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7

2001.06.07

달러로 중무장 ‘여름 대공습’

  •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입력2005-02-01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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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로 중무장 ‘여름 대공습’
    블록버스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여름’. 불볕더위를 피해 극장으로 몰리는 사람들의 심신을 위무할 할리우드의 대작영화들이 올해도 줄줄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화려한 캐스팅과 특수효과, 화끈한 액션으로 무장하고,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 거대한 스케일과 비주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이런 영화에 관람료 6000∼7000원쯤 투자하는 것도 그리 아깝진 않으리라.

    누가 최종승자로 기록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올 여름 극장가의 블록버스터 전장에서 선제공격에 나선 영화는 미국 디즈니사의 전쟁영화 ‘진주만’(6월1일 개봉). 단일 스튜디오로는 사상 최대규모인 1억4500만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미 태평양함대 공습을 영화화한 전투액션 블록버스터다.

    달러로 중무장 ‘여름 대공습’
    왜 또 전쟁영화일까. 올해가 진주만 기습 60주년을 맞는 해인 만큼 미국 내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 조국을 구한 영웅들에 대한 추모열기가 뜨겁고, 성조기로 상징되는 신애국주의의 물결이 일고 있다니 시기적으로도 적절했을 테지만 ‘전쟁’은 영화의 소재로 더할 수 없이 좋은 얘깃거리가 되어왔다. 그것은 전쟁이란 극한상황 속에서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국가가 개인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 정체성의 문제, 애국심과 휴머니즘, 그리고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비극적 사랑을 그리기에 전쟁만큼 좋은 소재도 없는 것이다.

    심각한 전쟁영화도 많지만, ‘진주만’은 ‘더 록’ ‘아마겟돈’ 등 초대형 오락영화를 만든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마이클 베이 감독이 손잡고 만든 영화다. 이들에게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 또한 ‘골치 아픈 철학’보다는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볼거리와 스펙터클한 액션일 것이다.

    진주만 공습은 미군 전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기억되는 사건이지만, 그런 역사적 의미는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영화에 대해 미국 내 일본 단체들이 반발하였고, 일본 관객을 의식해 영화의 일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다지만 ‘진주만’은 아군과 적군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 맹목적인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제작비의 절반 가량을 폭격장면에 투입해 스케일과 위용을 뽐내고,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복잡한 러브스토리에 긴 시간을 할애해 ‘타이타닉’처럼 여성 관객층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참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이들의 비극적 사랑은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하지 못한다. 두 남자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에블린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노라면, 2시간 50분이나 되는 상영시간도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사랑’과 ‘전쟁’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져 감동을 준다는 게 사실은 아주 어려운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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