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3

2002.02.28

‘스크린쿼터’제 바로 보기

  • < 조희문 / 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hmcho@smuc.ac.kr

    입력2004-11-01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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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쿼터’제 바로 보기
    스크린쿼터’제는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에 잠복하고 있는 뇌관이다. 한국 영화가 빈사 지경에 빠져 외면당할 때나 미국의 대작 영화들을 제치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요즘이나 변함없이 이 문제는 민감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누구나 다 이 제도가 한국 영화 성장에 유용한 도움을 주고, 그래서 모두가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한 번도(맹세코!) 원만한 운영을 한 기억이 없다. 제작자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극장측에서는 한국 영화 진흥을 정책적으로 하겠다면 그것은 정부가 담당해야 할 일이지 왜 극장이 그 짐을 져야 하며, 사사롭게 운영하는 영업장에서 외국 영화를 상영하든 한국 영화를 상영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극장 운영자가 판단할 문제지 왜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모든 상품은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은 이 제도가 불공정한 제도라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기본적으로’ 유지하자는 문화관광부의 입장과 축소나 폐지가 오히려 한국 영화의 경쟁력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보는 외교통상부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학자들의 주장도 유지와 축소(또는 폐지) 사이에서 치열하다.

    지난 1999년,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배우, 감독, 제작자 등이 삭발까지 하며 사수투쟁을 벌인 것은 이 문제가 국내 영화업계의 논란거리에서 국가간 현안으로 확대되었다는 것과 어떤 이유로든 이 제도가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충돌의 현장’이었다. 이때 투쟁에 나선 영화인들은 무작정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는지 한국 영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40%에 이를 때까지만 이 제도를 유지하자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현행 유지’를 지켰지만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논란의 유보’에 그친 셈이었다.

    투자협정 체결이 미뤄지면서 쿼터 논란도 자연스럽게 소강상태로 들어갔을 뿐 근원적인 마무리는 없었다. 미국 부시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은 뇌관이 다시 똑딱거리며 가동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최근의 상황은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에 육박할 만큼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미국측의 요구가 단호하며,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어떻게든 협상을 타결하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겹치면서 어느 때보다 긴박감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후유증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논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쿼터제는 한국 영화 보호와 진흥을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미래를 생각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첫번째 문제는 제도를 통한 보호와 자유로운 경쟁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 가려야 한다. 지난 1988년, 영화제작 및 수입자유화 조치에 따라 외국 영화 직배가 시작되었을 때 영화계는 긴박한 위기감에 휩싸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때부터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커지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 개방이 한국 영화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예상도 우려로 끝났다. 미국의 블록버스터급 영화까지 제칠 만큼 약진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에너지는 결국 치열한 경쟁에서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영화의 문화적·산업적 발전은 제작과 유통이 고루 균형을 이루는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쿼터제 시행에 대해 극장측이 끊임없이 반발하고, 이 때문에 여러 차례 내용(시행일수와 방법)이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작분야 위주의 보호정책이 유통업계에는 일방적인 부담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쿼터제의 법정일수는 146일인데도 실제 시행은 연간 106일 수준으로 줄어든 것은 극장업계의 반발을 수용한 결과지만 그나마도 불안정하다. 제작과 유통이 공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쿼터 일수를 조정하지 않는 한 내부의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계할 일은 쿼터제를 애국심의 척도처럼 연결짓는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 유지를 위해 기필코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든, 경제적 이익을 위해 축소 또는 폐지를 주장하든 기본적으로 한국 영화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기는 똑같을 것이다. 다만 입장과 인식에 따라 그것에 이르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존중되어야 한다. 무조건 지키는 것만이 최선이며 그 밖의 모든 주장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난한다면 쿼터제는 본래 의도와 달리 선동적 명분의 빌미로 바뀔 수도 있다. 영화 역시 치열한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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