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9

2003.04.10

우주적 웃음 경계령 … 그리고 독특한 감동

  • 전찬일/ 영화 평론가 chanilj@hanafos.com

    입력2003-04-02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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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적 웃음 경계령 … 그리고 독특한 감동
    장편 데뷔를 준비중이던 한 신예 영화감독이 어느 날 영화잡지에서 ‘안티 디카프리오’ 사이트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 세계적 슈퍼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앞머리를 내리고 있는 이유는 외계인과 교신을 하기 위해서며 지구의 모든 여자들을 홀려서 지구를 정복하려는 의도라는 내용이었다. 흔히들 ‘피!’ 하고 웃어넘겼을 법한 그 황당무계한 주장이 평소 엉뚱한 상상을 즐기던 이 감독에겐 너무도 재미있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던 감독은 내친김에 그 아이디어를 토대 삼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마침내 한 편의 영화로까지 완성해낸다.

    감독(장준환)이 밝힌 ‘지구를 지켜라’의 탄생비화(?)다. 한마디로 ‘엉뚱’ 그 자체다. 여러모로 감독의 분신인 병구(신하균 분)는 오는 개기월식 때까지 외계행성의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지 못하면 지구가 곧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거라고 굳게 믿는다. 평소 유제화학 사장 강만식(백윤식 분)이 외계인이라고 100% 확신해온 병구는 그를 납치해 안드로메다 왕자와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영화는 이렇듯 엉뚱하게 시작해, 시종일관 엉뚱하게 전개된다. 하도 엉뚱해 작품의 의도를 헤아리기가 쉽지만은 않다. 적어도 초반엔 그 엉뚱함을 그저 튀고 싶어 안달 난 한 신예의 키치적 치기로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가야 할지, 획일화된 작품의 범람 속에서 단연 빛나는 상상력의 극치로 간주해야 할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범우주적 코믹 납치극’을 표방한 영화를 지켜보다 보면 무작정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페이소스 내지 슬픔이, 심각한 드라마를 능가하는 어떤 진정성 내지 현실인식이 짙게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끝내 말로는 다 형용키 어려운 ‘독특한’ 감동이 이는 건 그래서일 터.

    물론 이 영화의 감동 못지않거나 그 감동을 훌쩍 뛰어넘는 감동을 전해주는 우리 영화들이 결코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당장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나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을 떠올려보라.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송능한 감독의 ‘넘버 3’,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이무영 감독의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등은 또 어떤가.

    그러나 그 어느 작품도 총체적으로는 이처럼 황당함과 기발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이토록 진한 감동을 맛보게 하는 독특한(unique) 영화적 체험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내가 경험한 국산영화 중 가장 독특하다고 여기는 ‘복수는 나의 것’조차도 상상력의 폭과 깊이에선 이에 미치지 못했다. 위 영화들과 비교해 ‘지구를 지켜라’가 최고작이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지만.



    ‘지구를 지켜라’가 놀라운 건 어지간한 문제작도 구현하기 쉽지 않은 페이소스와 진정성 등을 ‘잡탕’ 혹은 ‘짬뽕’이란 경멸적 의미의 수식어가 제격일 지독한 장르-스타일 혼성-를 통해 구현했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참고의 차원을 넘어 오마주, 패러디, 노골적 인용 등 온갖 영화적 수사들, 그것도 과잉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학적 수사들이 넘실댄다. 영화는 ‘콘택트’가 ‘양들의 침묵’과 ‘미저리’를 만나 ‘복수는 나의 것’으로 치닫다 ‘스타워즈’와 ‘제5원소’로 끝맺는 길을 걷는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길’ ‘인디펜던스 데이’ 등 수십 편의 영화들을 경유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락없이 ‘길’의 젤소미나의 현현인 순이(황정민 분)를 비롯해 등장인물들도 여기저기서 차용해왔음이 틀림없다.

    언뜻 ‘재미있는 영화’가 떠오르겠지만 천만의 말씀. 인용의 수준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저 모방적 짜깁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해석과 변형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묘한 독창성이 감지된다. 게다가 이 ‘앙팡 테러블’에서는 여느 감독에게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삶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또한 발견된다.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광이 아니라면 도저히 빚어낼 수 없었을, 다분히 마니아ㆍ컬트적 감수성으로 점철된 작품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마니아의, 마니아에 의한, 마니아를 위한’ 작품을 넘어서는 그 어떤 보편적 아우라가 꿈틀댄다. 그러니 어찌 그런 영화에, 또 그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에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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