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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정착, 가족 기다리겠다”

일시귀국 피랍자 5명 구직 등 적극 행동 … 對北 정세 급변 당분간 해결 어려울 듯

  • 이영이/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yes202@donga.com

“일본에 정착, 가족 기다리겠다”

”배지를 뗀다는 것은 조선공민으로서 의무나 권리를 다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배지를 달고 있을 의미가 없어졌다. 결코 조선에 대한 적대적인 정치적 의도는 아니다.”

북한에 납치된 지 24년 만인 2002년 10월15일 일본에 일시귀국한 피랍자 5명이 12월19일 일제히 가슴에 달고 있던 김일성 배지를 뗐다. 이는 자녀나 배우자를 북한에 남겨둔 채 일시귀국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이 북한에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 정착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영주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이들은 연말을 전후해 취직 의사를 밝히는 등 정착 준비에 적극 나섰다. 이들에게 언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일시귀국을 전제로 일본에 돌아온 이들의 발이 묶인 것은 일본 정부가 이들을 북한에 되돌려 보내지 않겠다고 결정한 10월24일경. 피랍자 문제로 일본 내 대북(對北)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일본 정부는 당초 2주일 후 되돌려 보내기로 한 북한과의 약속을 깨고 이들을 붙잡아두었다. 이들을 되돌려 보내면 다시는 일본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피랍자 가족들의 우려와 바람이 강하게 작용했다. 또 10월 말로 예정된 북일 수교협상에서 강경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북한 내 피랍자 가족들의 귀국을 실현시키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1월부터 ‘납치피해자 지원법’시행



북한에 가족을 남기고 온 피랍자들로서는 이런 정부 방침에 대해 내놓고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0월 말 북일 수교교섭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다음 교섭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교착상태에 빠지자 피랍자들은 ‘장기전’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일본에서 자녀들을 기다리겠다는 결심을 밝힌 것은 11월5일.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자발적인 결정’임을 강조하면서도 “하루빨리 가족들을 만나게 도와달라”며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대북교섭을 호소했다.

월북한 미군병사와 결혼해 딸 둘을 남겨두고 온 소가 히토미씨(43)는 처음 일본에 왔을 때 귀국회견에서 무뚝뚝한 어조로 “가족들을 무척 만나고 싶었다”는 한마디만 해 험악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그러나 고향인 니가타현 사도가시마에서 가족들을 만난 후 눈에 띄게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행사에서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고향이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진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경직됐던 그의 모습은 어느새 귀여운 ‘일본 아줌마’로 변했다.

그는 미군병사였던 남편이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는 북한당국의 발표에 이어, 일본 한 주간지 기자가 북한을 방문해 남편과 딸을 만나고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하자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겨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니가타에서 일자리를 찾는 등 일본 정착에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내 고향 마을을 좀더 잘 알기 위해” 홈헬퍼(가정관리 보조원) 연수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무라 야스시씨(47)와 부인 후키에씨(47) 역시 북한에 두고 온 세 자녀를 걱정하면서도 지난해 말 고향인 후쿠이현 오바마시에 취직을 의뢰했다. 지무라씨는 “정부에 기대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며 직접 시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시는 4월1일자로 이들을 시 촉탁직원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지무라씨는 “조선어 번역이나 강습회 등은 자원봉사 활동으로 하고 싶기 때문에 그 밖의 일을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심경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경우는 북한 사회과학원 민속연구소 자료실 번역원으로 일했던 하스이케 가오루씨(46). 그는 대일 공작원용 번역업무를 주로 해온 만큼 철저히 친북적인 견해를 보였다. 귀국 직후 친구들이 넌지시 북한체제를 비난하자 “역사책을 공부하고 남북분단의 책임이 일본에 있음을 알았다”고 반박했다. 심지어 북한을 ‘조국’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북한에 두고 온 두 자녀를 포함한 영구귀국 문제에 대해서도 “반일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이 부모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에는 “고향의 품에 안겨보고서야 내 존재가 부모님께 목숨 이상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일본에 머물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자녀문제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미국에 가고 싶어할 수도 있다”며 여러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하스이케씨와 부인 유키코씨는 고향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 시청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시청으로부터 비상근직원 근무가 내정된 상태다.

하스이케씨는 9일부터 가시와자키시 국제교류단체가 개최하는 한글강좌도 맡고 있다. 주 1회씩 총 8회로 예정된 이 한글강좌에서 그는 “처음 한글을 배울 때를 생각하며 강의를 해보았는데 쉽지는 않았다”면서 “앞으로 더 연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정착 의지가 굳어지자 일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자립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1월1일자로 시행되기 시작한 납치피해자 지원법에 따르면 피랍자 정착지원금은 독신의 경우 월 17만엔(약 170만원), 2인 가구에는 24만엔(약 240만원)이 지급된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데 풍족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는 금액. 정착지원금 지급 시한은 5년간이다.

후생노동성은 납치피해자 지원법 시행에 맞춰 각종 고용지원책도 마련했다. 기능 습득을 위한 훈련 기간중 훈련수당과 구직활동에 필요한 교통비, 숙박비, 취직이나 기능 습득에 필요한 이사비용 등을 지원한다. 이중 훈련수당은 하루 3540엔으로 월 7만엔 가량 된다. 이와 함께 이들에게 직업훈련을 시키는 사업주에게는 월 2만4100엔을 지급하고 고용시에는 임금의 25∼30%를 보조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피랍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일자리를 알선하는가 하면 사회복지 사무소 촉탁 등을 파견해 피랍자들의 생활 상담을 하고 이들이 일본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일이 지도해주고 있다.

때문에 피랍자들은 당장의 생활에 대한 큰 불안이나 걱정은 없는 상태다. 오히려 과분할 정도의 성원과 관심에 감동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자녀문제로 얼굴에서 그늘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이 일본에 올 경우를 생각하면 불안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성의껏 대응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피랍자 문제는 당초 2002년 9월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사과하는 등 물꼬가 트였지만 그 후 일본 내 보수우익을 중심으로 한 여론이 강경해지면서 북일교섭의 최대 걸림돌로 떠올랐다. 북한도 북한대로 ‘일시귀국’이라는 약속을 지키라며 반발하고 있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귀국문제는 당분간 해결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여기에 북한 핵개발 문제가 겹치면서 국제정세는 이미 피랍자 문제만 신경 쓰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일본에 일시귀국했다가 그대로 머물게 된 피랍일본인 5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안정돼 북일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들이 일본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기에는 좀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주간동아 370호 (p64~68)

이영이/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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