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렸던 2002 북중미골드컵 대회. 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폴란드 대표팀의 수석코치가 한국팀의 연습이 한창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출전하지 않은 포르투갈은 수장인 올리베이라 감독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왔다. 브라질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감독이 월드컵 예선 상대인 한국과 미국의 경기를 현장에서 세밀하게 지켜보기 위해 비행기를 탄 것. 올리베이라 감독은 포르투갈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조심해야 할 플레이어를 찍어내는 등 한국 전력을 충분히 분석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대회 기간중에는 한국이 속한 D조뿐 아니라 다른 대표팀들도 막상막하의 흥미진진한 첩보전을 펼쳤다. 코스타리카가 속해 있던 C조의 중국은 밀루티노비치 감독뿐 아니라 진쯔양 코치, 기술위원 등 대규모 인원을 파견해 결승전까지 관전하며 알짜 정보들을 쏙쏙 빼갔다. 같은 조 터키의 귀네스 감독도 코스타리카를 보기 위해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고 골드컵에 참가한 월드컵 본선 진출국 멕시코와 에콰도르도 정보 분석의 도마에 올랐다.
월드컵의 해에 가장 먼저 열린 국제규모급 대회였던 골드컵은 ‘골드’보다 더 소중한 정보를 캐기 위한 탐색꾼들의 활약으로 들끓었다. 베스트 멤버가 확정되고 전체적인 전력이 다져지는 시점에서 치러지는 게임들은 본선 상대국들이 군침을 안 흘리고는 못 배길 좋은 ‘커닝 페이퍼’였던 셈.
골드컵, A매치 데이 탐색꾼들 득시글
A매치 데이였던 2월14일에도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일본은 같은 H조에 속한 벨기에와 러시아, 튀니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강화위원(기술위원)들을 유럽 곳곳에 급파했다. 조직적인 정보 관리와 체계적인 보고로 정평이 난 일본 강화위원들의 정보 전달은 일본 대표팀에 늘 비옥한 밑거름을 제공해 왔다.
트루시에 감독 본인도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본선 상대국인 튀니지의 전력을 정탐하기 위해 지난 1월25일 왕복 40시간이 걸리는 아프리카 말리공화국으로 향했다. 말리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중인 튀니지의 전력 분석을 위해서였다.
한국 대표팀이 예선 ‘희생양’으로 지목하고 있는 미국팀의 아레나 감독에게도 지난해 12월9일 서귀포전에 이은 골드컵에서의 한국 경험은 충분한 분석의 여유를 제공했다. 미국은 대회 기간 동안 해외파 주전 선수들을 모두 빼고 순수 국내파로만 경기를 치러 전력 노출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받았다.
이에 반해 많은 주전급 선수들을 출전시킨 한국 대표팀은 상대적으로 밑지는 정보장사를 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견해는 당당하다. 대회 기간중 감독은 “이미 실력은 대부분 판가름나 있는 것이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감독들의 눈에 상관없이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며 ‘마이웨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렇지만 히딩크 감독이 정보전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골드컵 전에 열린 LA 갤럭시와의 연습게임에서 선수들 백넘버를 모두 바꿔 달게 해 분석가들의 혼란을 초래하는 등 여러 가지 변칙 작전을 활용했다. 또한 비디오 분석관인 아프신 고트비를 최대한 활용해 미국팀 분석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랍계 미국인인 고트비는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미국 대표팀의 비디오 분석관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자메이카 대표팀, 아약스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등의 분석관을 지낸 관록파. 이미 손바닥 보듯 미국 전력을 들여다보고 있어 히딩크호에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지난해 12월10일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기자와 인터뷰한 폴란드 대표팀의 예지 엥겔 감독 역시 정보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폴란드 축구협회에서 만난 엥겔 감독은 이미 12월9일 한국 서귀포에서 열렸던 한국-미국 친선전 테이프를 경기가 끝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보하고 있었다. 엥겔 감독은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은 경기 횟수가 많고 친선게임을 여러 번 치르기 때문에 노출 빈도가 잦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다르다. 그들은 베일에 가려 있다. 그래서 이 테이프는 나에게 상당히 소중한 것이다”고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선 상당한 여유가 느껴졌다. 본경기는 아직 치러지지 않았지만 이미 총성 없는 첩보전에서 한발 앞선 자의 당당함이었다.
경기 자체에 대한 첩보전도 중요하지만 정보가 새지 않도록 누수 방지에 신경 쓰는 각국의 노력도 치열하다. 폴란드는 한국 내에 전지훈련지를 결정하면서 초기부터 이리저리 전훈지를 변경,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는 훈련에 대한 보안이 잘 되고 한국 대표팀의 전훈지와 겹치지 않는 장소를 찾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이 때문에 한국 조직위만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대다수 팀들이 월드컵 본선 한 달 전에 한·일 전훈지에서 갖는 자체 훈련과 연습게임에 대해선 비공개 훈련을 원칙으로 할 방침이다. FIFA도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언론에 포토 타임 정도의 가벼운 시간만 할애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각 팀들의 스파이들은 각국 축구 전문기자들과 협회 관계자들을 총동원, 막바지 100% 장전된 상태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한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축구 전문가들을 통해 많은 정보가 새고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중미골드컵대회 기간에도 포르투갈 취재진이 미국과 한국 대표팀의 훈련장에 나타나 감독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심지어는 골드컵 참가국 중 월드컵에서 같은 조에 편성된 나라가 없는 스페인도 취재진을 파견해 본선을 준비했다.
FIFA “월드컵 본선 한 달 전부터는 비공개키로”
전 대표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KBS 해설위원은 취재진에게 “상대국 기자를 만나면 기사 교환은 좋지만 한국팀의 부상 선수나 취약 포지션 등 고급정보를 교환하지는 말아달라”며 정보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적이 있다. 축구에서 정보의 소중함을 몸으로 보여준 ‘전력’이 있는 허위원의 말이니만큼 흘려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스페인과 한 조에 편성됐던 올림픽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허정무 감독은 경기가 열리기 며칠 전 현지에서 펼쳐진 스페인과 호주 프로팀의 연습경기를 보기 위해 연습장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귀신처럼 알았는지 스페인 대표팀의 검색에 걸려 정해성 코치와 함께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허정무 감독은 곧바로 주위의 가장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경기를 관전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온몸이 다 젖었는데도 끝까지 게임을 보는 끈기를 보여준 것. 그만큼 스페인에 대한 정보가 소중하고 절실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전술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실력이 평준화하고 있는 현대 축구에서 중요한 정보 하나는 승부를 가르는 날카로운 비수가 될 수 있다. 경기 관전과 같은 고전적인 방법은 물론 통신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수집은 이미 각 팀의 일상에 속하는 일이다. 협회와 대표팀뿐 아니라 취재진에게까지 총동원령이 내려진 월드컵 정보전.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 곳곳에 흩어진 32개 월드컵 대표팀의 연습장에는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제2, 제3의 허정무들이 상대팀의 목줄을 움켜쥘 고급정보를 빨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회 기간중에는 한국이 속한 D조뿐 아니라 다른 대표팀들도 막상막하의 흥미진진한 첩보전을 펼쳤다. 코스타리카가 속해 있던 C조의 중국은 밀루티노비치 감독뿐 아니라 진쯔양 코치, 기술위원 등 대규모 인원을 파견해 결승전까지 관전하며 알짜 정보들을 쏙쏙 빼갔다. 같은 조 터키의 귀네스 감독도 코스타리카를 보기 위해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고 골드컵에 참가한 월드컵 본선 진출국 멕시코와 에콰도르도 정보 분석의 도마에 올랐다.
월드컵의 해에 가장 먼저 열린 국제규모급 대회였던 골드컵은 ‘골드’보다 더 소중한 정보를 캐기 위한 탐색꾼들의 활약으로 들끓었다. 베스트 멤버가 확정되고 전체적인 전력이 다져지는 시점에서 치러지는 게임들은 본선 상대국들이 군침을 안 흘리고는 못 배길 좋은 ‘커닝 페이퍼’였던 셈.
골드컵, A매치 데이 탐색꾼들 득시글
A매치 데이였던 2월14일에도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일본은 같은 H조에 속한 벨기에와 러시아, 튀니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강화위원(기술위원)들을 유럽 곳곳에 급파했다. 조직적인 정보 관리와 체계적인 보고로 정평이 난 일본 강화위원들의 정보 전달은 일본 대표팀에 늘 비옥한 밑거름을 제공해 왔다.
트루시에 감독 본인도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본선 상대국인 튀니지의 전력을 정탐하기 위해 지난 1월25일 왕복 40시간이 걸리는 아프리카 말리공화국으로 향했다. 말리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중인 튀니지의 전력 분석을 위해서였다.
한국 대표팀이 예선 ‘희생양’으로 지목하고 있는 미국팀의 아레나 감독에게도 지난해 12월9일 서귀포전에 이은 골드컵에서의 한국 경험은 충분한 분석의 여유를 제공했다. 미국은 대회 기간 동안 해외파 주전 선수들을 모두 빼고 순수 국내파로만 경기를 치러 전력 노출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받았다.
이에 반해 많은 주전급 선수들을 출전시킨 한국 대표팀은 상대적으로 밑지는 정보장사를 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견해는 당당하다. 대회 기간중 감독은 “이미 실력은 대부분 판가름나 있는 것이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감독들의 눈에 상관없이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며 ‘마이웨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렇지만 히딩크 감독이 정보전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골드컵 전에 열린 LA 갤럭시와의 연습게임에서 선수들 백넘버를 모두 바꿔 달게 해 분석가들의 혼란을 초래하는 등 여러 가지 변칙 작전을 활용했다. 또한 비디오 분석관인 아프신 고트비를 최대한 활용해 미국팀 분석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랍계 미국인인 고트비는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미국 대표팀의 비디오 분석관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자메이카 대표팀, 아약스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등의 분석관을 지낸 관록파. 이미 손바닥 보듯 미국 전력을 들여다보고 있어 히딩크호에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지난해 12월10일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기자와 인터뷰한 폴란드 대표팀의 예지 엥겔 감독 역시 정보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폴란드 축구협회에서 만난 엥겔 감독은 이미 12월9일 한국 서귀포에서 열렸던 한국-미국 친선전 테이프를 경기가 끝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보하고 있었다. 엥겔 감독은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은 경기 횟수가 많고 친선게임을 여러 번 치르기 때문에 노출 빈도가 잦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다르다. 그들은 베일에 가려 있다. 그래서 이 테이프는 나에게 상당히 소중한 것이다”고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선 상당한 여유가 느껴졌다. 본경기는 아직 치러지지 않았지만 이미 총성 없는 첩보전에서 한발 앞선 자의 당당함이었다.
경기 자체에 대한 첩보전도 중요하지만 정보가 새지 않도록 누수 방지에 신경 쓰는 각국의 노력도 치열하다. 폴란드는 한국 내에 전지훈련지를 결정하면서 초기부터 이리저리 전훈지를 변경,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는 훈련에 대한 보안이 잘 되고 한국 대표팀의 전훈지와 겹치지 않는 장소를 찾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이 때문에 한국 조직위만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대다수 팀들이 월드컵 본선 한 달 전에 한·일 전훈지에서 갖는 자체 훈련과 연습게임에 대해선 비공개 훈련을 원칙으로 할 방침이다. FIFA도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언론에 포토 타임 정도의 가벼운 시간만 할애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각 팀들의 스파이들은 각국 축구 전문기자들과 협회 관계자들을 총동원, 막바지 100% 장전된 상태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한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축구 전문가들을 통해 많은 정보가 새고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중미골드컵대회 기간에도 포르투갈 취재진이 미국과 한국 대표팀의 훈련장에 나타나 감독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심지어는 골드컵 참가국 중 월드컵에서 같은 조에 편성된 나라가 없는 스페인도 취재진을 파견해 본선을 준비했다.
FIFA “월드컵 본선 한 달 전부터는 비공개키로”
전 대표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KBS 해설위원은 취재진에게 “상대국 기자를 만나면 기사 교환은 좋지만 한국팀의 부상 선수나 취약 포지션 등 고급정보를 교환하지는 말아달라”며 정보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적이 있다. 축구에서 정보의 소중함을 몸으로 보여준 ‘전력’이 있는 허위원의 말이니만큼 흘려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스페인과 한 조에 편성됐던 올림픽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허정무 감독은 경기가 열리기 며칠 전 현지에서 펼쳐진 스페인과 호주 프로팀의 연습경기를 보기 위해 연습장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귀신처럼 알았는지 스페인 대표팀의 검색에 걸려 정해성 코치와 함께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허정무 감독은 곧바로 주위의 가장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경기를 관전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온몸이 다 젖었는데도 끝까지 게임을 보는 끈기를 보여준 것. 그만큼 스페인에 대한 정보가 소중하고 절실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전술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실력이 평준화하고 있는 현대 축구에서 중요한 정보 하나는 승부를 가르는 날카로운 비수가 될 수 있다. 경기 관전과 같은 고전적인 방법은 물론 통신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수집은 이미 각 팀의 일상에 속하는 일이다. 협회와 대표팀뿐 아니라 취재진에게까지 총동원령이 내려진 월드컵 정보전.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 곳곳에 흩어진 32개 월드컵 대표팀의 연습장에는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제2, 제3의 허정무들이 상대팀의 목줄을 움켜쥘 고급정보를 빨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