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2002.04.25

‘펜트하우스’에 대한 몇 가지 단상

  • 조용준 기자

    입력2004-11-01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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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트하우스’에 대한 몇 가지 단상
    그대 소년 시절의 ‘음습하고 비밀스러운 기억’으로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그대와 친구들을 한군데로 묶어 무엇인가 어른스러운 비밀을 공유하는 동지와 결사(結社)의 막연한 느낌을 갖게 만든 매개가 무엇이었던가. 기자의 중학교 시절 급우 가운데는 부모님의 검열을 피해 침대 매트리스 밑에 각양각색의 도색잡지를 또 하나의 매트리스로 온통 깔아놓았던 친구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마치 생선을 노리는 살쾡이처럼 그 친구의 방으로 은밀하게 숨어들던 친구들은 얼마나 많았던지.

    그 시절, 엄마의 눈을 피해 몰래 보았던 ‘플레이보이’와 ‘펜트하우스’는 마치 몽정(夢精)처럼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훌쩍 건너뛰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과 북의 경비병들이 초코파이와 ‘펜트하우스’를 통해 체제가 아닌 인간, 핏줄에 눈뜨게 되듯.

    청소년기 야릇한 추억의 책 … 인터넷에 밀려 폐간 위기

    어쨌든 ‘긴조세대’와 386세대의 성의식은 ‘꿀단지’에서 시작해 ‘플레이보이’로 정형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처럼 사춘기의 추억이 누구나 한두 컷쯤은 연결돼 있을 ‘펜트하우스’가 폐간된다는 소식이다. 이유는 물론 인터넷 때문이다. 1965년 ‘플레이보이’에 대항해 보브 구치오니(71)가 런던에서 창간한 ‘펜트하우스’는 한때 발행부수가 500만부에 달하기도 했지만 ‘인터넷 포르노’의 범람으로 65만부로 급격히 줄었고, 5200만 달러의 적자에 허덕인다는 얘기다.

    보브 구치오니의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미래가 전자미디어 쪽으로 옮겨간 것이 분명하다. 펜트하우스와 같은 잡지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1995년 ‘인터넷에서 섹스를 찾는 방법’에서 모니터 화면이 아무리 크고 해상도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간편하고 만족스럽기로 말하자면 차라리 잡지를 사서 보는 것만 못하기 때문에 인터넷 포르노는 대중화되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이 전망은 빗나갔다. 움베르토 에코라 할지라도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의 눈부신 진화를 예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정체 불명의 지하출판사에서 만든 ‘찌라시’ 수준이 아닌, 제대로 틀을 갖춘 도색잡지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인 1953년 휴 헤프너가 단돈 8000달러로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와 ‘공평한 성관계’의 기치를 내건 ‘플레이보이’를 만들며 시작되었다. 그 해 휴 헤프너는 영화 ‘나이애가라’에 출연한 마릴린 먼로를 유심히 보았고, 이듬해 창간호 표지모델로 그녀를 내세웠다. 창간호는 무려 750만부나 팔려 나가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현재 350만부 정도 찍는다). 일리노이주립대를 2년 만에 졸업해 수재 소리를 들었지만, 별볼일 없는 만화가에 불과했던 당시 27세의 휴 헤프너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지금 70이 넘은 나이에도 7명의 미녀와 같은 집에서 동거하는 ‘황제의 길’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 미국의 성정보교육위원회(SIECUS)는 지난 35년간 성(性)과 관련해 미국인에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휴 헤프너와 팝가수 마돈나를 선정했다. 오늘날 ‘플레이보이’에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딸이, 영화 ‘E.T.’의 꼬마 주인공이었던 드류 배리모어가 ‘커버걸’로 등장하지만,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나름대로 ‘인정’받는다.

    “살인은 불법이지만 그것을 촬영해 ‘뉴스위크’에 실으면 퓰리처상을 받고, 섹스는 합법이지만 그것을 촬영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 어떤 게 더 유쾌한가.” “남성과 여성은 신이 창조했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도 신이 창조했다. 그러니 그걸 찍는 게 뭐가 대수로운가.”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보다 한술 더 뜨는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랜트의 역설들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등으로 유명한 체코 출신의 감독 밀로스 포먼은 래리 플랜트를 다룬 전기영화 ‘래리 플랜트’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인 이유는 가장 잘살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자유롭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분 가정에서는 ‘인터넷 포르노’를 둘러싸고 ‘검열 대 해방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더 나쁜 것’이 ‘펜트하우스’를 대체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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