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9

2003.04.10

현대판 노예들의 ‘고통스런 삶’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4-02 1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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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판 노예들의 ‘고통스런 삶’
    ‘일회용 사람들’의 내용은 믿기 어렵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21세기에 감금된 상태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거부하거나 도망치면 가차없는 폭력에 죽음까지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이 노예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미국의 사회학자 케빈 베일스는 오늘날 전 세계에 이런 노예가 최소 2700만명, 최대 2억명에 달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노예제라고 하면 1650년에서 1850년 사이 대서양 노예교역과 미국 남부의 노예만을 생각한다. 19세기를 끝으로 노예제도는 사라졌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북서 아프리카 모로코 남쪽에 위치한 모리타니처럼 여전히 자산으로서의 노예 매매가 이루어지고 노예의 자녀 역시 노예가 되는 ‘이상한 나라’가 존재한다.

    물론 현대 노예의 다수는 ‘채무 노예’다. 이들은 돈을 빌리기 위해 스스로를 저당 잡힌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나중에 노동을 통해 빚을 갚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생 노예나 다름없이 산다. 나아가 채무 불이행에 대한 보복으로 자녀를 압류하거나 매매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태국 북동부 우본라지타니이 한 도시에서 매춘을 하고 있는 열다섯 살의 시리는 3개월간 효과가 지속되는 강력한 피임제를 주사 맞고 하룻밤에 열다섯 명의 남자를 상대한다. 태국에서 시리와 같은 소녀들을 찾는 일은 너무나 쉽다. 가난한 부모들은 딸 한 명쯤 팔아넘기는 일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딸이 빚을 다 갚지 못한 채 돌아와 자신들이 빚을 갚게 될까봐 염려한다. 가족을 위해 그 소녀는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성노예로 쓰이다 버려진다. ‘채무 노예’는 인도 대륙에서 가장 흔한 형태다.

    ‘계약 노예’는 현대의 노동 관계에서 노예의 존재를 은폐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브라질의 목탄 캠프는 능숙한 가투(모집 대리인)들을 내세워 도시 빈민가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한다. 가투들은 정규적인 일자리와 유리한 조건(월급, 식사, 자유로운 생활)으로 이들을 유혹하지만 막상 트럭에 실려 목탄 캠프에 도착하면 모든 상황은 돌변한다. 이동경비와 식사, 가족들에게 위로금조로 지급한 돈이 모두 빚이며, 일을 해서 갚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총을 든 경비들이 지키는 캠프에서 이들은 신분증명서와 노동증명서를 빼앗긴 채 수개월씩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노동을 한다.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빚이 늘어가는 이상한 셈법 속에 갇힌 계약 노예들은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계약 노예들은 작업장이나 공장의 고용 보증을 통해 일종의 계약을 하지만 실제로 작업장에 도착하자마자 폭력으로 위협받고 이주의 자유를 제약당하고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며 탈출만을 꿈꾸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거나 버려진다. 계약 노예는 동남아시아, 브라질, 아랍국가, 인도 대륙, 태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처럼 ‘일회용 사람들’에 따르면 노예제도는 사라진 게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과거 노예는 값비싼 자산으로 최소한 낭비되지는 않았지만, 현대 노예는 병이나 상해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되거나 노동력이 필요없어지면 그날로 버려지는 소모품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노예라는 말 대신 ‘일회용 사람들’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과거 노예제도는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법적 소유권의 문제였지만, 오늘날 인간을 법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을 샀다는 영수증 없이도 폭력만으로 얼마든지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저자는 “경제적인 착취를 목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노예제나 마찬가지며 역겨운 일”이라고 말한다. 노예제는 단지 누군가의 노동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도둑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의 문제를 떠나 강제수용소에 가깝다.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노예제 폐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책 집필이었다고 말한다.

    파키스탄의 노예가 당신이 신고 있는 구두와 당신이 밟고 서 있는 카펫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카리브해에 있는 노예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설탕과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생산했을지도 모른다. 인도의 노예들이 당신이 걸친 셔츠를 재봉하고 당신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를 세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현대 노예다. 노예의 삶이 비단 파키스탄, 카리브해, 인도만의 문제인가. 인신매매, 감금, 윤락 이런 단어들이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하루 12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리는 인도의 아동 노예들이 만든 ‘피버노바’(국제축구연맹의 공인구)로 우리는 월드컵 축제를 벌였다. ‘일회용 사람들’이 불행한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한다.

    일회용 사람들/ 편동언 옮김/ 이소출판사 펴냄/ 416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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