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환 “히딩크는 한국을 우습게 여기는 것 아닌가”
-최근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운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인데….
“골드컵에서 4위밖에 못한 건 실망감을 주기 충분하다. 우리 팀의 해결방법은 조직력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히딩크에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 무엇 때문인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축구계 전체가 침묵에 휩싸여 있다.
우리 국민이 한 경기 한 경기에 일희일비하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솔직히 나도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감독에게)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히딩크 감독에게 맡겨두고 변변한 충고 한마디, 지적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갈수록 좁히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 축구를 너무 모른다. 그가 유럽에서 선진축구를 배웠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 유럽 선수와 한국 선수는 다르다. 유럽 선수들은 대회 한 달 전에만 모여도 충분히 전술이나 조직을 소화해낸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그렇게 안 된다. 전술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계속 선수만 교체하고 있다.
유럽이나 남미 쪽 강대국 선수들은 골문 앞에서 개인기도 좋고, 시야도 넓고, 경기운영 폭도 크기 때문에 골을 만들어낸다. 우리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 골 결정력 부족은 조직력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히딩크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를 교체하고 있지만 한국 선수는 모두 거기서 거기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올 뿐이다. 따라서 대표팀을 수시로 교체해서는 안 된다. 축구 외적인 문제에서 자꾸 말이 나오게 하는 것도 문제다. 히딩크가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선수들도 다 처자식이 있는 사람들이고, 여기는 유럽이 아니다. 본인은 ‘내가 사생활까지 팔러 왔느냐’고 얘기한다지만 본처도 아니고 애인을 데리고 다니는데 누가 납득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대안은 뭔가. 지금 이 시점에서 비장의 카드가 남아 있나.
“우선 히딩크는 한국 축구를 인정해야 한다. 한국 축구의 장점을 인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근본이 다르고 배운 게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간단히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젠 다른 방도가 없다. 강팀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보완점은 채워나가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상대팀에 대한 꼼꼼한 훈련을 해야 한다. 16강 진출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이 많지만 지켜볼 뿐이다.”

“‘베스트11을 빨리 결정하라’ ‘문제는 조직력인데 체력만 물고늘어진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우리가 상대팀들보다 나은 여건은 딱 하나다. 소속팀 사정 안 봐주고 월드컵까지 무제한 연습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히딩크라고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선수가 모자라니까 여러 선수를 세워보는 것이다. 내가 히딩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표팀 맡았던 감독 가운데 막판까지 전국을 누비며 70~80명씩 테스트해 보지 않은 감독이 누가 있나. 그건 해본 사람만 아는 스트레스다. 지금 가장 답답한 사람은 히딩크다. ‘대충 끝내고 돌아가자’ 이런 식은 아니지 않겠나.”
-만약 대표팀 감독을 바꿔야 할 일이 생겨 이감독에게 제안이 온다면….
“절대 안 한다. 모르니까 하지 알면 못할 짓이다. 나도 나지만 비쇼베츠를 봐라. 대회중 현지에서 도망치듯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대표팀 감독 해본 사람은 모두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히딩크도 마찬가지다. ‘16강 자신 있다’고 인터뷰도 했지만 그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을까. 야전군 사령관이 전쟁터에서 ‘우리는 져. 지게 돼 있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걸 갖고 나중에 국민을 속인 것처럼 몰아붙이면 안 된다.”
-그렇다면 솔직히 16강 진출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국민들 마음속에서는 벌써 16강에 진출했다. 진출하지 못하면 무능한 사람이 되는 상황이 됐다. 왜? ‘16강 된다’고 떠들고 다닌 언론이나 일부 축구인들 탓이다. 어렵다는 건 기자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이건 한마디로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다. 16강에 못 오를 경우 최대 피해자가 누구일 것 같나? 히딩크는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럼 누군가. 우리 국민이 피해자다. 한껏 기대하고 있다가 갑자기 느낄 실망감이 가장 큰 문제다. 그 실망이 그대로 축구인들에게 쏟아진다.
2월14일 폴란드와 북아일랜드 경기를 직접 봤다. 폴란드가 4대 1로 이겼다. 북아일랜드가 우리보다 못한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린 당연히 폴란드에 지는 것 아니냐. 전력으로만 따지면 우리 팀은 예선 3패라는 게 가장 정확하다. ‘16강은 불가능하니 포기하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하되 기만이나 피해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60년대부터 유럽 감독, 브라질 감독 불러다 조직력, 개인기 배워 지금의 일본 축구를 만들었다. 프로팀에도 외국 감독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1년 만에 빼먹으려 하고 있다. 이건 도둑놈 심보다. ‘히딩크 너 1백만불 받았잖아, 그러니까 16강 진출시켜!’ 하는 식이다. 히딩크가 요술쟁이인가? 한국 축구의 경기력을 보자. 우선 골결정력… 선수들이 배운 게 다르다. 공이 바닥에 닿았을 때 차는 것과 10cm, 20cm, 1m 높이에서 차는 게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줄 아나? 우리 선수들은 그런 점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또 우리 선수들은 응용력이나 상황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배운 선수들이다. 각급 학교 축구대회에 가보면 오늘 5시에 경기하고 내일 아침 10시에 또 뛰도록 시간표가 나온다. 그러니 이기려면 지구력밖에 없는 거다. ‘10년, 15년 후 아이들이 어떤 기술을 쓸까’를 고민할 틈이 없다. 오웬, 앙리 같은 세계적 선수들은 청소년 축구부터 차근차근 밟으며 컸다. 우리는 그게 안 됐다. 98년 월드컵 때 반짝했던 스타들 지금 뭐 하나. 이동국, 고종수 등이 기대주로 각광받았지만 믿을 만한 선수로 성장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익기도 전에 일찌감치 조로해 버렸다.
-그럼 결론이 뭔가. 한국 축구는 도저히 안 된다는 이야기인가.
“일본은 16강에 진출하고 우리는 떨어지고, 이런 건 무서운 게 아니다. 20년, 30년 후를 생각해 보자. 일본은 물론 이제 중국도 우리와 거의 대등한 팀으로 성장했다. 중국 프로축구 열기는 무시무시하다.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16강에 올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 프로축구팀 중 몇 팀이나 남을 것 같나. 16강 올라간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2~3일 지나면 사람들은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막말로 16강과 한국 축구 발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난해 컨페드레이션컵 대회 때 프랑스와 브라질이 수원에서 경기를 가졌는데 관중석이 다 안 찼다. 이런 상황에서 16강을 바라는 게 어리석은 일이 아니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