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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의 둥지 ‘옥탑방’을 아는가

여름엔 찜통 겨울엔 북극 ‘불법주거지’ … 서민들의 애환 응축된 공간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공중의 둥지 ‘옥탑방’을 아는가

공중의 둥지 ‘옥탑방’을 아는가
귀족 이미지를 벗기 위해 애써오던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옥탑방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후보는 “옥탑방을 아느냐”는 질문에 “잘 모른다”고 대답해 ‘위장서민’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조차 “나도 그 말은 몰랐다”고 너무 솔직히(?) 고백하는 바람에 ‘옥탑방 논쟁’은 막을 내렸다. 대통령 후보들에게 옥탑방은 너무 어려운 단어였을까.



대통령 후보에겐 어려운 단어

공중의 둥지 ‘옥탑방’을 아는가
이 사건 이후 두 후보에게 박상우(42)의 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9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읽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옥탑방은 방 한 칸이라도 더 세를 놓기 위해 건물 옥상에 만든 불법주거지이며, 지상에서 누울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의 도피처다. 작가들이 ‘가난’을 시각화할 때 으레 옥탑방을 찾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정치적으로 서민생활 안정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옥탑방 양성화’는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박상우씨는 “옥탑방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어감에서 풍기는 문학적 공간성에 매료돼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 서두에서 주인공 ‘민수’의 입을 빌려 작가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냈다.

“나의 기억 속에는 세월이 흘러도 불이 꺼지지 않는 자그마한 방 한 칸이 있다.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을 때, 나는 삼층 건물의 옥상에 위치한 그것을 처음 목격했었다. 목격했었다, 라고 말하는 건 당시에 내가 받았던 기이한 충격감이 반영된 결과일 터이다. 삼층씩이나 되는 번듯한 양옥 건물의 옥상에 그렇게 허름한 주거공간이 얹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지고 사람들이 거처할 공간이 줄어든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옥상에까지 방을 들이고 세입자를 받아들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공중의 둥지 ‘옥탑방’을 아는가
그러나 이윽고 주인공 민수는 삶의 도처에서 옥탑방을 발견한다. 좌석버스 옆자리의 40대 사내가 읽다 놓고 내린 생활정보지에서 옥탑방이라는 단어부터 눈에 들어온다. ‘옥탑방 13평 도시가 주방 보500-20 항시 입주가/ 단독 옥탑방 화장실 주방 기름보 전1500월세가/ 옥탑방 전철 5분 거리 전700 절충가….’

“소설에서 여주인공(주희)은 백화점이라고 하는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곳에 근무하면서 언덕 꼭대기 3층 양옥집 옥상에서 살아요. 저는 이곳을 지상에 발붙이지 못한 ‘공간에 떠 있는 방’이라고 했습니다. 이 방에서 그녀는 지상의 낙원으로 내려오는 꿈을 꾸죠. 인간의 욕망은 수직상승 구조여서 높은 것을 선호하는 반면, 옥탑방에 사는 이들은 지상으로 내려가는 꿈을 꾸니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또 불법구조물인 옥탑방이야말로 가난한 이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을 대변한다고 보았습니다.”(박상우)

박상우씨는 1989년 전업작가가 된 후 서울 노량진 전철역 건너편 상도동 산동네에 살았다. 옥탑방은 아니지만 온 동네가 다 내려다보이는 달동네에서 아침이면 골목마다 어디론가 빠져나갔다가 해질 무렵 어깨를 늘어뜨리고 골목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환하게 불 밝힌 63빌딩의 위용이었다. 달동네는 자본주의 사회가 배출해낸 욕망의 사각지대였고, 그곳에서도 옥탑방은 서민들의 애환이 응축된 공간이었다.

그나마 옥탑방이 가장 낭만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일 것이다. 이만교씨의 원작소설에는 그냥 자취방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유하 감독은 옥탑방을 선택했다. 영화에서는 돈 많은 의사와 결혼한 연희가 남자친구 준영과 주말부부처럼 살기 위해 마련한 가짜 신혼집이다.

“만약 연희가 의사 대신 가난한 시간강사 준영과 결혼했다면 옥탑방 아니면 반지하 셋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겠죠. 그게 현실이에요. 영화의 배경은 일부러 한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옥수동 산동네를 택했습니다. 몸은 남루한 공간에 두고 있지만, 멀리 한강과 압구정동을 바라보는 위치죠.”(유하)

그러나 아무리 신혼집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옥탑방이라도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두 사람에게는 일시적인 도피처일 뿐이다. 원작자인 이만교씨(35)도 서울에 와서 처음 자리잡은 곳이 옥탑방이었기 때문에 영화 속의 공간이 낯설지 않았다. “90년대에 명륜동 성균관대 뒤 산동네에서 3층짜리 다세대주택의 옥상에서 살았어요. 천장이 낮아 여름에는 엄청나게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게 특징이죠. 너무 더워 견딜 수 없으면 옥상마당에 나가 물을 뿌리곤 했죠.”

공중의 둥지 ‘옥탑방’을 아는가
그러나 이만교씨는 거주의 불편함보다 ‘인간적인 공간’으로서 옥탑방을 추억한다. “꼭대기까지 힘들게 올라가면 그때부터 나만의 공간이 펼쳐지잖아요. 옥상 마당에서 화초를 가꾸기도 하고 시야가 툭 트여 있어 최고였어요. 누추한 집과 멋진 조망, 뭔가 어긋나는 것 같은 상황이죠.”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준영은 스카이라운지의 어느 레스토랑에 앉아 연희에게 이런 말을 한다. “도시 야경을 바라볼 때마다 하느님은 스카이라운지의 높이쯤에 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 여기서는 세상이 그저 바라보기에 딱 알맞도록 정말 근사하게만 보이거든.” 하느님의 눈높이라는 스카이라운지와 옥탑방의 공통점은 세상이 아주 넓게 그리고 근사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은 스카이라운지 같은 곳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어하고, 옥탑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작가 조경란씨(33)의 작업실은 서울 봉천동 산중턱의 2층집 옥상이다. 그는 이곳에서 부모와 함께 산다. 그의 장편소설 ‘가족의 기원’이나 단편 ‘망원경’, 자전소설 ‘코끼리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옥탑방의 풍경은 어떤 작품보다 ‘리얼’하다.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더위가 느껴지고 쿵쾅쿵쾅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하철을 타고 대림동 주변을 지나다 보면 옥탑방들이 금방 눈에 띄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아도 요즘 옥탑방 올리는 곳이 참 많아요. 원래 물탱크를 놓아야 할 자리에 사람이 사는 거죠. 멀리서 바라보면 옥상 위에 노란 물탱크와 작은 옥탑방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참 한국적이에요. 옥상이라는 사막 위에 일용할 양식(물)이라고 할까.”

조경란씨는 옥탑방 그 자체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관심이 많다. 그의 단편 ‘망원경’(소설집 ‘나의 자줏빛 소파’)은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옥탑방에 사는 주인공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9시 뉴스를 기다리는 동안 망원경을 들고 옥상으로 나가 희미한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차도를 질주하는 버스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옥상에 널어놓고 말리던 무청과 호박을 걷어내기 위해 올라온 이웃집 여자.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쳐 흠칫 놀라기도 한다. “옥탑방은 문만 열면 밖이잖아요. 옥상에 있으면 이웃들의 이야기가 피부로 느껴져요. 소설을 쓰는 제게는 타자와 접촉하기 쉬운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죠.”

함민복 시인은 ‘옥탑방’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이 도시의 건물들은 지붕이 없다/ 사각단면으로 잘려나간 것 같은/ 머리가 없는/ 벼랑으로 완성된/ 옥상에서/ 招魂하듯/ 흔들리는 언 빨래소리/ 덜그럭덜그럭/ 들리는.

옥탑방에 서면 세상이 잘 보인다.







주간동아 2002.06.13 338호 (p44~46)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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