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7

2001.08.16

분단과 인권 ‘현실 비틀기’

  • < 장은수/ 연극평론가 > jaes@maincc.hufs.ac.kr

    입력2005-01-18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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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과 인권 ‘현실 비틀기’
    요즘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여행이 장안의 화젯거리다. 20일 간에 걸쳐 한편의 시베리아 로드무비를 찍는 셈인데, 그 통에 서울 답방은 더욱 멀어진 게 아닌가 싶고, 통일로 가는 길도 더 멀게만 느껴지니 이 여름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마침 대학로에서는 시원한 북쪽으로의 여행을 감행한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창작극 ‘강택구’는 공연보다는 음악감상실로 더 많이 알려진 인켈아트홀에서 7월7일~ 8월19일에 공연중이다. ‘난타’의 연출자 전훈의 작품을 그와 러시아 유학동창인 김노운이 연출했다. 젊은 제작진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신선한 감각과 유머로 포장해 관객으로 꽉 찬 200여 객석을 연일 흔들어 놓는다.

    ‘로드 시어터’(road theater)라는 장르명이 붙은 이 공연에서 관객은 인물들을 따라 모스크바, 시베리아, 옌볜, 북조선, 서울 가리봉동을 두루 여행한다. 하지만 무대는 어두운 지하실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 남북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고, 가족 누구든 자유롭게 만나고 싶은 분단민족의 바람이 아직도 희망사항에 그칠 뿐인 현실을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그런 현실을 연극이란 장치가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는 게 바로 이 공연의 재미요 매력이다.

    막이 오르면 캄캄한 무대에는 붉은 불빛 하나만이 초조하게 구석구석 탐색하며 여기가 어디인지를 묻는다. 마치 서스펜스와 스릴이 넘치는 탐정극의 도입부 같다. 하지만 불이 켜지면 객석에 폭소가 터진다. 자다 깬 듯 부스스한 표정의 두 남자가 흰 내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더듬는 지하창고는 오해와 착각의 난장판이다.

    두 사람은 일단 러시아 비밀경찰에 납치된 것이라 추리한 뒤, 서로를 간첩과 주사파로 의심하며 옥신각신하던 중 2층 난간에 쌓여 있는 박스더미 속에서 제3의 사나이를 발견한다. 수상한 사내의 정체를 다그치다 “동무들은 누구십네까?”라고 되묻는 북한말에 둘 다 놀라 나자빠진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의심하고, 자신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이 촌극에서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의사소통이 힘든 남북간의 간격을 새삼 확인한다.



    여기가 어디인지, 왜들 이곳에 잡혀왔는지 각자의 얘기를 털어놓는 가운데 그들은 서로를 알게 된다. 그야말로 세 남자의 ‘로드 시어터’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모스크바와 시베리아, 서울에서 시작해 이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는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 형식으로 재연된다.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 세 사람은 세대와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 하나가 된다. 출구가 보이는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두만과 용갑은 함께 남으로 탈출하자고 제안하지만, 택구는 북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또 다른 이산가족으로 만들 수 없다며 지하실에 홀로 남는다. 밖으로 나가서야 겨우 ‘혀엉’을 애처롭게 외치는 동생, 생전 처음 ‘아바이’를 목놓아 부르는 형의 절규 속에서 공연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우리의 로드 시어터는 극장을 나와서도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남북이 진정으로 만날 출구를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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