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2

2003.05.01

펜보다 강렬한 메시지 … 렌즈로 본 세상

  • 입력2003-04-23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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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보다 강렬한 메시지 … 렌즈로 본 세상
    2002년 6월13일, 경기 양주군 광적면에서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던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양이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숨졌다. 그때 누구보다도 먼저 사고현장에 달려간 이가 이용남 소장(현장사진연구소)이다. 살점이 떨어져나간 미선의 다리, 뭉개진 효순의 참혹한 시신을 촬영한 사진은 촛불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그 후 이용남씨는 사고현장에서 주은 피 묻은 운동화 한 짝과 미선이, 효순이의 학생증을 품고 살았다. 오로지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는 언제나 현장을 지키며 사진을 찍었다.

    파주에 살며 15년간 미군 기지촌 주변을 찍어온 사진작가 이용남씨가 포토에세이 ‘어머니의 손수건’(민중의 소리 펴냄)을 출간했다. 271쪽에 달하는 기록은 미선이와 효순이의 영혼을 달래줄 진혼곡이다. 사진 속에서 피로 물든 길 위에 주인 잃은 운동화 한 짝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딸을 잃고 술을 물처럼 들이켜는 아버지, 49재를 지내러 문 밖을 나서다 그만 주저앉아 버린 어머니, ‘우리를 깔고 지나가라’며 탱크 앞에 누운 채 시위하는 시민들의 절규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이씨는 “다시는 이런 참혹한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왜 그라고 아름다운 풍경을 찍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미군의 폭력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이씨의 사진들은 계속 울부짖을 것이다.

    이동환의 사진집 ‘살고 싶다’(포토하우스 펴냄)를 보며 에이즈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사람들의 눈망울이 유난히 검고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도 있지만 대부분 무덤덤하게 렌즈를 응시한다.

    경주대 이동환 교수(사진영상디자인학부)는 1998, 99년과 2001년 세 차례 태국 에이즈 환자 수용소인 와프라 밧남푸를 방문했다. 이곳에 온 에이즈 환자들은 간호사와 자원봉사자의 보살핌 속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친다. 그들을 돌보며 마지막 가는 길에 염을 해주는 스님들도 대부분 에이즈 환자들이다. 에이즈에 감염된 뒤 머리를 깎은 이들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친절과 자비를 베푼다. 작가는 이 사진집에 대해 “불행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돌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요 준비”라고 했다. 서로를 돌보며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자유를 생각한다’(세상사람들의책 펴냄)는 세계적인 보도사진 에이전시 ‘시그마’의 사진 가운데 ‘자유’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고른 것이다. 수하르토 30년 독재체제가 무너진 1998년 5월21일 ‘단 하나 완전한 개혁’을 외치는 인도네시아 한 시민, 92년 보스니아 내전 속에서 치러지는 결혼식, 체첸 반군들의 순교가 계속되고 있는 그로즈니 시를 달려가는 소녀, 그림을 그리는 코소보 난민 아이들…. 사진과 나란히 배치한 잠언들이 군더더기라고 느껴질 만큼 사진의 메시지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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