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7

2001.06.07

혼돈의 시대 … 잃어버린 나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5-02-01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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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서점 도서검색기 앞에서 ‘윤대녕 & 사슴벌레여자’를 찍어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는 여자의 등 뒤에 서 있다. 망설임은 불신을 의미한다. 미심쩍은 듯 서평을 찾아 이리저리 마우스를 돌린 여자가 끝내 포기하고 걸어간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이미 ‘사슴벌레여자’가 들려 있었다. 4월 말 출간한 윤대녕의 ‘사슴벌레여자’는 5월로 접어들어 무서운 속도로 베스트셀러권에 진입했다. 교보문고 종합순위 4위, 종로서적 종합순위 1위, 폭발적인 반응이다.

    소설은 ‘해리성기억상실’(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중요한 정보를 갑자기 회생시키지 못하는 장애)에 걸린 이성호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키 작은 여자 서하숙의 이야기다. 이성호는 지하철 벤치에서 깨어난 후 자신의 얼굴조차 낯설게 느낀다. 스물여섯 살쯤 되었을까. 솔직히 자신의 이름도 모른다. 한편 서하숙은 난쟁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작다. 직업은 라면요리사. 라면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 그녀를 이루는 코드는 컴퓨터, 텔레비전, 냉장고, 휴대폰과 신용카드 이런 것들이다.

    이성호의 텅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억이다. 서하숙은 이성호에게 기억이식을 권유한다. 서하숙 역시 인터넷상에 사슴벌레 판매루트를 통해 점조직처럼 운영되는 기억이식단체 사람에게 강간당하고 기억을 이식받은 적이 있다. 기쁨이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능력이 부족한 이명구의 기억을 이식받은 이성호는 약혼녀 차수정에 대한 살해욕구까지 물려받는다. 단조로웠던 이성호와 서하숙의 삶에 이명구와 차수정이라는 존재가 끼여들고, 이성호가 우연히 옛 직장동료와 마주치면서 사라진 기억 속의 가족과도 재회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복구되지 않는 아들의 존재에 부담을 느낀 부모가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정하자, 이성호는 집을 나와 다시 서하숙에게 돌아간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이식받은 두 사람은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되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백지연씨의 표현대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어른거리는 고독한 사이보그’로 남는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도 단지 필요한 것 중 하나일 뿐이에요. 생필품처럼 말이에요. 어둠 속에 혼자 벌거벗고 누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무의미한 존재로 변해요”(서하숙).

    ‘사슴벌레여자’의 두 주인공은 기억의 고유성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반면 조경란의 소설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에서 화자 ‘강운’(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강운의 삶이 혼란스러워진 것은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야릇한 말 때문이었다. “네가 태어난 해가 69년이지… 맞지. 아니다. 잘못 알고 있었어. 네가 태어난 해는 1969년이 아니라 1968년이다. 그러니까 지금 네 나이보다 사실은 한 살 더 많다는 말이야.”



    강운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쳐 버린 1년이란 세월의 공백을 찾기 위해 전생퇴행요법에 의지한다. 최면을 써서 전생체험을 유도하는 정신과 의사 김석희의 워크숍에 강운과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모인다. 의료사고로 상처받고 출산중 죽은 아내와 아이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받는 산부인과 의사 서휘경(강운의 옛 애인), 전생체험으로 1850년 인도의 수도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선(강운의 친구), 교통사고로 잃은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박치원(강운과 같은 건물에 사는 세입자) 등. 의사 김석희는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으며 전생과 현재의 삶은 하나라 말하며 다가오지만, 강운은 그 손길을 뿌리친다. 결국 김석희의 자살과 함께 모든 사람이 강운의 곁을 떠난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이렇게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로 시작하는 강운의 마지막 독백은 이제부터 혼자 남겨진 삶과 정면 대결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가시고기’ ‘열한번째 사과나무’와 같은 최루성 소설 틈에서 기쁨 슬픔 따위의 감정을 제거한 듯한 두 편의 소설은 오랜 만에 감정의 질퍽거림에서 벗어나 플롯을 따라가는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주었다.

    그러나 ‘사슴벌레여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가타카’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어느 부분에서는 ‘다크시티’나 ‘매트리스’의 냄새도 느껴진다. 이미 영화에서 수없이 써먹은 이야기를 소설화했을 때의 신선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를 끌어가는 전생체험 또한 이미 TV 오락물에 등장할 만큼 식상한 주제다. 문학적 상상력이 영화적 상상력을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에서, 책 대신 영화를 보는 대중을 탓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사슴벌레여자/ 윤대녕 지음/ 이룸 펴냄/ 239쪽/ 7500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조경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73쪽/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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