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5

2000.12.28

영어학습 가로막는 주범은 ‘한국식 지도법’

영어도사 하광호 교수 대학 강의 4개월… “교사들도 오류 남발”

  • 입력2005-06-13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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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학습 가로막는 주범은 ‘한국식 지도법’
    뉴욕주립대학에서 안식년을 맞아 한 학기 동안 한국에서 영어교육을 맡기로 하고 입국한 것이 지난 9월.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필자가 맡은 강의는 앞으로 영어교사가 될 학생들에게 영어교수법을 가르치는 과목이었다. 강의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이미 영어기초가 단단하다는 것을 전제로 오직 가르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 강의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됐고 교실 내에서는 한국어 사용을 금하고 항상 영어로만 대화하도록 했다.

    기적의 영어학습법 판쳐 “깜짝”

    그런데 교실에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상상 외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가장 먼저 내 귀를 불편하게 한 말은 질문에 응하는 학생들이 “Yes, teacher”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국어의 “예, 선생님“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것인데, teacher는 직업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

    한국 중학교 영어교과서에 등장하는 “He is a teacher”라는 문장을 탓할 일은 아니다. 아무 거리낌없이 ‘teacher’라고 한 것이 학생들의 잘못도 아니다. 자기 선생님을 부를 때 사용할 기본적인 호칭조차 지도하지 못한 영어교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 가운데 현직 영어교사나 영어강사가 상당수 있었기에 나는 영어시간에 Mr. Miss Mrs Ms.의 사용법을 지도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Mr.는 남자의 성 앞에, Miss는 미혼여성의 성 앞에, Mrs.는 기혼여성의 성(남편의 성) 앞에, 그러나 Ms.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Ms.는 미혼, 기혼을 가리지 않고 여성이면 모두의 성 앞에 붙이는 매우 편리한 칭호다).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이토록 잘 지도했으면서도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못한 까닭이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문법을 위한 문법은 잘 가르치면서도 가르치는 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지도하지 않은 탓이다.

    가르치지 못한 이유 또한 간단하다. 교사조차 여러 호칭이 사용되는 실제 상황을 담은 ‘영어로 쓴 이야기들’(소설, 동화 등)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아찔하게 만든 영어를 한 가지만 더 소개하면 ‘Too’의 용법이다. 어느 영한사전을 펴도 ‘너무 또는 너무나’라는 의미로 정의가 내려져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영어로 쓸 때는 반드시 한국어의 의미와 일치하지 않는 게 문제다. 내 강의를 듣는 모든 학생들이(현직 영어교사나 심지어 전문대학 교수도 있다) 한결같이 이런 표현을 한다.

    “Professor Ha, we like you. Not just very. We like you too much!”(하교수님, 우리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저 매우 정도가 아닙니다. 우린 교수님을 너무 좋아합니다)

    매우-대단히로도 모자라 그 마음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맙게 생각하지만 이 표현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국어의 너무-너무나가 내포한 긍정적 강조가 아니라 영어에서는 강한 부정의 의미다. ‘너무나 과도할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즉 좋지 않은 어떤 결과가 생긴다’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반대의 의미가 되어버리는 “too much”를 듣는 순간 마음이 우울해졌다. 그들이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그런 용법을 배웠고, 자신들이 가르치는 자리에 서서도 또 그렇게 지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기까지 했다. “We like you very much!” 정도면 ‘강조’의 의미를 가진 훌륭한 영어가 된다.

    영어교육을 전공하여 장차 영어교사가 될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잘못 사용한 영어를 바로잡아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조차 잘못된 영어에 무감각하다는 것이 아찔했다. 이들이 이 정도라면 그 밖의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놀란 것은 하느님도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되는 기적의 영어학습법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회화 중심 혹은 듣기 중심의 영어학습법은 뭔가 잘못돼 있다. 가장 중요한 문장짓기(문장을 만드는 틀)는 뒷전이고 온 국민이 ‘회화영어의 학습보따리’를 찾아 헤매게 된 것은, 지금까지 영어습득을 방해해 온 용서할 수 없는 주범이 바로 ‘문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죄 없는 문법을 매도하는가. 주범은 문법 그 자체가 아니라 문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못한 지도법에 있다.

    문법 없는 언어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문법 덕택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교통법이 없는 나라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달리려는 자동차들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면 문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문법은 바로 ‘언어의 교통법’이다.

    미국의 두세 살짜리 아이들이 모국어인 영어를 그토록 잘 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언어창고 속에 문법이 질서정연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들의 언어사용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품사는 몰라도 말을 만드는 중요한 규칙들이 의젓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문법을 토대로 말과 글을 만들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 문법이다. 한국 영어 교육이여! 고맙기 그지 없는 문법에 억울한 죄를 씌우지 말지어다.

    한국영어교육에서 현재 가장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하는 것이다. 영어원어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기본적인 문형들을 단편적으로 익힐 게 아니라, 다양한 영어원서들(문학작품이나 정보책자 등) 속에서 완전히 이해하고 음미한 뒤, 다른 상황과 문맥 속에서 써보아야 한다(일기나 편지).

    또 올바른 문장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음성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요즘 중시하는 ‘귀’ 훈련을 위해서는 자기가 쓴 문장을 정확한 발음으로 들려줄 수 있는 교사를 찾아가 모범발음을 들어보는 게 좋다. 그 문장을 녹음 테이프에 담아 여러 번 들어본다. 자기가 쓴 문장을 듣는 것만큼 ‘귀’를 뚫는 지름길은 없다.

    아직 영어로 문장을 만들 실력이 아니라면 영어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하는 자신의 서툰 영어를 정확한 문장으로 옮겨달라고 한 뒤, 그 문장을 같이 큰 소리로 읽는다. 서툴더라도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애써 영어로 표현해 보고 글로 쓰다보면 빠른 속도로 영어가 느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 단계를 넘으면 영어로 쓰인 책을 읽은 뒤 주제를 정해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해본다. 그러나 무조건 모여서 틀린 영어로 떠드는 것은 곤란하다. 반드시 영어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끝으로 영어발음은 인쇄된 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녹음테이프는 이때 사용한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을 들어야 한다.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는 녹음테이프를 수십 차례 반복해서 듣는다고 어느 날 갑자기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착각하지 말자.

    이 방법으로 한국 일본 남미 등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어른이나 아이들이 좋은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런 사례는 미국에서 발간하는 영어교육학술지에 자주 나오는 검증된 결과다. 그런데 이미 기적의 학습법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여기서 제시한 방법이 전혀 새롭지 않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그렇다. 기적은 없다. 다만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뿐이다. 정확한 영어를 듣고 써보고 말하는 것 외에 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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