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날아온 두 가지 ‘비보’(悲報)를 접한 뒤 한나라당은 ‘전의’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대권후보 이회창 총재를 겨냥한 여권의 포문이 드디어 열렸다는 게 당 주류측 반응. “대통령 직계 가족, 여권 최고실세 관련 의혹을 이제는 실명으로 거론할 때”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해외 재산현황 등 ‘X-파일’ 제작

정형근 의원 대권 쟁취를 위한 여야의 일진일퇴 공방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한나라당 ‘최일선 저격수’의 활약상이 주목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오 원내총무, 정형근 이주영 엄호성 홍준표 의원, 이신범 전 의원 등 한나라당의 권력형 비리 추적팀 멤버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요즘 한미 양국을 오가며 ‘게이트 정국’의 ‘전천후 플레이어’로 뛰고 있다.
2002년 1월 중순 국회 의원회관 한나라당 모 의원실. 미국에서 ‘장문의 자료를 팩스로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때마침 팩스가 고장난 상황이었다. 자료는 한나라당 내 ‘권력형비리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앞으로 전달됐다.

신임 윤석중 대통령 해외언론비서관에 대한 한나라당의 비판도 이런 ‘팀워크’에서 시작됐다. 한나라당 추재엽 부대변인은 2월15일 “윤비서관은 대통령 3남 홍걸씨를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하라며 (이신범 전 의원을) 협박한 혐의로 고소당한 인물이다. 그의 임명은 대통령 아들을 비호한 대가”라는 논평을 냈다(이에 대해 윤비서관은 공직자로서 부당한 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음). LA법원 통역 출신인 윤씨가 LA 한국영사관 공직자로 채용되는 과정, 홍걸씨와의 사적 관계에 대한 미국 현지 정보가 윤씨 임명 직후 한나라당에 제공됐다는 후문이다.

이주영 의원 언론 접촉을 꺼리는 특위위원장 정형근 의원의 국내외 활동도 주목 대상이다. 정의원은 1월22일 이총재와 함께 방미해 28일 이총재가 귀국한 뒤에도 2월8일까지 10여일간 더 체류했다. 정의원측 방미팀은 여권 핵심인사 비리 수집 쪽으로 역할 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나라당 관계자는 “뉴욕, 워싱턴에서 정의원과 별도로 만나 심도 있게 정보를 나눴다”고 말했다.
엄호성 이주영 의원은 국내의 각종 게이트 관련 금융권 정보, 주변인물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용호 게이트’가 불거지자 해외 도피한 김현성씨 관련 의혹은 이주영 의원이 처음 제기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보도 이후 민주당은 2월 내내 이총재에 대한 사상 시비에 몰두하고 있다. 3월까지 이 문제를 이슈화해 대학가 개학 이후 게이트 정국을 ‘보혁갈등 정국’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정국의 핵심이슈가 이처럼 변질되지 않기 위해선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 공적자금 비리의혹, 여권-벤처기업 유착의혹, 해외 재산도피 의혹 등 신·구 비리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할 필요성이 있다.”
한나라당에선 차정일 특별검사의 수사 종결 이후 지방선거 직전까지 게이트 정국을 이끌어갈 정교한 일정이 논의되고 있다.

홍의원은 기자에게 한나라당의 ‘결연함’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 여론이 YS 정권으로부터 돌아선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가. 바로 국민회의 김경재 의원이 국정질의에서 ‘현철씨가 한보로부터 수천억원을 받지 않았느냐’고 질의한 사건이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물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선 더 이상 KKK식 이니셜로 ‘성역’을 보호해 줄 수 없다.”
이신범 전 의원 홍의원과 함께 한나라당 양대 저격수로 통했던 이신범 전 의원.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강서을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당에 반납했다. 여권 인사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뒤 ‘단돈’ 2만 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는 홍준표 의원을 미국으로 불러 만나기로 했다. 이 전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여권이 꼼짝 못할 ‘딱 떨어지는’ 물증을 얻기 위해 24시간 미국 전역을 누비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