술의 부작용이나 후유증에 대해 깊이 고려하기보다는 ‘일단 하고 보자’ 식의 ‘묻지마 성형’ 풍조를 낳았다는 것. 성형 결과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진 것은 당연지사. 용인정신병원 하지현 과장은 “성형수술에 대한 기대치와 환상이 너무 크다 보니, 그 기대가 무너지면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홍콩 영화배우 장궈룽의 자살도 그와 유사한 사례”라고 밝혔다.

의료계도 이런 심리를 부추긴 책임에서는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2000년 의약분업 후 개업 붐을 타고 2001년 말 전국적으로 3000개가 넘어선 성형외과 클리닉 중 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은 640개뿐. 또 이중 절반이 ‘성형공단’ 또는 ‘성형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지역에 몰려 있어 이들 클리닉이 환자 유치를 위해 과대광고를 일삼아왔던 게 사실이다. 사고가 터졌다 하면 서울 강남지역의 성형외과인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내 딸의 죽음은 누가 책임집니까?” 성형미인이 되라고 부추기고, 이에 박수를 보내는 사회풍조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도 성형후유증에 따른 자살이라는 불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주간동아 2003.05.01 382호 (p20~21)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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