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발생한 몽골 특수경찰의 한인(韓人) 폭행사건(‘주간동아’ 320호 보도)의 파문이 현지 교민사회에서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이번 사건이 발생 한 달을 훌쩍 넘기고도 여진을 남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주간동아’는 2월4∼8일 울란바토르 현지에서 사건 전모를 확인 취재했다.
당초 ‘주간동아’가 단독보도한 사건 요지는 교민을 포함, 한인 남성 8명이 지난 1월4일 울란바토르 시내 보야지(Voyage) 호텔에서 연행 사유도 모른 채 중무장한 몽골 특수경찰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뒤 불법 연행됐으나, 몽골 경찰당국이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발뺌해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피해보상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이번 사건은 교민뿐 아니라 몽골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재(在)몽골 한인회에 따르면 몽골 내 한인은 700여명. 이중 150여명이 선교사이며, 대다수 교민은 울란바토르에 거주한다. 몽골 전체 인구 300만명, 울란바토르 인구 70만명에 비해 결코 많지 않은 숫자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난 연말 현지에서 일어난 한인들간 폭력사건에 뿌리를 둔 데다 폭력사건에 연루된 한인들 모두 현지에선 성공한 기업인으로 꼽히기 때문. 대개 도ㆍ소매업에 종사하지만 한국과 달리 시장경제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몽골에선 규모 있는 기업주에 속한다. 때문에 몽골 언론들도 폭력사건 직후부터 연일 관련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몽골 언론 연일 보도 높은 관심
몽골 경찰의 한인 폭행사건은 지난해부터 교민사회에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발단은 지난해 10월 울란바토르에서 한때 동업관계였던 한인 박모씨(51)가 화장품회사 대표인 백모씨(43ㆍ여)에게 자기 재산 25만 달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백씨를 관세법ㆍ외국인투자법 위반 등 혐의로 관계당국에 고발하면서부터다. 이에 백씨는 무고하다며 12월 초 한국대사관에 사건해결을 도와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박씨에게 갚아야 할 백씨의 채무가 실재하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1998년 몽골로 간 백씨는 자수성가형 인물로 한인사회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지만, 예의 고발건으로 출국이 금지된 상태.
어쨌든 그로 인해 한인회 사무총장 김모씨(49ㆍ안경점 경영) 등 백씨를 돕는 일단의 한인들과 박씨와 가까운 성모씨(48ㆍ나이트클럽 대표) 등 다른 한인들간에 패가 갈렸고, 지난해 12월17일 양측이 사소한 시비 끝에 주먹다짐을 벌여 감정이 격해진 터에 같은 달 28일 울란바토르 시내 S주점에서 조우한 이들이 존칭 등 예우문제로 다시 폭력사태를 일으켜 관련자들이 몽골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한인 폭행사건은 이 와중에서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1월4일 터졌고, 아무런 범죄혐의도 없는 폭행 피해자들이 양산된 것.
“이국 땅에서 두 번이나 주먹질을 벌인 데 대해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교민사회에 물의를 빚은 점을 반성한다. 때문에 사건을 원만히 ‘봉합’하려 1월31일 양측이 합의서까지 작성했다.” 성씨에게 폭행당한 김씨의 말이다. 당사자들간 합의까지 한 폭력사건이 왜 한인 폭행사건으로 비화됐을까.
사실 두 차례의 폭력사건은 최근 2∼3년 새 교민사회가 두 배 이상 급팽창하면서 한두 번 벌어질 수 있었을 법한 ‘통과의례’적인 측면이 크다. 여러 유형의 한인들이 한데 섞이면서 서로간에 마찰을 빚을 가능성은 상존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일련의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주(駐)몽골 한국대사관이 적극적인 ‘액션’을 취했다면 한인 폭행사건이 지금처럼 해결의 기미 없이 방치되진 않았을 것이란 점. 일례로, 백씨는 자신이 탄원서를 내자 대사관측이 “숙의한 뒤 통보해 주겠다”고 했다가 민사(民事)엔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한 번도 연락을 주지 않는 등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대사관측이 교민 권익보호에 소극적 행태를 보인 건 이뿐만이 아니란 게 교민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성씨가 사기혐의로 한국경찰에 수배중이란 사실을 1999년 알게 돼 대사관에 몇 차례 ‘요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대사관측은 번번이 묵살했다. 결국 성씨는 두 차례의 폭력사건을 유발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몽골 생활 11년째인 김경태씨(42ㆍ태권도 사범)는 “한ㆍ몽 수교(1990년) 초기와 달리 최근 몽골에 문제 있는 한인이 많이 들어와 교민사회를 흐리고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사관측이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벌어진 폭력사건의 한 당사자인 박모씨(36ㆍ금광개발업) 역시 대사관측이 미온적이라며 격분한다. 지병인 당뇨가 있는데도 폭력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돼 조사받을 당시 치료약을 전해달라는 가족의 부탁을 대사관측이 외면했다는 것. 이에 대해 대사관측은 “몽골 경찰이 ‘이미 약을 전달했다’고 말해 별도로 확인해 보진 않았다”고 답한다. 박씨 가족은 구치소 직원을 지인(知人)으로 둔 한 한인의 도움으로 약을 전할 수 있었다.
문제는 또 있다. 교민사회에 비난여론이 일자 폭력사건 당사자들이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말자며 합의했는데도 대사관측은 “현재 조사중인 형사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며 합의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를 내주지 않았다는 것. 처음에 대사관측이 합의만 하면 인증서를 발급해 몽골 경찰에 제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인증서 견본까지 내주며 합의를 권했는데 정작 합의 이후엔 나 몰라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사관 김경한 서기관(35)은 “인증서는 사문서의 서명자가 동일인임을 대사관측이 인증하는 효력만 지닐 뿐 형사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며 “담당영사의 업무착오로 인증서를 둘러싼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인 폭행사건까지 겹치면서 이 사건의 후속조치 역시 미진한 대사관에 대해 교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할 정도다. 이미 관련 교민들과 대사관 직원들이 서로 얼굴까지 붉힐 만큼 관계가 악화됐다.
몽골 경찰에 무고하게 폭행당한 한인 중 6명은 금광개발업자 박씨의 고향 후배들. 다른 피해자 2명은 한인회 사무총장 김씨와 태권도 사범 김씨다. 특히 태권도 사범 김씨는 이전의 폭력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연행당했다. “사건 이후 담당 영사의 휴대폰은 내내 불통이었다. 교민들의 전화도 받지 않는 영사가 대사관 직원인가.” 김씨의 이런 분통에 담당인 김영기 영사는 “한때 휴대폰이 고장났었다”며 “나름대론 사건 수습에 최선을 다했다”고 답한다.
그러나 한인단체 관계자 등 상당수 교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대사관이 교민보호에 부쩍 무기력해졌다고 주장한다. 아직 한인회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인들의 바람막이와 유일한 구심점이 돼야 할 대사관이 예전과 달리 교민들의 동향과 민심 파악을 위해 ‘발로 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대사관측은 한인 폭행사건이 발생한 뒤 “한국에서 자신을 죽이려 폭력배들이 온다며 신변보호를 요청한 한 한인의 진정에 따라 경찰을 동원했다”는 몽골 경찰의 구두 답변만 듣고 문제의 한인이 제출했다는 진정서는 한 번도 직접 열람해 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서에 기초해야 할 외교업무의 기본에 등한했음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2월6∼7일 ‘주간동아’는 두 차례 대사관을 방문해 담당 영사에게서 “진정서 접수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확약을 받아냈다. 대사관측은 2월8일 ‘주간동아’에 “성씨가 지난 1월2일 몽골 경찰청장 앞으로 진정서를 제출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알려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 ‘주간동아’는 2월15일 대사관측에 최영철 몽골 대사와의 국제통화(현지 취재 당시엔 최대사가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한 상태였다)를 부탁했으나 최대사는 통화를 거부했다.
대사관 문턱이 높다는 교민들의 지적에 대사관측은 “교민사회가 과거보다 커진 데다 대사관 직원이 5명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교민을 지칭)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는 “제발 좀 깨물어 달라”는 교민들의 입장에선 군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교민사회가 커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교민 대다수는 울란바토르(자동차로 30여분 달리면 외곽지에 닿을 만큼 도시 규모가 작다)에 모여 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한인사회에 무척 우호적이던 몽골인들의 눈매는 매서워졌다. 이는 몽골 언론들이 폭력사건 당사자들을 ‘야쿠자’ ‘마피아’ 등으로 왜곡·과장 보도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양국간 여론이 악화되는데도 대사관측은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전모를 모르는 일부 한인들은 몽골 언론만 접해 이번 사건의 관련자들을 조직폭력배로 잘못 알고 있는 형편이다.
사건의 불똥은 몽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선교사들에게도 옮겨 붙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교사는 “사건 후 몽골 당국이 한인 선교사들의 거주비자 연장을 잘 안 해주려 한다. 반면 미국대사관은 직접 나서 자국 선교사 비자문제를 해결한다. 한국대사관의 관심은 그저 교민들이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된다는 데 머무는 것 같다”며 대사관의 빈약한 외교력을 꼬집는다. 때문에 한인 폭행사건 당사자들은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직해 다른 한인들의 항의서명을 받는 한편, 한국 내 정치권 인사 등을 통해 문제를 국내에서 공론화할 움직임까지 보이는 등 자구책을 모색중이다.
어쨌든 지난 1월21일 설명회를 갖고 한인 대표들에게 유사사건 재발 방지와 함께 이번 한인 폭행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공언한 몽골 경찰과 외무부는 여전히 정확한 사건 경위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몽골 한인사회가 형성된 이래 초유의 일이라는 이번 사건의 파문이 장기화할수록 양국의 국익에 결코 이로울 게 없다는 사실이다.
당초 ‘주간동아’가 단독보도한 사건 요지는 교민을 포함, 한인 남성 8명이 지난 1월4일 울란바토르 시내 보야지(Voyage) 호텔에서 연행 사유도 모른 채 중무장한 몽골 특수경찰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뒤 불법 연행됐으나, 몽골 경찰당국이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발뺌해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피해보상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이번 사건은 교민뿐 아니라 몽골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재(在)몽골 한인회에 따르면 몽골 내 한인은 700여명. 이중 150여명이 선교사이며, 대다수 교민은 울란바토르에 거주한다. 몽골 전체 인구 300만명, 울란바토르 인구 70만명에 비해 결코 많지 않은 숫자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난 연말 현지에서 일어난 한인들간 폭력사건에 뿌리를 둔 데다 폭력사건에 연루된 한인들 모두 현지에선 성공한 기업인으로 꼽히기 때문. 대개 도ㆍ소매업에 종사하지만 한국과 달리 시장경제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몽골에선 규모 있는 기업주에 속한다. 때문에 몽골 언론들도 폭력사건 직후부터 연일 관련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몽골 언론 연일 보도 높은 관심
몽골 경찰의 한인 폭행사건은 지난해부터 교민사회에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발단은 지난해 10월 울란바토르에서 한때 동업관계였던 한인 박모씨(51)가 화장품회사 대표인 백모씨(43ㆍ여)에게 자기 재산 25만 달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백씨를 관세법ㆍ외국인투자법 위반 등 혐의로 관계당국에 고발하면서부터다. 이에 백씨는 무고하다며 12월 초 한국대사관에 사건해결을 도와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박씨에게 갚아야 할 백씨의 채무가 실재하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1998년 몽골로 간 백씨는 자수성가형 인물로 한인사회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지만, 예의 고발건으로 출국이 금지된 상태.
어쨌든 그로 인해 한인회 사무총장 김모씨(49ㆍ안경점 경영) 등 백씨를 돕는 일단의 한인들과 박씨와 가까운 성모씨(48ㆍ나이트클럽 대표) 등 다른 한인들간에 패가 갈렸고, 지난해 12월17일 양측이 사소한 시비 끝에 주먹다짐을 벌여 감정이 격해진 터에 같은 달 28일 울란바토르 시내 S주점에서 조우한 이들이 존칭 등 예우문제로 다시 폭력사태를 일으켜 관련자들이 몽골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한인 폭행사건은 이 와중에서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1월4일 터졌고, 아무런 범죄혐의도 없는 폭행 피해자들이 양산된 것.
“이국 땅에서 두 번이나 주먹질을 벌인 데 대해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교민사회에 물의를 빚은 점을 반성한다. 때문에 사건을 원만히 ‘봉합’하려 1월31일 양측이 합의서까지 작성했다.” 성씨에게 폭행당한 김씨의 말이다. 당사자들간 합의까지 한 폭력사건이 왜 한인 폭행사건으로 비화됐을까.
사실 두 차례의 폭력사건은 최근 2∼3년 새 교민사회가 두 배 이상 급팽창하면서 한두 번 벌어질 수 있었을 법한 ‘통과의례’적인 측면이 크다. 여러 유형의 한인들이 한데 섞이면서 서로간에 마찰을 빚을 가능성은 상존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일련의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주(駐)몽골 한국대사관이 적극적인 ‘액션’을 취했다면 한인 폭행사건이 지금처럼 해결의 기미 없이 방치되진 않았을 것이란 점. 일례로, 백씨는 자신이 탄원서를 내자 대사관측이 “숙의한 뒤 통보해 주겠다”고 했다가 민사(民事)엔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한 번도 연락을 주지 않는 등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대사관측이 교민 권익보호에 소극적 행태를 보인 건 이뿐만이 아니란 게 교민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성씨가 사기혐의로 한국경찰에 수배중이란 사실을 1999년 알게 돼 대사관에 몇 차례 ‘요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대사관측은 번번이 묵살했다. 결국 성씨는 두 차례의 폭력사건을 유발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몽골 생활 11년째인 김경태씨(42ㆍ태권도 사범)는 “한ㆍ몽 수교(1990년) 초기와 달리 최근 몽골에 문제 있는 한인이 많이 들어와 교민사회를 흐리고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사관측이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벌어진 폭력사건의 한 당사자인 박모씨(36ㆍ금광개발업) 역시 대사관측이 미온적이라며 격분한다. 지병인 당뇨가 있는데도 폭력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돼 조사받을 당시 치료약을 전해달라는 가족의 부탁을 대사관측이 외면했다는 것. 이에 대해 대사관측은 “몽골 경찰이 ‘이미 약을 전달했다’고 말해 별도로 확인해 보진 않았다”고 답한다. 박씨 가족은 구치소 직원을 지인(知人)으로 둔 한 한인의 도움으로 약을 전할 수 있었다.
문제는 또 있다. 교민사회에 비난여론이 일자 폭력사건 당사자들이 더 이상 문제를 확대시키지 말자며 합의했는데도 대사관측은 “현재 조사중인 형사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며 합의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를 내주지 않았다는 것. 처음에 대사관측이 합의만 하면 인증서를 발급해 몽골 경찰에 제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인증서 견본까지 내주며 합의를 권했는데 정작 합의 이후엔 나 몰라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사관 김경한 서기관(35)은 “인증서는 사문서의 서명자가 동일인임을 대사관측이 인증하는 효력만 지닐 뿐 형사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며 “담당영사의 업무착오로 인증서를 둘러싼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인 폭행사건까지 겹치면서 이 사건의 후속조치 역시 미진한 대사관에 대해 교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할 정도다. 이미 관련 교민들과 대사관 직원들이 서로 얼굴까지 붉힐 만큼 관계가 악화됐다.
몽골 경찰에 무고하게 폭행당한 한인 중 6명은 금광개발업자 박씨의 고향 후배들. 다른 피해자 2명은 한인회 사무총장 김씨와 태권도 사범 김씨다. 특히 태권도 사범 김씨는 이전의 폭력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연행당했다. “사건 이후 담당 영사의 휴대폰은 내내 불통이었다. 교민들의 전화도 받지 않는 영사가 대사관 직원인가.” 김씨의 이런 분통에 담당인 김영기 영사는 “한때 휴대폰이 고장났었다”며 “나름대론 사건 수습에 최선을 다했다”고 답한다.
그러나 한인단체 관계자 등 상당수 교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대사관이 교민보호에 부쩍 무기력해졌다고 주장한다. 아직 한인회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인들의 바람막이와 유일한 구심점이 돼야 할 대사관이 예전과 달리 교민들의 동향과 민심 파악을 위해 ‘발로 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대사관측은 한인 폭행사건이 발생한 뒤 “한국에서 자신을 죽이려 폭력배들이 온다며 신변보호를 요청한 한 한인의 진정에 따라 경찰을 동원했다”는 몽골 경찰의 구두 답변만 듣고 문제의 한인이 제출했다는 진정서는 한 번도 직접 열람해 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서에 기초해야 할 외교업무의 기본에 등한했음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2월6∼7일 ‘주간동아’는 두 차례 대사관을 방문해 담당 영사에게서 “진정서 접수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확약을 받아냈다. 대사관측은 2월8일 ‘주간동아’에 “성씨가 지난 1월2일 몽골 경찰청장 앞으로 진정서를 제출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알려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 ‘주간동아’는 2월15일 대사관측에 최영철 몽골 대사와의 국제통화(현지 취재 당시엔 최대사가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한 상태였다)를 부탁했으나 최대사는 통화를 거부했다.
대사관 문턱이 높다는 교민들의 지적에 대사관측은 “교민사회가 과거보다 커진 데다 대사관 직원이 5명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교민을 지칭)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는 “제발 좀 깨물어 달라”는 교민들의 입장에선 군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교민사회가 커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교민 대다수는 울란바토르(자동차로 30여분 달리면 외곽지에 닿을 만큼 도시 규모가 작다)에 모여 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한인사회에 무척 우호적이던 몽골인들의 눈매는 매서워졌다. 이는 몽골 언론들이 폭력사건 당사자들을 ‘야쿠자’ ‘마피아’ 등으로 왜곡·과장 보도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양국간 여론이 악화되는데도 대사관측은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전모를 모르는 일부 한인들은 몽골 언론만 접해 이번 사건의 관련자들을 조직폭력배로 잘못 알고 있는 형편이다.
사건의 불똥은 몽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선교사들에게도 옮겨 붙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교사는 “사건 후 몽골 당국이 한인 선교사들의 거주비자 연장을 잘 안 해주려 한다. 반면 미국대사관은 직접 나서 자국 선교사 비자문제를 해결한다. 한국대사관의 관심은 그저 교민들이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된다는 데 머무는 것 같다”며 대사관의 빈약한 외교력을 꼬집는다. 때문에 한인 폭행사건 당사자들은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직해 다른 한인들의 항의서명을 받는 한편, 한국 내 정치권 인사 등을 통해 문제를 국내에서 공론화할 움직임까지 보이는 등 자구책을 모색중이다.
어쨌든 지난 1월21일 설명회를 갖고 한인 대표들에게 유사사건 재발 방지와 함께 이번 한인 폭행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공언한 몽골 경찰과 외무부는 여전히 정확한 사건 경위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몽골 한인사회가 형성된 이래 초유의 일이라는 이번 사건의 파문이 장기화할수록 양국의 국익에 결코 이로울 게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