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려야 뗄 수 없는 유혹이었죠. 백일몽이기는 했지만…” 지난 2월, 당시 테헤란로를 뒤흔들었던 닷컴 열풍의 와중에서 ‘싸@ㅣ버저널’이라는 주간신문을 창간했다가 채 1년을 못 채우고 휴간사태를 맞이한 한창민 이사. 한씨가 경험했던 지난 1년은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한 우리나라 닷컴기업들의 지난 1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닷컴기업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의 거품이 일시에 빠지면서 수많은 닷컴기업들이 간판을 내린 것처럼 한씨 역시 직원들이 모두 떠나간 빈 사무실을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소줏병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한씨는 의외로 담담했다. 이미 지난 4∼5월 닷컴의 거품이 꺼지면서 어느 정도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씨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유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시장 조사도 없이… 맨땅에 헤딩한 꼴”
올해 초까지만 해도 벤처기업들이 이렇게 죽을 쑤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한씨 역시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테헤란로에는 ‘돈 못 끌어다쓰면 바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당연히 회사를 창립하는 데도 ‘빨리빨리’ 방식을 채택했다. 증자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초기자본금 3억3000만원으로 회사를 출범했다. 꼼꼼한 시장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이 신문이 지향했던 편집방향은 벤처산업 전반에 대한 보도는 물론 트렌드 분석, 대안 제시 등을 다루는 일종의 ‘퀄리티 페이퍼’(Quality Paper)였다. 이 신문이 나오자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업계에 없어서는 안 될 신문’이라는 찬사가 쏟아지면서 창간 초기 10만부까지 찍어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간동지들의 환호성은 채 두달을 넘기지 못했다. 시장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타블로이드 신문은 IT업계 사람들의 정서와 맞지 않았어요. 싸구려 신문이라고 생각하는 데다 아직 우리 IT업계가 이 바닥에서 평론이나 고언을 들으려고 하는 문화가 없었던 거죠.”
그나마 정확한 시장 조사가 선행되었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신문을 창간하던 지난 2월은 이미 대부분의 기업들이 1년 광고 예산 편성을 모두 마친 시기였다. 광고와 판매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미디어 사업에서 닷컴 기업의 몰락으로 광고가 끊기자 신문의 생명도 거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씨는 “결국 맨땅에 헤딩한 꼴”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상황은 그 뒤에도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증자에 참여할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테헤란로의 유수한 닷컴기업들은 모두 접촉해 보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1년 사이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했던 한씨가 보는 닷컴의 미래는 역시 회색빛이다. 한씨는 “장비나 서비스 업체는 어느 정도 먹고 살겠지만 순수 닷컴기업은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닷컴기업들 사이에서도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이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한씨가 마지막호를 발행하기 위해 테헤란로의 CEO들을 상대로 배포까지 하고 미처 회수하지 못한 설문조사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당신은 추가자금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현재 남은 자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결국 한씨 역시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지난 1년을 ‘망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아낌없이 바쳤던 셈이다.
사무실에는 소줏병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한씨는 의외로 담담했다. 이미 지난 4∼5월 닷컴의 거품이 꺼지면서 어느 정도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씨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유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시장 조사도 없이… 맨땅에 헤딩한 꼴”
올해 초까지만 해도 벤처기업들이 이렇게 죽을 쑤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한씨 역시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테헤란로에는 ‘돈 못 끌어다쓰면 바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당연히 회사를 창립하는 데도 ‘빨리빨리’ 방식을 채택했다. 증자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초기자본금 3억3000만원으로 회사를 출범했다. 꼼꼼한 시장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이 신문이 지향했던 편집방향은 벤처산업 전반에 대한 보도는 물론 트렌드 분석, 대안 제시 등을 다루는 일종의 ‘퀄리티 페이퍼’(Quality Paper)였다. 이 신문이 나오자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업계에 없어서는 안 될 신문’이라는 찬사가 쏟아지면서 창간 초기 10만부까지 찍어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간동지들의 환호성은 채 두달을 넘기지 못했다. 시장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타블로이드 신문은 IT업계 사람들의 정서와 맞지 않았어요. 싸구려 신문이라고 생각하는 데다 아직 우리 IT업계가 이 바닥에서 평론이나 고언을 들으려고 하는 문화가 없었던 거죠.”
그나마 정확한 시장 조사가 선행되었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신문을 창간하던 지난 2월은 이미 대부분의 기업들이 1년 광고 예산 편성을 모두 마친 시기였다. 광고와 판매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미디어 사업에서 닷컴 기업의 몰락으로 광고가 끊기자 신문의 생명도 거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씨는 “결국 맨땅에 헤딩한 꼴”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상황은 그 뒤에도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증자에 참여할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테헤란로의 유수한 닷컴기업들은 모두 접촉해 보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1년 사이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했던 한씨가 보는 닷컴의 미래는 역시 회색빛이다. 한씨는 “장비나 서비스 업체는 어느 정도 먹고 살겠지만 순수 닷컴기업은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 닷컴기업들 사이에서도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이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한씨가 마지막호를 발행하기 위해 테헤란로의 CEO들을 상대로 배포까지 하고 미처 회수하지 못한 설문조사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당신은 추가자금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현재 남은 자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결국 한씨 역시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지난 1년을 ‘망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아낌없이 바쳤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