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0

2003.01.30

‘경찰대’는 검찰에 찍혔다?

수사권 독립 요구 때마다 ‘폐지론’ 들먹 … “태생적 한계에 위헌 소지” 집중공격 받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1-23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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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대’는 검찰에 찍혔다?

    2002년 3월18일 용인 경찰대에서 열린 제18기 임용식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상 수상자 신보영 경위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있다.

    ”위헌 소지가 있는 경찰대는 폐지돼야 한다.”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가 경찰을 통해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육사를 모델로 만든 게 경찰대다.”

    “경찰대가 학생들을 상대로 ‘경찰은 검찰의 노예’라는 식의 교육을 시켜왔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에 발끈한 검찰에서 쏟아진 말이다. 1월15일 경찰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에서 수사권 독립 문제를 공론화한 후 경찰대학이 검찰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논란의 불똥이 ‘경찰대 폐지론’으로 튄 것은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검찰은 수사권 독립 추진 세력의 핵심으로 경찰대학 출신 간부들을 지목해 경찰대 폐지론을 제기한 것이다.

    ‘경찰 엘리트’냐 ‘경찰 하나회’냐



    왜 검찰은 경찰대 폐지론을 들고 나왔는가. 왜 하필 경찰대 동문회가 수사권 독립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번 사태의 중심에 경찰대 동문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경찰 내 경찰대 졸업생들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경찰대 출신에 대한 경찰 안팎의 평가는 엇갈린다. 대체적인 평가는 “업무 능력이 뛰어난, 경찰 개혁을 이끌어나갈 ‘재원’”이라는 것이지만, 동문회라는 이너서클을 활용해 기득권을 키워가고 있는 ‘무서운 존재들’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찮다. ‘경찰의 엘리트’와 ‘경찰의 하나회’라는 서로 다른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경찰대 출신들은 경찰 발전을 위해 여러 번 집단행동을 벌여왔다. 1988년 1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경찰 간부가 무더기로 구속되는 등 경찰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자 경찰대 동문들이 경찰의 정치적 중립화를 요구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이들은 또 경찰청 발족을 앞둔 91년 7월 경찰청에 대한 내무부 장관의 지휘 규칙에 대해 항의하고, 95년 검찰총장의 경찰 지휘 발언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는 등 경찰의 위상 정립과 관련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왔다. 99년엔 집단적으로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려다 경찰 수뇌부의 지시로 포기하기도 했다.

    30대 후반~40대 초반인 경찰대 1·2·3기 졸업생들이 ‘경찰의 꽃’인 총경에 속속 진급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다. 이들은 검사보다 못할 게 없다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검사의 지휘 없이는 독자적 수사를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순경 공채 출신이나 간부후보생 출신들에 비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경찰대 동문회의 핵심 멤버들은 그동안 수사권 독립문제와 관련된 대응방안, 공론화를 위한 세부계획 등을 논의해왔다. 국민토론회의 개최, 인터넷을 통한 홍보, 간부후보생 및 타조직과의 연계, 기금 모금 등의 아이디어들도 경찰대 동문회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 동시에 경찰대 동문회는 현재 경찰대 교수, 경찰대 출신 대학교수, 현직 경찰이 참여한 수사권 독립 관련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검찰이 들고 나온 경찰대 폐지론은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요구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소재다. 그렇다면 경찰대 졸업생들은 어떤 특혜를 누리며 경찰조직에서 성장해 왔을까.

    경찰대의 역사는 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9년 경찰대학설치법이 제정·공포되면서 경찰대의 설립 근거가 마련됐고, 81년 3월 미처 캠퍼스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천 부평동 경찰종합학교 안에서 더부살이하며 첫 입학생을 받았다. ‘경찰조직 쇄신과 인재 확보’라는 표면적 이유보다는 5공화국의 정권안보 차원에서 세워졌다는 게 중론이다. 경찰대는 2003학년도 입시에서 평균 31.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줄곧 20∼30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여왔다. 경찰대의 커트라인은 현재 서울대와 고·연대 인기 학과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입시전문가들은 경찰대 합격선을 고교 성적 상위 0.5∼2%로 추정한다.

    ‘경찰대’는 검찰에 찍혔다?
    ‘경찰대 출신들은 병역을 면제받고, 무상으로 교육받는다’ ‘경찰대 출신은 사관학교 출신이고 다른 곳 출신은 비사관 출신이냐’ ‘일반 대학 경찰행정학과 졸업자는 시험을 거쳐 경위가 되는데 경찰대학 출신은 바로 경위가 되니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등의 논리가 경찰대 폐교론의 주된 논거다. 실제로 경찰대생들이 받는 특혜는 상당하다. 우선 병역과 학비 문제를 들 수 있다. 남학생은 기동대 또는 전경대에 배속돼 2년간 소대장으로 복무하는 것으로 병역을 대신한다. 학생 수가 500명도 채 안 되는 조직의 1년 예산이 200억원에 이르는 것은 학비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대 졸업생의 가장 큰 혜택은 경찰 입직 과정에서의 특혜다.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고 경찰간부로 자동 임용하는 제도는 위헌 시비가 제기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공채로 경찰에 들어가려면 순경 공채와 경찰간부후보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순경으로 입직한 경찰관은 15년, 때로는 평생을 근무해야 경위가 되는데, 경찰대학 출신은 경찰대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소대장 등을 마친 뒤 곧바로 경위로 승진하는 것이다. 이런 경찰대 출신들의 특혜는 경찰 인사적체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실제 전체 경찰관 9만여명의 87%를 차지하는 순경~경사 계급은 매년 실시되는 승진시험에서 30~40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엔 순경 출신 경찰청장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경찰대 졸업생들이 총경을 배출한 후로는 순경 공채 출신의 경우엔 경찰서장이 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한 이모 경장은 “경사 시험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경찰에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뻔히 보인다”면서 “일선서 과장 정도가 목표”라고 말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경찰에 들어오면 대개 20대 후반인 간부후보생 출신들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찰대 출신보다 평균 5년 정도 늦게 출발하는 데다, 승진시험에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경찰대 출신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고시 출신 경찰 고위 간부들도 하급자인 경찰대 출신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찰대 졸업생 전체의 ‘힘’을 고려할 때 경찰대 출신들에게 잘못 보이면 상관이라도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초창기 경찰대 졸업자들은 믿고 의지할 선배와 인맥이 없어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20대 상관들에게 부하 직원들은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상급자들은 젊은 간부들의 실력을 의심했다. 아래위 어느 쪽과도 편하게 어울릴 수 없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찰을 떠나 고시를 준비하거나 다른 직장을 찾는 졸업생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최근에 졸업하는 경찰대 출신들은 일선에 배치되자마자 학교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경찰 실무를 익혀나간다. 업무 효율성도 높을 수밖에 없다. 다른 부서에 업무 관련 협조 요청을 하는 경우, 경찰대 선후배를 찾아 “경찰대 ××기인데 사정을 알아봐달라”고 하면 쉽게 일이 처리된다. 당연히 상급자들도 경찰대 출신들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경찰대 출신들은 계급에 관계없이 ‘선배’ ‘후배’라는 호칭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졸업생들간의 연대의식과 동질성이 그만큼 강한 것이다. 비(非)경찰대 출신의 한 경찰간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경찰에서 연판장이 돌았다면, 또 성명서를 발표했다면 그 중심에 항상 경찰대 동문회가 자리잡고 있는 이유도 강한 동질감 때문이다.

    경찰대를 졸업한 20대 경위들은 40, 50대 ‘동료’들과 치른 승진시험에서 월등한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총경을 다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98년 1기생인 윤재옥 경정이 총경으로 진급하면서 이러한 예측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현재 경찰대 출신 30여명이 경찰서장급인 총경으로 승진해 있다. 이들이 군대의 별에 해당하는 경무관, 치안감 등 최고위급 경찰간부로 성장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경찰대’는 검찰에 찍혔다?

    경찰대의 수업(위) 및 동아리 활동 모습.

    총경으로 진급한 이들 1·2·3기 졸업생들은 수사권 독립과 관련, 후배들을 독려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대 출신 총경으로는 1기로 윤재옥(서울 구로경찰서장) 서천호(경기 과천경찰서장) 김성훈(제4기동대장) 조길형(수원 남부경찰서장) 황성찬(경북 예천경찰서장) 김병화(오사카 주재관) 총경 등, 2기로는 행정고시를 패스한 박종준(경찰청 마약과장), 사법고시에 합격한 조성훈(연수중) 장희곤(경찰청 발전전략 팀장) 총경 등이 있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한광일 총경은 3기의 대표주자다. 2, 3년 후엔 경무관을 다는 경찰대 졸업생이 나오고 일선 경찰서장의 3분의 1 이상을 경찰대 졸업생이 차지할 전망이다.

    경찰대라는 ‘특수한 통로’를 통해 경찰 간부를 확충하는 제도는 선진국 중 독일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전국 50여개 대학에 경찰행정학과가 설치돼 있고 순경 공채에도 고학력자가 몰려드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반면 한국처럼 경찰이 검찰에 완벽하게 종속돼 있는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경찰대 개혁은 별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경찰청은 경찰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1월17일 경찰대의 정원 축소를 비롯한 경찰대 개혁방안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현 제도가 하위직 인사적체를 가중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찰로서는 수사권 독립을 위해 경찰대 개혁이라는 카드까지 꺼내놓은 셈이다. 수사권 독립과 맞물려 경찰대 개혁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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