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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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도 ‘18번’ 있다

관심 밖 직업에 뛰어든 4인의 승승장구 제2인생 … 유망성·적성 알고 보니 딱!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1-30 0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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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대폰 벨소리 작곡가, 조향사, 아바타 디자이너, 웹PD, 크루즈디렉터…. 세상은 넓고 직업은 많다. 자기 자신에게 알맞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만족스러운 일에 붙들려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직업을 고르거나 바꿀 때 가장 유념할 것은 무엇일까. 물론 ‘직업 전망’이다. 그렇다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유망직종에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 유망하다고 손꼽히던 직업이 1~2년도 채 안 돼 인기가 시들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직업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새 직업’을 골랐을까.
    직업에도 ‘18번’ 있다

    삼성FnHonors 청담점 김선열 지점장.

    삼성FnHonors 청담점 김선열 지점장(40)은 VIP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자산관리 전문가(PB)다. ‘프라이빗 뱅커(Private Banker)’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삼성FnHonors가 PB 시장을 선점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씨는 삼성증권에서 영업 업무를 맡고 있던 1990년대 후반, 외국 증권회사의 수익구조를 검토하다 자산관리 분야가 전체 수익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그 길로 시장조사에 나섰다. 99년부터 푸르덴셜 살로먼스미스바니 시티은행 등 미국 유명 금융회사를 돌면서 PB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정보를 수집한 것. “PB는 샐러리맨이 아니라 개인사업자였습니다. 고객들의 나이를 고려할 때 PB의 정년은 70세 이상이에요.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PB를 선호하거든요.”

    김씨가 PB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를 주도하는’ 사람만이 남보다 먼저 유망한 분야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몸담고 있는 회사의 미래를 한번 상상하고 분석해보세요. 1년, 3년, 5년 후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일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남들보다 먼저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틈새를 노려라



    직업에도 ‘18번’ 있다

    파티플래너 윤지현씨.

    1월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자생한방병원. 한 시중은행이 VIP 고객을 대상으로 준비한 ‘파티’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전통 떡과 음료가 풍성하게 차려져 있고, 건강을 주제로 한 한의사들의 강의가 이어진다. 그런데 나이 지긋한 고객들의 모임에 ‘젊은 아가씨’ 한 명이 눈에 띈다.

    이날 행사를 기획·지휘·감독한 파티플래너 윤지현씨(32)가 그 주인공. 그는 한국 최초의 파티플래너다. 정확히 말하면 파티플래너란 직업을 만든 사람이 바로 윤씨. 파티플래너는 법인고객의 대형 파티는 물론이고 칠순잔치 돌잔치 등 각종 파티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성신여대 보건체육학과를 졸업한 윤씨는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다 2001년 파티플래너로 전업했다. 월 매출 30만원으로 시작한 ‘1인 사업’이 어느새 월 매출 5000만원의 비즈니스로 성장했고 윤씨는 파티플래너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후배 파티플래너까지 양성하고 있다.

    그는 “경제 수준의 향상으로 놀이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며 “누구도 시작하지 않은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했다. “한국인만큼 모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보다 특별하고 재미있는 모임을 원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고 있는데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직업이 없더라고요.”

    윤씨가 파티플래너를 표방한 이후 요리 파티플래너, 인테리어 파티플래너, 꽃 파티플래너 등 관련 직업이 속속 등장했다. 파티플래너는 여성단체 등에서 선정하는 유망직업에 빠지지 않고 거론되고 있다. 윤씨가 찾은 ‘틈새’가 ‘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은 기존의 방법으로는 소비자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시장에 조금만 눈길을 주면 틈새가 보이고 그 틈새에 바로 기회가 있다”고 귀띔했다.

    직업에도 ‘18번’ 있다

    IT컨설턴트 유호정씨.

    유호정씨(35)는 요즘 A금융기관 네트워크시스템의 경제성을 분석하고 있다. 유씨의 직업은 미래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정보기술(IT) 컨설턴트. 고급 정보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IT컨설팅 시장은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씨가 IT컨설팅에 뛰어든 것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대학 졸업 후 줄곧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일하다 IT컨설팅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등기부등본 자동발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프로그래머로도 잘나가고 있었지만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탓에 기술적, 심리적 한계를 느껴 전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나만이 팔 수 있는 상품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주변의 조언도 많이 들었고요. 프로그래머 시절 쌓은 경험과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을 발휘하기에는 IT컨설턴트가 딱 맞을 것 같았습니다.”

    유씨는 IT컨설턴트가 된 뒤에도 ‘자신만의 상품’을 개발해 나갔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아키텍처컨설팅(기업의 경영환경에 적합한 정보시스템의 청사진을 구축해주는 작업)에 뛰어들어 IT컨설팅 업계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것. 이런 노력으로 그는 업계에서 주목받는 30대 컨설턴트의 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다. 해외유학파와 MBA 출신 컨설턴트가 대거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상품’으로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유씨는 “유망직종이라고 섣불리 뛰어들기보다는 관련 직종에서 자신만이 특화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미도 직업이 될 수 있다

    직업에도 ‘18번’ 있다

    애견미용사이자 핸들러인 한수정씨.

    한수정씨(28)는 2월 열리는 애견박람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한씨의 직업은 세 가지다. 애견미용사, 애견미용학원 강사, 핸들러(쇼견을 관리하고 운동시키는 직업).

    고등학교 졸업 후 회사에도 다녀봤고,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늘 답답하기만 했던 한씨는 2년 전 애견미용학원에 등록했다.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 꾸미기를 좋아했던 터라 ‘취미’를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것이다.

    “돈은 벌어야겠고 그렇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 할 수는 없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여가생활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취미 관련 산업의 전망이 좋을 거라는 생각에 애견 미용기술을 배웠습니다.”

    애견미용사는 유망직업 평가에서 늘 상위에 오르는 직종이다. 애견미용사와 핸들러를 겸하면 수입도 만만찮다. 미용사의 경우 애견센터와 계약하면 월 200만~300만원의 수입이 가능하다. 핸들러는 개마다 차이가 있지만 마리당 20만~40만원, 쇼에서 한 번 끌어줄 때마다 5만~20만원을 받는다. 쇼에서 입상했을 때 받는 100만원 정도의 보너스는 덤.

    한씨처럼 취미를 직업으로 선택해 성공한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프로게이머나 푸드스타일리스트, 바리스타(커피전문가) 등도 취미가 직업이 된 경우다. 연세대 김농주 취업담당관은 “프로랄디자이너 푸드스타일리스트 소몰리에 등 취미를 발전시킨 직업이 향후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취미·여가생활과 관련된 크루즈디렉터(유람선 승무원), 여행개발사, 이벤트플래너 등도 유망업종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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