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2002.03.28

중국 권력투쟁 서막이 오르다

장쩌민 퇴진 앞두고 반대파와 기싸움… 추문 폭로·시위 등 전방위 압력 잇따라

  • < 강현구/ 베이징 통신원 > so@263.net.cn

    입력2004-10-22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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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권력투쟁 서막이 오르다
    요즘 중국에는 알 듯 모를 듯한 전운이 감돈다. 누구나 알고 있듯 2002년은 권력교체의 해다. 올 하반기 당 대회를 통해 중국 현대사의 새 장이 열리는 것이다. 문제는 권력의 속성상 교체가 조용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데 있다. 설령 외견상 평화로운 교체로 보였을지라도 결코 자의에 의한 승계란 있을 수 없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류사오치(劉少奇)에게 국가주석 자리를 넘길 때도 그랬고, 가까이는 차오스(喬石)가 리펑(李鵬)에게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리를 넘길 때 그랬다. 인민 앞에서 웃으며 물러난 그들의 표정 뒤에는 피비린내 나는 암투 과정이 숨겨져 있었다.

    지난해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끝날 때만 해도 중국 인민들은 평화로운 권력교체에 대한 희망을 감추지 않았다.

    장주석 성공적 퇴진 시도에 제동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의에 대한 엇갈린 후일담이 회자하기 시작했다. 요체는 장주석이 완전히 물러나느냐, 아니면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하느냐로 집중됐다. 이른바 반퇴(半退)냐 전퇴(全退)냐의 문제였다. 사실 이것은 원칙적으로 그리 민감한 사안은 아니다. 공산화 이후 중국은 단 한 번도 완전한 물갈이가 이루어진 적이 없는 나라다. 권력투쟁을 피로서가 아니라 협상으로 종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현재의 지도자는 자신과 자신의 세력의 안정을 위해, 후임자는 아직 튼튼하지 못한 자신의 권력을 위해 권력 일부를 분유(分有)하는 형태로 시스템을 유지했다.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후임자는 이러한 분유의 시기를 이용해 반대파를 제거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위험은 전임자가 막아준다. 이런 공식 아래에서 치열한 암투는 있을지언정 피의 숙청은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장쩌민 역시 덩샤오핑이라는 거목의 그늘 아래서 자신의 힘을 키워왔다. 그에게 권력 장악력의 시험지가 됐던 천시통(陳希同)과의 투쟁은 덩의 영향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천과의 투쟁에서, 즉 당내 보수파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장은 한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주룽지를 주저앉히고, 역시 다른 의미의 라이벌인 리펑을 한편으로 하여 차오스를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은 장이 권력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길임과 동시에 그도 훗날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려준다. 그는 과감히 자신의 퇴진을 공식화했다. 문제는 어떻게 물러나느냐다. 장쩌민이 자신의 퇴임과 함께 희망하는 바를 중국의 지식분자들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중국 현대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어한다. 이른바 ‘3개대표’(三個代表)로 축약되는 자신의 사상이 중국 공산당의 21세기 이념으로 자리잡게 하고 싶은 것이다. 둘째, 동세대와의 동반퇴진을 통해 안전한 미래와 세대교체의 주역이라는 명예를 동시에 얻고 싶어한다. 셋째, 자신의 세력을 권력 요소에 심어놓고 싶어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장쩌민의 이러한 세 가지 소원은 모두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리펑의 동반퇴진 불가설이 불거져 나오고, 3개대표와 이론적 전선이 그어지지도 않는 사영기업주 입당문제로 논란에 휩싸이면서 일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장쩌민측은 이에 대한 세련된 해결을 위해 반대파에게 전방위적 압력을 시도했다. 장쩌민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 유지는 이 과정에서 권력승계의 안전장치가 아니라 협상 도구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장의 전퇴에 대한 정보가 후진타오(胡錦濤) 쪽에서 새어나갔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확전일로로 들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것이 리펑 일가와 관련된 추문이다. 예외적으로 중국 언론에 의해 폭로된 이 추문은 리펑의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문제와 얽혀 보수파의 반발과 이에 대한 보복으로까지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권력의 은밀한 동조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리펑 일가에 대한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지형에 불을 댕긴 사건이 부시의 방중(訪中)에 일어났다. 부시의 방중 일정에서 미국은 노골적으로 차세대 지도자 후진타오와의 만남을 요구했다. 중국측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부시의 칭화(淸華)대 방문에 후 부주석이 안내하는 형태로 만남을 주선했다. 미래의 지도자를 만나 앞날을 준비하려는 미국측 의도와 이 기회에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히 해두려는 후 부주석측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이처럼 부시와의 만남을 중시하는 후 부주석이 부시의 공식 환영만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리펑 역시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관례에 어긋나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즈음 경제일보에 ‘칭화방’(淸華幇)이 ‘상하이방’(上海幇)을 압력하고 있다는 정체 불명의 기사가 나왔다. 주룽지, 후진타오 등 칭화대 출신들이 장쩌민 일파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가십성 기사가 버젓한 중앙 일간지에 실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치는 누구나 인정하듯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중국의 권력교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혼란들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긴급한 현안에 대한 대처 또한 그만큼 늦어진다. 최근 중국 신문들은 오랜만에 중국 지도자들이 길게 늘어서 전인대에 입장하는 모습을 게재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이 사진에서 암투의 그림자가 겹치는 것이 지금 중국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이다. 2002년 중국 지식분자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암영이 드리워져 있다. 이들의 표정은 내년이나 돼야 다시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 시간은 암투를 종식시키는 가장 위대한 해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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