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2

2003.05.01

서기 800년 ‘니벨룽겐의 노래’사본?

독일 츠베틀 마을 수도원 서가서 고문서 발견 … 적외선 촬영기 결과 ‘섬 스타일’ 서체로 기록

  • 안윤기/ 슈투트가르트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net

    입력2003-04-23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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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3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술사가이자 고문서 전문가인 샤를로테 치글러가 독일 파사우 인근 작은 마을 츠베틀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획기적인 문서가 발견됐다고 밝힌 것이다.

    치글러는 수도원 지하 서가에 먼지가 잔뜩 쌓인 채 놓여 있던 상자 안에서 발견된 동물 가죽으로 만든 7개의 낡은 파편 조각 위에 “siverit”(지크프리트), “atli”(아틸라) 등 게르만 민족의 서사시 격인 ‘니벨룽겐의 노래’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씌어 있었다고 밝혔다.

    문화계 큰 파문 진위 논란 가열

    ‘니벨룽겐의 노래’가 어떤 작품인가. 중세 독일문학의 총화이자, ‘게르만족의 일리아드’로까지 불리며 수백년간 칭송되어온 작품이 아니던가?

    그는 이 사본의 연대를 서기 800년, 카롤링거 왕조 시대로 추정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34개의 중세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1180~90년경의 것이었으니, 그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본이 발견된 셈이다. 이 발표는 즉각 관련 학계뿐 아니라 독일 문화계 전반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영웅 지크프리트의 무용담과 비극적 죽음, 여인들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보복을 담은 이 39장 2400연이나 되는 대작을 누가 처음 기록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잘츠부르크의 독문학자 울리히 뮐러의 견해에 따르면 1200년경 파사우 주교의 성에서 한 무명 작가가 썼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이다. 그런데 그가 기록할 때 그의 앞에 보다 오래된 대본이 놓여 있었을 것이라고 믿은 학자들은 지난 200여년 동안 보다 오래된 사본을 백방으로 찾아왔다. 츠베틀에서의 갑작스러운 발견으로 이 작품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사실 사본의 상태는 썩 좋지 못하고 많은 글자들이 읽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다. 하지만 치글러는 빈 대학 범죄수사학자들의 도움으로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적외선 촬영기를 통해 문서를 관찰한 결과 이 사본의 문자들이 ‘섬 스타일’ 서체로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섬 스타일 서체는 서기 7, 8세기경 유럽대륙으로 진출한 영국, 아일랜드 수도사들의 특징적인 서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함부르크의 독문학자 니콜라우스 헨켈은 이 사본이 그렇게 오래되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이 사본을 13세기 정도의 것으로 추정한다. 베를린의 학자 폴커 머텐스 또한 과도한 기대를 경계한다. 이 사본이 그저 각주 하나에 언급하면 족할 만한 가치를 지녔을 뿐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니벨룽겐의 노래’의 소재가 대체로 5세기 게르만족 이동기의 역사 현실과 유사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인정된 사실이다. 또한 800년대의 황제였던 카롤 대제가 지크프리트의 열광적 팬이었으며 그가 많은 영웅 서사시를 수집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그 시절에 기록된 사본 중 하나가 발견됐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츠베틀의 고요하던 수도원은 당분간 계속 화젯거리가 될 것 같다. 조만간 고문서학자와 잉크 연구가의 정밀한 감식, 토론회 등이 이어질 것이다. 그 결과 이 사본이 정말로 그렇게 오래된 것임이 입증된다면, 우리는 신비에 싸인 영웅 지크프리트 이야기의 뿌리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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