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조용준 기자의 세상 속으로

아프간과 월남 ‘그때 그 소녀’

  • 조용준 기자

아프간과 월남 ‘그때 그 소녀’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누가 이렇게 말한다. “저들이 얼마나 생기 없는지 보시오. 오늘날에는 영상이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생기가 있군요.”

우리 세계의 특징 중 하나는 분명 이와 같은 존재의 전복(顚覆), 가치의 전도(顚倒)다. 우리는 오늘도 얼마나 많은 ‘이미지’의 공습에 노출되면서, 이에 중독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우리는 영상물의 끈적끈적한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 그 영상물의 이미지는 참으로 역동적이고 탱탱하지만, 정작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핏기 없는 얼굴에 무표정하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8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6월호 표지에 실린 사진이다. 구소련의 침공과 포격으로 여섯 살에 부모를 잃고 인접국 파키스탄의 난민촌을 전전하던 아프가니스탄 소녀, 샤르바트 굴라.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프리랜서 스티브 맥거리(51)가 17년 전 난민촌에서 샤르바트 굴라를 ‘클로즈업’한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눈망울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코발트 그린의 눈동자, 겁에 질린 듯한, 무엇엔가 쫓기는 듯한, 하염없는 슬픔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현실에 지친 듯한 그 눈망울.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스티브 맥거리는 수색팀을 만들고,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홍채 및 얼굴 인식 기술까지 활용하는 ‘호들갑’을 떨면서 17년 만에 그녀를 찾아내 올 4월호에 다시 실었다.



미국인들에게 그녀를 찾은 장소는 그녀를 찾은 스토리만큼이나 극적이다. 그녀가 난민촌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하고 10여년 전인 1990년대 중반 돌아온 고향, 다시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낸 곳은 지금 미군의 알 카에다 잔당 소탕전이 한창인 토라보라 산악지대다. 샤르바트 굴라는 딸 넷을 두었지만 그중 한 명은 굶어죽고 말았다.

샤르바트 굴라의 사진은 저절로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을 연상케 한다. ‘네이팜탄과 소녀’ 등의 명칭이 붙은, 1972년 6월8일 미군의 명령을 받은 베트남 전투기의 네이팜탄 공습으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알몸으로 울부짖으며 불타는 마을을 달려 나오던 아홉 살 베트남 소녀, 팡 티 킴 후크의 모습이다. 1호 국도를 걷다 우연히 이 모습을 찍은 AP통신 프리랜서 후이 콩 우트는 7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17차례나 전신 피부이식 수술을 받아 겨우 목숨을 건진 팡 티 킴 후크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12년 후였다. 1984년 네덜란드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그녀의 소재를 파악해낸 것.

그렇지만 그녀가 다시 ‘이미지의 대상’으로 발견된 것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월맹 정부는 숱한 인터뷰와 사진 촬영으로 그녀를 정권 홍보에 이용했다. 물론 그 덕분에 그녀는 86년 쿠바 유학을 갈 수 있었고, 94년 모스크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의 중간 급유지인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캐나다로 망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베트남의 알몸 소녀’라는 이미지에서 결코 벗어나기 힘들다. 그녀는 현재의 실체보다 ‘그때 그 소녀’로만 기억된다. 이 사실은 샤르바트 굴라도 마찬가지다. 사진은 그들의 ‘현존’과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가치를 수행하는 이미지가 되고 만다.

처참한 전쟁 몇 장의 사진 이미지로만 ‘축소’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점으로 20세기 초까지 사진은 ‘부르주아의 승리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세계를 식민지화하려는 시도를 조장하기 위해 서구 산업사회의 진열창에 내걸리는 도구’로 사용됐다(앙드레 루이예, ‘사진의 제국’).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더 멀리 여행할 수 있게 된 사진가들은 개화하기 쉽지 않은 원주민의 이미지를 퍼뜨림으로써 산업사회를 더욱 찬란한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것은 곧 사진을 통한 ‘서양판 화이(華夷)사상’의 확산이었다.

“사회는 사진을 얌전하게 만들려 하고,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에서 끊임없이 폭발하려는 광기를 진정시키려고 애쓴다.”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롤랑 바르트(1915~1980)의 말이다. 전쟁의 처참한 장면은 몇 장의 사진으로 ‘축소’ 대체된다.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현실은 한 소녀의 애잔한 눈빛에 녹아 스러져 형체 없는 이미지로만 남게 된다. 마치 베트남의 그 모든 추악한 일들이 몇 장의 사진으로만 축소 기억되듯 말이다.



주간동아 327호 (p60~60)

조용준 기자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11

제 1311호

2021.10.22

전대미문 위기 앞 그리운 이름, ‘경제사상가’ 이건희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