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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치권 “암소 숭배 내가 최고”

여당 ‘소 도살 금지 법안’ 올 봄 통과 추진 … 쇠고기 먹는 주민들 “음식대란 올 것” 반발

  • 이지은/ 델리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인도 정치권 “암소 숭배 내가 최고”

인도 정치권 “암소 숭배 내가 최고”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 시에서 소와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 인도에서 소는 사람과 같은, 어떤 경우는 사람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힌두교도 대 이슬람교도의 대결 양상을 보였던 지난해의 구자라트 주 선거는 힌두교 원리주의 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 선거의 여파로 최근 힌두교 원리주의가 인도 전역을 휩쓸고 있다. 인도 정치인들은 소수 좌파인사를 제외하고는 당적에 관계없이 힌두교도가 절대다수(약 80%)를 차지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여 ‘누가 더 정통 힌두교도인가’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힌두교 원리주의 열풍이 휘몰아치는 인도 정치권의 최신 키워드는 엉뚱하게도 ‘암소’다. 소, 특히 흰 암소는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동물이다. 힌두교도들은 소를 도살하지 않으며 우유, 버터는 물론 쇠똥, 쇠오줌까지도 정화(淨化) 능력이 있다고 믿어 종교의식에 사용한다. 물론 쇠고기를 먹는 일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죄악이다.

‘누가 더 정통 힌두교도인가’ 경쟁

여당인 인도인민당측은 힌두교 원리주의가 휩쓰는 최근 분위기에 편승하여 의회의 봄 회기 내에 ‘소 도살 금지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소 도살 금지법은 이미 인도 대부분의 주에서 주 법률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을 아예 전국에 적용하겠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힌두교 원리주의 이데올로기를 타종교인들에게까지 강제하여 인도가 명실상부한 ‘힌두교 국가’임을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힌두교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인도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다.

실제로 소 도살은 종교적 이데올로기나 정체성 문제임과 동시에 쇠고기를 먹는 많은 인도 국민들의 식생활 및 영양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인도인이라고 해도 이슬람교나 불교, 기독교 신자들은 당연히 쇠고기를 먹는다. 또 인도 동북부에 위치한 여러 주들은 독자적인 부족적 전통에 따라 쇠고기를 상식해왔다. 북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 거주하는 달리뜨(불가촉천민)들 역시 쇠고기를 먹으며, 남부의 께랄라 주에서도 소수의 브라만 사제계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쇠고기를 먹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몇몇 주에서는 소 도살 금지법이 있다 하더라도 대규모 도살업을 금지할 뿐이지, 관례적으로 개인적인 도살은 눈감아준다. 인도 동북부 메갈라야 주 출신인 전 하원의장 쌍마 의원은 인도 전역에 소 도살 금지법이 공포될 경우 동북지역에 ‘음식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 도살 금지법을 전국적으로 적용하려는 인도인민당의 움직임이 감지된 이후 힌두교 원리주의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 또한 한층 강해졌다. 지식인들과 인권단체들은 쇠고기를 먹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신자들의 인권문제는 물론 소 도살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앞날을 우려하고 있다. 달리뜨 출신 전직 고위 공무원으로 최근 ‘정의당’이라는 정당을 창설한 우디뜨 라즈는 “소 도살 금지법 이전에 사람 도살 금지법부터 만들라”고 가시 돋친 한마디를 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소와 관련되어 일어났던 달리뜨 폭행 치사사건에 대한 항의의 뜻이 담겨 있다. 2002년 11월, 수도 뉴델리에 인접한 하리야나 주의 한 마을에서 소가죽을 벗기는 작업을 하던 하층민들이 소를 밀도살하는 것으로 오인받았고, 집단폭행을 당한 끝에 이들 중 다섯 명이 숨졌다. 숨진 달리뜨 중 두 명이 불교도였고, 폭행을 주도한 사람들은 힌두교 원리주의 정당인 ‘쉬브 세나’ 소속임이 밝혀졌다.

힌두교도측에서 ‘숨진 사람들은 소를 죽인 죄인’이라는 논리로 폭행을 비호하자, 비힌두교도들은 “사람 목숨이 소보다도 못하다는 것이냐”며 발끈하고 나섰다. 결국 이 사건은 힌두교도 대 기타 소수종교 간의 대립으로 확산되었다. 마침 하리야나 주 의회선거를 앞둔 시점이었기에 정치권 내에서도 주민들의 격앙된 종교적 감정을 표로 연결하기 위해 부심했다. 선거 결과 힌두교 원리주의 정당인 인도인민당이 패배하고 세속주의(secularism)를 표방한 국민회의가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인도에서 ‘소의 정치적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던 셈이다.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힌두교 원리주의에 대한 반격은 좌파계열 학자들을 중심으로 학계에서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저명한 사학자가 고대의 힌두교도들은 쇠고기를 먹었다고 주장하며 힌두교 원리주의의 성우(聖牛) 이데올로기에 직격탄을 날렸다. 델리대학 역사학과 D.N.자 교수는 저서 ‘성우의 신화(The Myth of the Holy Cow)’에서 고대 인도에서는 암소를 포함한 동물들의 희생제의가 만연했던 것은 물론 종교적 목적으로든, 식용으로든 소의 도살이 행해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힌두교의 성전(聖典)인 ‘베다’의 구절들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함께 제시한 자교수의 저서는 학계로부터 뛰어난 학문적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힌두교도들의 정서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도 내의 출판사들은 이 책의 출판을 거부했다. 결국 ‘성우의 신화’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하지만 출판 후 책의 내용이 인도 국내에 알려지면서 자교수는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의 테러 대상 1순위에 올랐다.

사회 일각의 반대에도 정치권은 당분간 힌두교 원리주의를 기치로 내세워 힌두교도들의 종교적 정서를 선거에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정치가들이 구자라트 주 선거에서 힌두교 원리주의를 부각하는 인도인민당의 전략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든 만큼 이 전략이 힌두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다른 주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권의 움직임은 힌두교 원리주의 성향의 정당들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세속주의를 표방해온 국민회의나 기타 중도 정당들에서도 공통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정당의 집회에서는 소와 관련된 비방, 홍보전이 등장해 유권자들을 한층 더 자극하는 양상이다. 마디야 쁘라데쉬 주의 국민회의 집회 현장에서는 바즈빠이 총리가 쇠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주 총리인 딕비제이 싱은 연설에서 자신이 ‘쇠오줌을 마시는’ 경건한 힌두교도임을 강조했다. 한편 우따르 쁘라데쉬 주 정부는 쇠오줌을 가공하여 의약품을 제조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함으로써 쇠오줌으로 ‘표’와 ‘돈’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인도 정치에서 ‘힌두교도의 어머니인 소’는 힌두교 원리주의 열풍 속에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좌파 정당들이 지식인들과 연계하여 세속주의로 맞서고는 있으나 원리주의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소를 숭배하는 대중의 종교적 신념을 이용하여 국민을 호도하고, 소수집단을 억압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인도 정치인들의 모습은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싶다.



주간동아 2003.04.03 378호 (p74~75)

이지은/ 델리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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