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7

2001.11.01

‘싱글 탈출’ 내게 맡겨라

신세대 결혼 맞춤 설계사 ‘커플매니저’ … 기발한 이벤트 총동원 ‘연인 만들기’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11-16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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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 탈출’ 내게 맡겨라
    자,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눈여겨보신 상대방의 이름 위에 표시를 해주세요. 거기 남자분, 왜 커닝하고 그러세요?”

    이벤트 매니저가 분위기를 한껏 부드럽게 만들어보려고 애쓰지만 이미 진지해진 참가자들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다함께 웃고 즐기던 그들이다. 16명의 이성 가운데 세 사람을 골라 1, 2, 3지망을 적어 내려가는 손끝이 조심스럽다. 대학교 새내기 미팅 때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는데. 10월 중순 한 결혼정보업체 2층 카페에서 열린 ‘직장인 대상 이벤트 미팅’. 저녁 7시30분에 시작돼 어느새 세 시간을 넘긴 행사가 미묘한 긴장 속에 막을 내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썰렁해 성사되는 커플이 많지 않겠다”는 기자의 말을, 올해로 6년차 도합 20만 명을 상대로 이벤트를 진행했다는 황인혁 팀장(31·㈜선우 이벤트팀)은 자신만만한 웃음으로 되받는다. “행사가 너무 즐거우면 오히려 성사되는 커플이 적어집니다. 진행자 위주로 전개된 것을 뜻하니까요. 대신 가라앉은 듯 보여도 대화나 교감이 많았던 이벤트에서 성사율이 높죠.”.

    ‘사람 가려 보는 눈’이 가장 중요한 직업

    ‘싱글 탈출’ 내게 맡겨라
    즐거우면서도 지루한, 조용하면서도 꽉찬 이벤트 만들기. 모든 결혼정보회사 담당자들이 한결같이 털어놓는 고민이다. “그래도 이벤트마다 매칭 성사율 30%는 자신 있습니다. 50%를 넘으면 저희도 기분이 째지죠.” 날마다 각종 매체를 뒤지며 근사한 이벤트 아이템 없나 하고 찾아 헤맨다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유석종 주임(30)의 말이다.



    참가자들이 함께 힙합 래핑을 배워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랩으로 프로포즈를 했던 ‘힙팅’(힙합 미팅), 가을날 일요일 아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굴리기와 줄다리기로 어린 날의 추억을 되밟았던 ‘가을운동회 미팅’ 등의 기발한 아이템은 그런 고민을 통해 나온 작품들이다. “가장 공들이는 부분은 역시 섭외입니다. 어떤 분들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지거든요.” 내성적인 사람을 댄스파티 미팅에 불러내 봐야 분위기 망치고 다른 참가자들에게 무안당하기 십상이라는 것. 더욱이 그날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시 ‘물’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커플매니저에겐 ‘사람을 가려 보는 눈’이 가장 중요하다.

    ‘싱글 탈출’ 내게 맡겨라
    사실 이 직업의 자격 조건은 꽤 까다롭다. ㈜선우의 경우 미소, 대화력, 암기력, 전화 응대 등 모두 7단계의 전형 과정을 거쳐 ‘대인관계에 거부감이 적은 인상에 섬세한 성격을 갖춘 사람’을 뽑는다. “나 같은 사람은 어림도 없겠다”는 기자의 눙치기에 깔깔대며 웃는 사람은 ㈜선우 명문가팀의 전선애 대리(30).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어울리는 직업이죠. 실제로도 여성의 비율이 80% 가량 되고요. 특히 여성 고객들이 남자매니저에게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97년 무렵만 해도 커플매니저는 ‘마담 뚜’와 동의어였다. 많은 입사 동기들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인정받기 쉽죠. 나이가 많으면 중매쟁이 분위기를 풍길 수 있다는 거예요.”

    커플매니저의 업무 대부분은 당연히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다. 상담, 관리, 매칭 등으로 세분화된 업무 가운데 핵심은 당연히 매칭. 매니저는 수백 명에 달하는 담당고객의 겚羞?신상자료는 물론 느낌이나 인상, 성격 같은 아날로그 데이터도 모두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어야 한다. 입사 시험에 암기력 테스트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어진 석 장의 고객 신상카드에 빼곡이 적힌 정보들을 10분 안에 달달 외워 척척 답해야 하는 악명 높은 시험 과목이다.

    물론 기본적인 매칭은 컴퓨터로 이루어진다. 서로가 원하는 연령, 학력, 직업, 체격 등의 조건에 부합하는 후보들이 1차로 걸러지는 것. 그렇지만 ‘정말 두 사람이 맞을까’를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커플매니저의 몫이다. “간혹 객관적인 조건이나 서로 원하는 이상형과 거리가 있지만 왠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 하고 자리를 만들면 불꽃이 번쩍하는 거예요. 그럴 때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전선애 팀장)

    그래서 커플매니저들은 “몇 년 하다 보면 관상쟁이 다 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외모보다 성격 파악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전화 목소리라는 것이 이들의 경험담. 떠 있거나 가라앉은 톤, 단어의 선택, 말하는 방법 등에 묻어나는 느낌이 오히려 인상보다 정확하다는 것이다. 사진으로는 가물가물한 예전 고객이라도 전화를 받으면 모든 프로필이 한꺼번에 확 살아오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현장의 킹카, 퀸카는 어떤 사람일까. 1대 1 미팅이든 이벤트 미팅이든 킹카의 첫째 조건은 ‘편안함’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농담삼아 ‘500년 묵은 킹카는 자기를 돋보이게 하지만 1000년 묵은 킹카는 주위 사람도 같이 돋보이게 만든다’고 하죠. 혼자서 튀는 사람은 시선은 끌지만 표는 받기 어렵거든요. 대신 그 사람만 있으면 여성들의 표정이 바뀌는 분이 있어요. 단순히 화기애애한 것과는 또 다른, 왠지 기분 좋은 호감이 흐르는 거죠.” 평범한 직장인인 한 참가자는 12명의 여성 가운데 11명에게 표를 받더라는 것이 황인혁 팀장의 ‘내가 본 최고 킹카’ 이야기다.

    그러나 여성은 아직까지 외모가 단연 첫째 포인트. 단순히 예쁜 얼굴이 대접받는 것은 아니다. 보통 ‘여우’라고 불리는 진짜 퀸카들은 ‘남성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미소를 아는 사람들’이다. “어떤 미팅이든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여성들이죠. 물론 농담하고 떠드는 건 남성들이지만 주도권은 언제나 여성들에게 있습니다. 좋고 싫음을 미묘하게 표시해 남성들을 달뜨게 하는 거죠.” 결국 남성은 여성에게 지배받는 존재라는 걸 늘 느낀다는 유석종 주임의 말이다.

    어느새 커플매니저는 여대생들이 선망하는 직업 리스트 중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듀오가 지난 9월 실시한 신입사원 공채의 경우 20명 정원에 지원자는 4000명을 넘었다. 또 다른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의 공채 역시 다섯 명 모집에 10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싱글 탈출’ 내게 맡겨라
    요즘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질투를 한몸에 받는다는 곽진희씨(23·청주대 4학년)는 매일 오후 커플매니저가 된다. 지난 8월 한 결혼 정보업체가 뽑은 ‘대학생 커플매니저 선발대회’에서 수십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선발된 것. 교수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일한다는 그녀가 들려주는 커플매니저의 세계.

    “쉽지 않아요. 업무 강도도 세지만 고객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거든요. 소극적인 성격이라면 적응하기 힘들 거예요. 주말마다 행사가 있어 휴일이 없는 것은 불만사항 축에도 못 끼고요. 그래도 분명한 건 그만큼 재미있다는 거예요. 원래 그렇잖아요, 사람 만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면서도 흥미진진한 일 아닌가요? 게다가 그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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