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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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잣집 막내아들 재상 됐네

  • < 박래정/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 ecopark@donga.com

    입력2004-11-01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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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잣집 막내아들 재상 됐네
    과외 비용의 많고 적음에 따라 명문대 당락이 결정되는 요즘 세태에 전윤철 부총리의 입신기(立身記)는 중장년 세대에게는 ‘기분 좋은’ 독후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홀어머니 슬하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란 전부총리는 어머니가 입었던 몸뻬처럼 가난에 찌든 유년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으니 어머니와 나머지 남매들에게는 집안의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대학 4학년 때 고시에 도전한 것은 고난의 시기를 살았던 연배에서는 당연한 절차였다. 고향의 사찰에 공부방을 정하고 서울 판잣집을 나설 때 꼬깃꼬깃한 지폐 2장을 손에 쥐어준 어머니는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전부총리는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어머니에 대한 단상(斷想)을 모아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65년 입학 동기보다 2년 늦게 대학을 마친 이듬해 법제처에서 공직 첫걸음을 뗐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운 좋게 김학렬 전 경제기획원 장관의 눈에 띄어” 경제기획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다 자타가 공인하는 ‘공정거래 정책의 산 증인’이 되는 계기를 잡은 것은 79년 물가관리실 공정거래담당관(과장급) 시절. 신군부에 협력했던 김재익 국보위 경과위원장의 생일잔치에 불려가 서랍 속에서 잠자던 공정거래법 제정을 주창했다. 마침 재벌들을 ‘손볼’ 기회를 찾던 신군부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80년 12월31일 덜컥 공정거래법이 탄생했다.

    이후 물가관리의 보조업무에 머물렀던 공정거래 업무는 실 단위로 독립했고 그 뒤 차관급, 장관급으로 계속 격상됐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는 재경부 다음으로 청와대 업무보고를 하는 최상급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전부총리도 한때 관료생활을 포기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96년 8월 수산청장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해양입국을 외치며 전격적으로 수산청과 해운항만청 통합을 발표한 것. 당시 전부총리는 마음속으로 해양수산부 초대 차관 자리에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초대 장관은 YS의 후광을 입은 부산 출신의 7선 신상우 의원이 차지했고 차관 역시 타 부처 출신으로 채워졌다. 전부총리는 졸지에 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 때문에 전부총리 이력서에는 96년 8월8일부터 이듬해 3월5일까지 ‘의원면직’(依願免職)으로 채워져 있다.

    그 뒤 ‘꺼진 불’로 여겨진 그를 살려낸 사람은 당시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을 맡았던 문종수씨(현 변호사). 문 전 수석은 서울대 법대 입학 동기로 YS의 신임이 두터웠다. 문 전 수석은 “뭘 보고 전윤철씨를 천거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호남 사람이지만 공정거래는 전윤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밝혔다. 1급에 자족했던 전윤철 청장은 7년 만에 ‘재상’ 반열에 올랐다. 전부총리에게는 ‘핏대’ ‘혈죽’(血竹) ‘원칙주의자’ ‘일벌레’ 등 별명이 많다. 모두 일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자기 목소리가 분명한 데서 생긴 것들. 전부총리는 서울고 동창회보에 쓴 글에서 이중 ‘혈죽’을 가장 좋아한다고 쓴 바 있다.

    청와대가 임기 말 부총리로 그를 낙점한 것은 이러한 ‘원칙주의적’ 면모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 공정거래위원장과 기획예산처 장관을 거치면서 현 정권의 구조개혁 과정에 깊숙이 간여했던 전비서실장의 부총리 기용으로 정책 일관성이 유지된다는 확신을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판단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양대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전부총리의 경제팀이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구조개혁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왜곡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당장 6월 말로 시한이 정해진 △공적자금 손실분 확정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건설 구체계획 작성 등은 직·간접적으로 대선 및 지방선거 정국에 상당한 파장이 미치는 것들이다. 경기과열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경기조절도 집권당에는 부담스럽고 공기업 민영화 등은 집단 이기주의에 밀릴 수도 있다. 전부총리가 이런 난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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