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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운세 ‘윷점’으로 한번 볼까

세 번 던져 나온 결과로 점괘 확인 … 예로부터 농민들이 한 해 풍흉 점치던 풍습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신년 운세 ‘윷점’으로 한번 볼까

신년 운세 ‘윷점’으로 한번 볼까

윷점의 연원을 처음으로 밝힌 영산대 신원봉 교수.

증권회사에 다니는 변광덕 부장(42)은 매년 설날이면 가족들과 모여 특별한 행사를 연다. 조상께 차롓상을 올린 뒤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윷판을 깔아놓고 윷점과 윷놀이를 즐기는 것. 화투를 붙잡고 고스톱에 매달리기보다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기자는 뜻에서 윷놀이를 택했다는 변부장은 “설날 아침에 가족들의 한 해 운수를 보는 윷점은 재미있으면서도 경건한 마음까지 든다”며 ‘윷점 예찬론’을 폈다.

“윷점을 보면서 우리 가족이 내심 무얼 원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길(吉)한 점괘가 나오면 서로 기뻐하고 흉(凶)한 점괘가 나오면 피흉추길(避凶趨吉)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가족간의 유대가 훨씬 깊어지는 등 여러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윷점은 4개의 윷가락을 세 번 던져 나온 결과로 점을 치는 것으로, 주역의 괘(卦)를 응용해 모두 125개 경우의 수(5×5×5)로 운수를 설명한다. 이를테면 처음 던진 윷가락이 걸, 두 번째가 개, 세 번째가 윷으로 나왔다면 ‘걸·개·윷 괘(40번째 괘)’에 해당한다는 식이다. 이러한 윷점은 언제, 어디서 유래했을까? 조선시대 학자들은 우리의 윷이 중국의 저포(樗蒲)에서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확한 연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사실 윷과 저포는 가락 수가 다르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윷가락이 4개인 반면 저포는 5개의 가락을 사용한다. 또 명칭과 방법에서도 다른 점이 많이 발견된다.

‘윷경’(정신세계사 펴냄)의 저자인 영산대 신원봉 교수(아시아비즈니스학)는 “윷은 농민들이 한 해의 풍흉(豊凶)을 점치는 윷점에서 출발했으나 후세에 이르러 그 본뜻을 잃고 놀이로 변질된 것”이라면서 “본래 윷은 우리 풍속이었으나 중국으로 전해져 변형을 거치는 과정에서 저포가 됐다”고 주장했다.

윷은 선사시대부터 유래



신교수가 윷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중국의 사고전서(동양 최대의 백과전서)에 실린 ‘영기경(靈棋經)’이란 책을 만나면서부터. 이미 ‘주역강의’ ‘역경잡설’ ‘금강경강의’ 같은 역서(易書)류를 번역한 바 있는 신교수는 주역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는 ‘영기경’을 주목했고, 이것이 윷점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영기경을 펴낸 중국인들조차 이 책이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온 것이며 영험하다고만 알고 있을 뿐 지은이가 불분명해 그 내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점을 칠 때 소위 ‘영기(靈棋·지름 1.2cm, 두께 0.9cm 정도의 바둑돌 모양)’ 12개를 이용한다고 씌어 있습니다. 이는 영기를 4개씩 한 세트로 묶어 세 그룹으로 나눈 뒤 각 그룹에 상·중·하를 새긴 다음 12개를 한 번에 던져 괘를 얻는 방식인데, 4개의 윷을 세 번 던져 괘를 구하는 우리 윷점과 사실상 동일합니다. 중국에서는 4개 또는 12개를 던지는 놀이나 점의 형태가 없기 때문에, 이 책은 우리의 풍속이 중국으로 전해져 약간의 변형을 거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우리 풍속을 기록한 ‘윷경’이란 책이 존재했을 것이며 이 책이 어떤 경로를 통해 중국인의 수중에 들어가 ‘영기경’으로 개작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한편으로 신교수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풍속과 남미의 파톨리 게임, 마야의 불(Bull) 게임 등에도 윷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는 동북아시아의 풍속이 아메리카로 건너갔음을 암시해준다는 점에서 윷의 유래는 선사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영기경, 즉 윷경은 우리 선조들의 유품에서도 발견된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1587~1671) 유물전시관에는 ‘영기경’이라는 제목이 붙은 고서와 나무상자에 가지런히 정돈된 영기 12개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이 유품을 남긴 이는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뛰어난 화가였던 공재 윤두서(1688~1715)로, 몇 안 되는 유품 중에 ‘영기경’이 끼여 있는 것을 보면 평소 윤두서가 대단히 애지중지하던 책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인 유득공(1749~1807)이 쓴 ‘경도잡지’에는 윷점을 치는 구체적인 방법이 소개돼 있다. 원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윷판에는 29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으며 말 4개를 사용한다. 말은 붉은 싸리나무 두 토막의 가운데를 잘라 네 짝을 만드는데 혹 콩 반 알 정도로 작아도 된다. 세속에서는 정월 초하룻날 윷을 던져 한 해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그리고 세 번을 던져 64괘와 짝 지운 점괘가 있다.”

신년 운세 ‘윷점’으로 한번 볼까

윷점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정신 집중이 된 상태에서 윷을 던져야 영험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윷점을 주역 64괘에 결부시켜 길흉을 점쳤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도도도’가 나오면 건괘(乾卦)요, ‘도도개’가 나오면 이괘(履卦)에 해당해 그에 따른 길흉을 점쳐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정적으로 오류가 있다는 게 신교수의 주장.

“윷은 기본적으로 5진법 체계이고, 주역은 2진법 체계라서 주역 64괘에 그대로 접목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유득공의 설명에서도 윷과 모를 동일시해 64개의 경우의 수(4×4×4)로 압축시킨 뒤 억지로 64괘의 괘 풀이를 그대로 꿰맞추었던 것이죠. 흔히 인터넷 ‘점술 사이트’에 소개되고 있는 윷점도 이런 오류가 있는 해석을 그대로 채택해 운수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 영기경은 분명히 125개 경우의 수를 나열해 길흉을 논하고 있어요. 영기경이 윷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죠.”

여기서 신교수는 조심스럽게 윷경(영기경)이 주역 2진법 체계를 따른 것이 아니라 고대시대에 있었던 우리 고유의 역 체계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윷은 우리 고대문화를 연구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고, 이것을 붙들고 조심스레 당기다보면 의외의 것이 끌려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신교수는 윷경을 바탕으로 주역 이전의 태고역(太古易)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윷점이 과연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신교수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윷의 기원은 농민들이 한 해의 풍흉을 점치기 위한 데서 출발했고, 윷경은 바로 이 점사(占辭)를 모아놓은 것인 만큼 일차적으로 점서(占書)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중국 청나라 때의 사고전서 편찬자들도 ‘옛 점법의 한 형태를 보관해두기 위해’ 영기경을 채록했다고 밝히고 있을 정도죠. 또 영기경의 서문에는 한결같이 이 책이 점서로서 영험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영험함이 있는 점서’라는 것은 현대식으로 바꿔 말하면 ‘맞힐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신교수는 “확률이 높고 낮고를 떠나 윷점에는 주역처럼 점서의 기능 외에 교훈적인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면서 공자의 일화를 예로 든다.

공자가 말년에 주역 연구에 심취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그때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도 역시 점을 믿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백 번을 쳐 칠십 번을 맞혔으니 확률이 높은 쪽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점을 치는 사람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무(巫)요, 다른 하나는 사(史)요, 나머지 하나는 나 같은 경우다. 무는 오로지 길흉만을 보는 자요, 사는 길흉에 내재된 수(數)의 이치를 간파해내는 자며, 나는 길흉이나 수의 이치보다는 그것으로 유추해낸 덕(德)을 중시한다.”

윷점은 윷가락을 던질 때 그 결과가 정해진다. 따라서 던질 때의 심리상태에 따라 확률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윷경에서는 윷의 제작과정에서부터 점을 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까다로운 규정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다. 바로 심리적 안정과 집중을 위한 조치인 것이다.

신교수는 그러나 즐거운 민속놀이를 하면서 일일이 윷경의 ‘조치’를 따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으로 종교인이라면 자신이 모시는 신을 생각하면 될 것이고, 비종교인이라면 대자연과 교감한다고 생각하면서 원하는 바를 기원하며 윷을 던지고, 또 경건한 마음으로 괘를 해석하다보면 공자가 말한 ‘덕’의 의미도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윷점은 설날 가족행사로서 손색없는 유익한 놀이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3.02.06 371호 (p86~87)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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