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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과학의 만남 ‘SF’가 뜬다

대규모 자본·첨단기술 투입 국내서도 제작 봇물 … 할리우드와는 아직 상당한 수준차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영화와 과학의 만남 ‘SF’가 뜬다

영화와 과학의 만남 ‘SF’가 뜬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가 제작된 지 20년 만에 재개봉(4월 예정)된다고 한다. ‘E.T’는 외계인과 지구 소년의 우정과 모험을 그린 SF영화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다.

80년대 초반 ‘E.T’를 만든 이후 할리우드는 매년 굵직굵직한 SF영화들을 만들어왔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SF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또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스필버그 감독은 “관객들이 항상 일상보다 더 큰 이야기, 지구보다 더 거대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SF영화란 그 범위가 넓어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가상의 현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일정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이야기’들을 말한다. SF는 때로 ‘팬터지’와 그 개념이 공유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팬터지는 “실재 속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소설가 복거일)다. 예측 불가능한 초자연적 이야기를 다루는 팬터지에 비해 SF는 어느 정도 논리적 가능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와 과학의 만남 ‘SF’가 뜬다
SF영화의 본고장은 역시 할리우드. 대규모 제작비와 컴퓨터그래픽(CG) 등 기술적인 난점으로 SF는 오랫동안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SF가 있을까. 최근에 개봉한 ‘화산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같은 영화가 일단 떠오르기는 한다. ‘화산고’의 경우 사람들이 허공에서 재주를 부리고 손바닥에서 물줄기를 내뿜는 등 만화 같은 상상력을 영화에 도입했고, ‘2009…’는 가상의 역사를 끌어들여 ‘시간 여행’이라는 묘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과학적으로 해명할 길 없는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선 SF보다 팬터지물에 속한다. 그 전에 선보인 ‘구미호’ ‘은행나무 침대’ ‘퇴마록’ 등이 모두 팬터지 영화의 계보를 이루는 작품이다. ‘우뢰매’나 ‘용가리’ 등 아동용 혹은 ‘유사 SF’에 속하는 영화들이 있긴 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SF영화는 아직 우리에게 없었다.



영화와 과학의 만남 ‘SF’가 뜬다
그런데 최근 우리 영화에도 SF 바람이 불고 있다. 본격적으로 대규모 자본을 쏟아부어 규모와 기술 면에서 제법 SF물의 모양새를 갖춘 영화가 한꺼번에 제작되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예스터데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내추럴시티’ ‘테슬라’ 등이 현재 제작중인 SF영화들.

한국 영화의 기술적 진보는 여배우 고소영을 순식간에 구미호로 둔갑시키던 수준(영화 ‘구미호’)에서 사이보그가 판치는 100년 후의 세상(‘내추럴시티’)을 그려내는 데까지 발전했다. SF영화가 한국 영화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은 영화계에 유입된 대규모 자본과 그동안 축적된 기술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 즉 ‘은행나무 침대’ ‘퇴마록’ ‘화산고’ 등의 영화를 만들면서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 미니어처, 특수촬영 등에서 기술적인 수준 향상이 있었던 것.

동아수출공사 김도수 실장은 “그전에는 기술적 문제와 제작비용 때문에 기획 자체를 할 수 없었으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영화의 오락적 기능을 상기할 때, SF는 어떤 장르보다 관객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장르다. 우리 영화계에서 SF가 주류 장르로 자리잡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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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심 속에서 요즘 영화계에선 CG 분야의 연구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최근 만들어지는 SF영화는 제작비가 쉽게 50억, 60억원을 넘어가는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CG, 세트, 미술 등 작업에 제작비의 상당량이 할애된다. 총 제작비 80억원이 들어간 ‘2009…’의 경우 시각 파트에만 10억원이 훨씬 넘는 예산이 배정됐다.

이렇듯 많은 돈을 투자하지만 할리우드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며, 아직 기술 수준이 미흡해 원하는 장면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화산고’ ‘2009…’ 등의 영화에 CG 담당으로 참여했던 장성호씨는 “지금 상황으로는 절대 할리우드를 따라잡을 수 없다. 무엇보다 기술 수준의 차이가 크다. 계속적인 투자와 연구가 이루어져야만 할리우드처럼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영화라고는 하나 아직은 2009년(‘2009 로스트 메모리즈’), 2020년(‘예스터데이’) 등 가까운 미래나 게임 속 가상현실(‘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작비가 커지다 보니 영화의 수익성도 문제. 100억원대에 가까운 제작비를 회수하기에 국내시장은 좁고 해외시장 개척은 매우 더딘 상태다. 흥행 실패작이 잇따를 경우, 오히려 영화계 전체를 위축시켜 ‘SF영화는 역시 무리’라는 인식과 함께 대작영화의 제작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신작 ‘테슬라’를 준비중인 장윤현 감독은 “수익성을 고려하면 제작비 40억원을 넘지 말아야 하고, 그런 조건에서도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스펙터클을 만들자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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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적 한계 때문에 전문가들은 SF영화의 본고장인 할리우드를 모방하기보다 탄탄하고 독창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한국적’ SF의 전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SF영화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드라마’이고 매력적인 스토리라는 얘기다.

SF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자칫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되기 쉽다. 따라서 SF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선 객관적인 과학기술과 영화적 상상력이 멋진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차이는 여기서도 발견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인공지능 로봇의 이야기를 담은 SF영화 ‘A.I’’를 만들면서 보스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인공지능 연구소(AI랩)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제작진과 연구원들은 ‘인간이 기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했다.

영화와 과학의 만남 ‘SF’가 뜬다
SF평론가 박상준씨는 “SF작가로 유명한 아시모프는 1960년대부터 SF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고, 영국 작가 아서 클라크 역시 유명한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시나리오를 썼다. SF 하면 돈 많이 드는 특수효과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디어와 시나리오만 좋으면 돈 안 들이고도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국내 SF영화의 제작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의 참여나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쉽다.

고려대 연구교수 정재승씨(물리학·‘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의 저자)는 “영화적 상상력도 과학적 사실 위에서 펼쳐져야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 SF는 미래 이야기를 통해 현실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내 최초로 SF 전문 시나리오를 공모하고 있는 한국과학문화재단 최영환 이사장은 “SF영화 제작이 붐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 전문성을 갖춘 작가군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천문우주, 유전공학, 우주과학 등 첨단과학 분야에서 질 높은 시나리오가 적극적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간동아 327호 (p68~69)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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