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9

2002.04.11

佛 대선 우파-좌파 “차이가 없네”

조스팽 대 시라크 숨막히는 ‘박빙 승부’ … 국민들은 “식상한 인물” 냉담

  • < 민유기/ 파리 통신원 > YKMIN@aol.com

    입력2004-10-27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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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 대선 우파-좌파 “차이가 없네”
    4월21일과 5월5일 두 차례에 걸쳐 투표가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프랑스 언론에는 연일 대선 관련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 이번 선거는 프랑스라는 한 나라를 넘어서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9·11 테러 이후 새롭게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특히 미국의 패권주의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주요 유럽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실시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프랑스 대선은 1996∼97년 유럽 각국에서 각종 선거의 승리를 통해 새롭게 확립된 ‘좌파 유럽’이 21세기 들어와 ‘우파 유럽’으로 전환하는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지난해 재집권한 영국 노동당은 국내 정치에서 좌파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는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지지, 수용하고 있다. 작년 이탈리아와 덴마크는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고 포르투갈도 지난 3월 선거에서 중도우파인 사회민주당이 집권 사회당을 무너뜨렸다. 따라서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주의 대통령이 탄생하느냐 여부는 유럽연합 내에서 사회주의 입장을 지켜내고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견제하려는 모든 유럽 좌파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국제적인 관심사와 홍수처럼 쏟아지는 국내 언론보도에도 불구하고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관심은 냉담한 편이다. 이렇게 싸늘한 분위기는 우파인 공화국연합당의 시라크 현 대통령과 좌파인 사회당 소속 조스팽 총리가 서로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이상 현상은 국민들이 두 후보 모두에게 식상했기 때문이다. 95년 세 번째로 도전해 가까스로 대통령에 선출된 시라크나, 95년 대선에서 석패했다가 97년 하원선거에서 사회당이 승리한 이후 지금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조스팽 모두 프랑스 국민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 인물들이다.

    프랑스 국민이 선거에 무관심한 또 다른 원인은 두 후보의 공약에 새로운 것이 없고 서로 지나치게 유사한 데 있다. 물론 차이점은 존재한다. 전통적인 좌우 구분 기준 가운데 하나인 경제정책이 그것이다. 시라크는 소득세 감면, 공공기업 민영화, 고용 창출을 위한 국가기금 축소를, 조스팽은 고소득자에 대한 중과세, 주거세 감축, 고용 창출, 18∼25세 청년에게 자율권 수당 지급, 주택문제 해결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기타 공약에서는 표현이나 방법 차이만 있을 뿐 별다른 내용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시라크의 약점인 95년 파리 시장 재직시의 각종 부패 스캔들도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 하면, 조스팽의 약점인 최근 수년 내 범죄율 증가도 관심을 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시라크 대통령은 97년 사회당 집권 이후 늘어난 범죄율을 조스팽 총리에 대한 주요 공격 목표로 삼아 연일 이 문제를 거론하고 치안유지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조스팽은 이런 공격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 재미있는 것은 통계상 범죄가 증가했지만 이는 사회당 정부가 근접경찰제를 신설해 소매치기나 욕설 등 사소한 개인 위해 행위나 휴대폰 도난 등까지도 범죄통계에 새롭게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후보의 공약에 뚜렷한 차이가 없자 한편에서는 인신공격이 등장하기도 했다. 조스팽은 시라크가 늙고 지쳐 집권하더라도 권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의 나이를 물고늘어지는 방식은 시라크가 88년 대선에서 미테랑을, 미테랑이 64년 대선에서 드골을 공격하는 데 이미 이용했었지만 선거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반면 시라크는 조스팽이 내세운 임기 내 90만명 실업자 해소와 노숙자 문제 해결 등이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적 공약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프랑스가 낡은 사회주의 이념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선거기간 중 국민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프랑스 대선은 늘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다. 각종 선거는 주중 임시공휴일이 아닌 일요일에 열리고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차 투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선 1, 2차 투표 기권율은 고작 10%였고 95년 처음으로 21%를 기록했을 뿐이다. 3월 하순까지의 여론조사는 1차 투표에서 시라크와 조스팽이 각각 23∼25%, 19∼23%를 얻은 반면, 결선 투표에서는 조스팽이 50.5∼52%를 얻어 48∼49.5%를 얻은 시라크에 다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프랑스의 각종 선거에서 사전 예상은 빗나가기 일쑤였다.

    사실 9·11 테러 이전 조스팽의 승리 예상은 압도적이었다. 97년 사회당 집권 이후 조스팽 정부는 각종 사회개혁 입법으로 노동시간 단축, 고용 창출, 실업률 감소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유럽인들의 보수화 경향으로, 작년 가을과 겨울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시라크가 근소한 차이로 조스팽을 앞질렀다. 하지만 올해 들어 다시 역전된 여론은 뉴욕 테러의 충격에서 벗어나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프랑스인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대선 이후 6월에는 프랑스 하원선거가 예정돼 있다. 대선과 총선이 같은 해에 실시되는 경우는 프랑스에서 처음 있는 일로, 벌써부터 대선에서 승리한 세력이 하원선거까지 승리하리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대선에서 시라크가 연임에 성공해 유럽의 우경화를 이어갈지, 조스팽이 승리해 시라크의 비아냥거림처럼 프랑스가 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될지 선택 몫은 일반 국민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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