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 어른 싸움에 철강업계 멍든다](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5/06/13/200506130500014_1.jpg)
정부에서는 두 회장의 감정싸움에 속수무책인 상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두 사람이 계속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두 사람의 화해와 협조를 유도하려고 해도 현재로선 뾰족한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포스코가 민영화된 마당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 편을 들 수도 없어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이라는 것.
현재로선 극적인 상황 반전이 없는 한 두 사람의 원만한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과거 한일 철강업계는 서로 암묵적인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동남아 시장을 잘 관리해왔는데, 최근 들어 이런 전통도 깨져버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감정 싸움이 한일 철강업계의 정면 대결로 비화하면서 동남아시장 전체의 혼탁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각자 명분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대측이 조심스럽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강관측은 “어떻게 감히 포스코와 대결할 수 있겠느냐”며 “포스코와의 관계 개선이 가장 시급하고도 중대한 회사의 현안”이라고 말한다. 현대강관의 이런 태도를 보면 국내 철강업계에서 포스코가 차지하는 막강한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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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은 11월 초 서울 강남 한 호텔에서 회동, 타협점을 모색했으나 아무런 소득 없이 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회동 배경과 내용을 둘러싸고 양쪽에서 엇갈린 얘기가 나옴으로써 오해가 증폭되는 등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고 있는 양상이다. 현대 쪽에서는 “다급해진 유회장이 회동을 먼저 제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반면 포스코 쪽에서는 “현대 자신을 위해서도 현대가 냉연 쪽에 진출해서는 안 된다. 정 하고 싶다면 연합철강과 합병을 통해 진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국내 냉연업계에서는 진작부터 과잉설비 우려가 제기돼 왔다. 연합철강 관계자는 “국내 냉연업계에서는 현대강관이 냉연 쪽에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는데, 현대가 일을 저지르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포스코 관계자도 “현대가 냉연 쪽에 진출한 것은 재벌의 왕성한 ‘식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국내 냉연 설비는 현재 1350만t. 반면 국내 수요는 올해의 경우 770만t 수준이어서 나머지는 수출을 통해 소화해왔다.
그러나 현대는 이에 대해 “현대강관은 97년 9월부터 가동한 연산 180만t 규모의 포항제철 광양 4냉연설비나 작년 4월부터 가동한 연산 130만t 규모의 동부제강 냉연공장보다 먼저 설비 도입 계약을 했다”면서 “냉연 설비가 과잉이라고 판단했다면 포스코나 동부가 중도에 포기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현대 입장에서는 자동차용 냉연 강판 분야에서 포스코와 선의의 경쟁을 함으로써 냉연제품 수준을 높여보자는 뜻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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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일본산 핫코일이 국내에 밀려들어오면서 포스코가 다급해졌다. 현재 가와사키제철은 현대강관에 t당 210달러 안팎으로 핫코일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까지만 해도 t당 290달러까지 올랐던 국내 핫코일 가격에 ‘안주하고’ 있던 포스코로서는 국내 시장 ‘사수’를 위해 비슷한 가격으로 국내에 공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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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철강업계에서는 포스코가 반덤핑 제소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포스코의 한 전직 임원은 “가와사키제철은 포스코 건설 초기 포스코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박태준 전 총리도 상당히 고마워하고 있다”면서 “반덤핑 제소와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포스코 유병창 상무는 이에 대해 “포스코가 가와사키의 과거 은혜를 잊은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동안 포스코가 미국 유럽 등에서 반덤핑 제소를 당해왔는데, 국내에서 덤핑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게 포스코의 정서”라고 밝혔다. 유상무는 이어 “일본 철강업계가 작년 이후 15% 이상 증산해왔는데, 이에 따른 공급 과잉 문제를 한국 등 동남아 수출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면서 “일본의 문제는 일본 내에서 스스로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내 철강업계 일각에서는 포스코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60~70% 정도의 가동률을 보인 일본 업체가 조금 증산했다고 해서, 100% 이상 가동률을 보여온 포스코가 이를 문제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라면서 “무엇보다 포스코의 유연한 태도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한일 철강업계의 전통적인 협력관계가 깨진 데는 포스코와 유상부 회장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포스코와 현대자동차그룹의 싸움에 코피 터지는 곳은 동부제강 연합철강 등 국내 냉연업체. 한 냉연업체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냉연설비가 과잉이어서 시장 혼탁이 우려되는데, 한일 철강업계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어 더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유상부-정몽구 회장이 한 발씩 물러나 합일점을 모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일 철강업계도 협력관계를 복원, 하루빨리 과거와 같은 안정적인 시장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이 관계자의 말은 국내 철강업계 관계자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