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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核도박 갈 데까지 가나

미국에 책임 떠넘기며 수위 계속 올려 … 美-北 국가 체면 싸움 양상, 한국 선택이 중요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김정일 核도박 갈 데까지 가나

김정일 核도박 갈 데까지 가나

12월27일 긴급 소집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북한 핵문제를 물고늘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정세현 통일부 장관(왼쪽)과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위쪽)외교통상부 천영우 국제기구정책관(오른쪽)과 심윤조 북미국장이 12월23일 북한 영변 원전 감시장치 제거에 대한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아래쪽)

2002년 10월 켈리 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시작된 북핵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전쟁은 안 된다.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을 뿐, 사태를 통제할 고삐를 잡아채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는가.

한동안 ‘입씨름’ 수준에 머물러 있던 북핵 문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이사회가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철회시키기 위해 중유 공급을 중단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대결 국면에 들어섰다. 북한은 이에 대해 즉시 사용 후 핵연료의 반출을 감시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카메라를 돌려놓고, 실험용 원자로에 핵연료를 재장전하는 등 ‘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북한의 ‘미국 걸고 넘어지기’다. 북한은 북핵 위기를 조장하면서 그 이유를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12월20일 평양방송이 로동신문을 논평한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미국은 최근 발표한 대량살육무기(대량살상무기)와 싸우기 위한 국가전략이라는 문건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에 대한 적대국들의 생화학 공격을 운운하면서, 그에 대응하여 핵무기를 비롯한 압도적인 무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공언하였다. 미국이 말하는 적대국들이란 바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이 제멋대로 규정한 ‘악의 축’ 명단에 올라 있는 나라들이다. 미국이 반(反)이라크 전쟁을 한사코 단행하려 하는 것은, 제2의 조선전쟁(한국전쟁)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반이라크 전쟁은 새로운 조선전쟁을 위한 예비전쟁이 될 수 있으며, 그 실례가 1990년대 초 페르시아만 전쟁(걸프전)이 조선반도에 핵위기를 몰아왔었던 것과 같다. …우리는 이미 조-미(朝美) 불가침조약 체결 제안을 내놓았으며, 미국이 우리와 전쟁을 할 의사가 없다면 미국이 조-미불가침조약 체결 제안에 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도 그에 대응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미제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미제가 핵 몽둥이로 우리 인민의 신념과 의지를 꺾고 사회주의 제도를 말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미제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을 터치면(일으키면) 그들 자신이 그 불길에 타 죽게 될 것이다.”

‘수동성’ 토대 위에 ‘적극적 대응’



북한의 주장은 대개 ‘미국이 ∼하면, 우리는 ∼할 것이다’는 조건문 형태로 발표되는데, 이는 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미국)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수동성’의 토대 위에 ‘적극적 대응’을 내놓는 것이 북한 태도인 것이다.

북한의 전력 사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하다. 북한 철도는 대부분이 전철이다. 근 한 달간 북한을 방문하고 최근 돌아온 한 인사는 “평양에서 청진을 가는 데 열차로 사흘이 걸렸다”며 혀를 찼다. 북한의 실제 전력 생산량은 200만kw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동안 북한은 KEDO에서 제공해준 연 50만t의 중유로 30만kw 가량의 전력을 생산해왔다. 그런데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중유 공급이 중단된 것이다.

전기는 항상 생산량이 소비량을 초과해야만 발전(發電) 체제가 유지되는 독특한 산업이다. 생산량과 소비량이 일치되면 그 나라의 전력 체제는 순식간에 무너지는 ‘블랙아웃(Black Out)’ 사태가 벌어진다. 전기가 부족하던 1970년대 한국에서는 과부하 때문에 퓨즈가 끊어지며 일순간에 암흑을 맞는 집이 많았다. 블랙아웃은 이러한 사태가 국가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지면 모든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행정망과 통신망도 끊어져 국가는 전시(戰時)를 방불하는 위기를 맞게 된다.

때문에 전기 소비량이 생산량에 육박하면, 전력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전기 공급을 차단하거나 제한적으로 송전한다. 북한의 전철이 평양에서 청진을 가는 데 사흘이 걸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KEDO의 중유 공급 중단에 대항해 북한은 제네바 합의 이후 가동을 중단해온 5MW의 실험용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5MW를 kw로 환산하면 5000kw인데, 5000kw는 KEDO의 지원으로 생산해온 30만kw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전기가 부족한 북한이 30만kw를 버리고 5000kw를 택한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5000kw를 선택한 것은 북한의 목표가 다른데 있음을 암시한다. 이 문제는 북한의 대미·대남정책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는 북한 안보 문제를 논의하고, 한국과는 민족통일 문제는 논의한다는 자세로 일관해왔다.

허약한 북한 경제 버틸 수 있을까

70년대 이후 북한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모토로 한 고려연방제 통일안을 제시해왔다. 북한은 72년 발표된 7·4 공동성명과 2000년 6월15일의 정상회담 공동보도문에서도 이를 관철했다. 북한은 남한이 남북대화 성공에 집착해 서두르면 고려연방제 수용을 전제로 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미국과 강화협상(일명 평화협상)을 벌이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외교 전략인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전략이 극적으로 먹혀든 것이 2000년이었다.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킨 북한은 10월에 조명록을 미국에 보내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게 하고, 이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불러들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케 했다. 미국과의 고위급 대화를 통해 김정일 정권 체제를 인정받으려고 하던 북한의 노력은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여의치 않았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부시 정부는 아프간 전쟁에 돌입하며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역시 ‘악의 축’으로 규정된 이라크와의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김정일 정권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조-미 불가침 조약)을 받아내 김정일 정권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 북한의 목표다. 이를 위해 북한은 30만kw를 포기하고 5000kw(핵무기)를 선택했다. 북한의 꿈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북-미 간 고위급 대화가 이뤄지고, 그 대화에서 김정일 정권을 인정해주는 모종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북한의 경제 체제가 버텨주어야 한다.

결국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주민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북핵 문제는 북한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고난의 행군을 견딜 맷집이 있느냐와 남한의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북한 중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이냐에 따라 향후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국제정치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북한은 국가 체면이 있기 때문에 전쟁 직전까지는 먼저 굽히고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열악한 경제사정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보며 북핵 문제를 일으킨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게임에서 노무현 정부가 어느 쪽을 선택 할 것인가가 북핵 게임의 관전 포인트다. 과거 김영삼(YS) 정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김정일 정권은 생존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노당선자가 YS의 길을 걷느냐, 아니면 반대로 가느냐가 북핵 문제와 21세기 남북문제를 결정짓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367호 (p12~13)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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