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열렸다. 공화당의 시대다. 보수파의 무대다. 8년 만이다. 백악관을 비롯한 행정부처에 수천 개의 자리가 빈다. 워싱턴은 진작에 들썩거렸다. 워싱턴 지역 복덕방도 덩달아 들떠 있는 판이다. 가슴 졸이는 이들은 또 있다. 워싱턴의 보수 싱크탱크 브레인들이다. 공화당 정권을 움직일 이들은 이제나저제나 부시 정권 인수반의 전화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진다.
미 기업협회(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전화 교환원은 아침마다 홍역을 치른다. 교육 전문가로 AEI에 적을 두고 있는 딕 체이니 차기 부통령의 부인 ‘미세스 체이니’를 찾는 전화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워싱턴 시내 17번가에 있는 AEI야말로 차기 백악관 행의 ‘대기실’로 불린다.
AEI 브레인들의 면면이 그렇다. 우선 딕 체이니 차기 부통령이 AEI의 이사고,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서 ‘골수 우파’로 공격을 받는 차기 부통령 부인인 리니 체이니도 AEI의 간판이다. 부시의 수석 경제자문인 로렌스 린지는 백악관 고위직을 맡아놓은 것이나 다름없고, 역시 부시의 외교정책 자문인 리처드 펄리도 백악관 행이 유력하다. 캐롤린 위버가 차기 공화당 정권의 사회보장 정책에 관련된 주요 직책을 맡을 것이 거의 틀림없고, 플로리다주 팜 비치에서 부시 법률 팀을 가동했던 존 볼튼도 AEI 사람이며, AEI 회장 크리스토퍼 드머스는 이미 차기 정권의 환경보호국 책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래저래 AEI는 텅 비게 생겼다. 백악관의 ‘별관’, 백악관의 ‘서편 집무실 사람들’이란 말이 나돌 정도다. 딕 체이니와 로렌스 린지로 이어진 끈이 그만큼 튼튼한 동아줄이라는 말이다. AEI 연구원 가운데 최소 5~6명이 정권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1943년에 설립된 AEI는 197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펴다가 1980년대에는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현 회장인 드머스가 쓰러진 AEI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지금은 50여 명의 연구원을 가동하는 굴지의 워싱턴 싱크탱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싱크탱크의 결집지는 워싱턴의 AEI뿐이 아니다. 보수 정책연구소 연구원들은 이미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끈’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고, 지난 여름부터 이들 사이에는 수도 없는 이메일이 오갔다. 누가 어디로 가는지가 최대의 화제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독단적인 브레인들보다 중도적이고 온건한 싱크탱크 출신들을 선호한 반면, 아들 부시 대통령은 이념성이 강한 이들을 끌어당기리라는 것이 이들이 바라는 바이고, 나름대로의 예측인 탓이다.
이런 점에서는 헤리티지 재단이 적격이다. AEI보다 훨씬 더 이념적이고 주의 주장에 강하다. 1980년 초 레이건 정권인수 팀의 핵심 브레인들이 이 헤리티지 출신이고, 레이건 혁명의 선두차에 탔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주축이 되어 내놓았던 헤리티지의 정책보고서 ‘리더십 위임령’(Mandate for Leadership)이야말로 레이건 백악관의 청사진이었다. 연방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를 밝힌 제2의 ‘리더십 위임령’도 곧 발간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통 보수주의, 적극적인 행동주의, 사회 보수주의를 표방해 레이건의 글방 선생 노릇을 했던 헤리티지가 새로운 모습의 보수주의를 내세우는 부시 정권과 얼마나 궁합이 맞을지는 의문이다. 부시 정권은 오히려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우는 AEI에 더 잘 맞는다. 더욱이 AEI는 중도 좌파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상대역으로 중도 우파를 대표하는 데다가, 헤리티지 재단의 회장인 에드윈 폴너조차도 부시와 AEI의 상호 공감대를 인정하고 있다.
전 평화봉사단장 엘레인 차오, 건강 보건 정책 전문가 케이 제임스, 스튜어트 버틀러, 외교정책 연구원 킴 홀름즈, 부시의 교육 자문역인 니나 리스, 베키 던롭 등이 헤리티지에서 보따리 쌀 준비를 하고 있는 브레인들이다.
1919년에 설립된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 연구소도 레이건의 한 기둥이었다.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마이클 보스킨 등이 후버 출신의 대표 주자다.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콘돌리자 라이스가 후버 출신으로 부시 정권에 큰 발자국을 찍었다. 존 카간, 존 테일러 등이 줄을 서 있다.
부시는 이미 후버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2년 전 부시가 캘리포니아 후버 연구소의 조지 슐츠를 찾았을 때, 레이건이 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부시는 2년 후인 2000년 대선의 정책 그룹을 조직해 달라고 슐츠에게 부탁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허드슨 연구소도 부시와 밀접한 관계다. 부시의 최고위 국내 정책 자문이자 전 인디애나폴리스 시장이었던 스티븐 골드스미스가 허드슨과 다리를 놓고 있다.
새 정권은 정책에 굶주리게 마련이다. 싱크탱크가 내놓는 정책을 부시의 차기 공화당 정권은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이게 되어 있다. 미국 정치의 특징이고, 미국식 정책 결정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헤리티지 재단은 얼마 전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원 판사의 부인을 고용해 책상을 하나 내주었다. 차기 행정부에서 일할 임명직 후보군들의 이력서를 취합하는 일을 맡긴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싱크탱크들이 학문적 성과나 능력보다는 이념과 정치 성향에 좌우되는 브레인들의 백악관 ‘대기실’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점점 더 비대해지고 돈을 물쓰듯 하는 싱크탱크들이 보수 관료 집단의 대기실 노릇만 하고, 전문적으로 특정 이데올로기의 창도자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이 글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만약 부시 행정부의 고위직이 헤리티지나 AEI 인맥으로 메워진다면, 부시는 통합형 지도자가 아니라 분열형 지도자가 되고 말 것이다.’
1977년 민주당 카터 대통령 때 인재와 정책의 빼놓을 수 없는 젖줄이 브루킹스 연구소였다. 레이건 때는 헤리티지 재단이 그 역할을 했다. AEI가 부시의 새 공화당 행정부에서 얼마나 싱크탱크의 위력을 발휘할지는 한 달 안에 드러날 것이다.
미 기업협회(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전화 교환원은 아침마다 홍역을 치른다. 교육 전문가로 AEI에 적을 두고 있는 딕 체이니 차기 부통령의 부인 ‘미세스 체이니’를 찾는 전화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워싱턴 시내 17번가에 있는 AEI야말로 차기 백악관 행의 ‘대기실’로 불린다.
AEI 브레인들의 면면이 그렇다. 우선 딕 체이니 차기 부통령이 AEI의 이사고,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서 ‘골수 우파’로 공격을 받는 차기 부통령 부인인 리니 체이니도 AEI의 간판이다. 부시의 수석 경제자문인 로렌스 린지는 백악관 고위직을 맡아놓은 것이나 다름없고, 역시 부시의 외교정책 자문인 리처드 펄리도 백악관 행이 유력하다. 캐롤린 위버가 차기 공화당 정권의 사회보장 정책에 관련된 주요 직책을 맡을 것이 거의 틀림없고, 플로리다주 팜 비치에서 부시 법률 팀을 가동했던 존 볼튼도 AEI 사람이며, AEI 회장 크리스토퍼 드머스는 이미 차기 정권의 환경보호국 책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래저래 AEI는 텅 비게 생겼다. 백악관의 ‘별관’, 백악관의 ‘서편 집무실 사람들’이란 말이 나돌 정도다. 딕 체이니와 로렌스 린지로 이어진 끈이 그만큼 튼튼한 동아줄이라는 말이다. AEI 연구원 가운데 최소 5~6명이 정권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1943년에 설립된 AEI는 197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펴다가 1980년대에는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현 회장인 드머스가 쓰러진 AEI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지금은 50여 명의 연구원을 가동하는 굴지의 워싱턴 싱크탱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싱크탱크의 결집지는 워싱턴의 AEI뿐이 아니다. 보수 정책연구소 연구원들은 이미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끈’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고, 지난 여름부터 이들 사이에는 수도 없는 이메일이 오갔다. 누가 어디로 가는지가 최대의 화제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독단적인 브레인들보다 중도적이고 온건한 싱크탱크 출신들을 선호한 반면, 아들 부시 대통령은 이념성이 강한 이들을 끌어당기리라는 것이 이들이 바라는 바이고, 나름대로의 예측인 탓이다.
이런 점에서는 헤리티지 재단이 적격이다. AEI보다 훨씬 더 이념적이고 주의 주장에 강하다. 1980년 초 레이건 정권인수 팀의 핵심 브레인들이 이 헤리티지 출신이고, 레이건 혁명의 선두차에 탔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주축이 되어 내놓았던 헤리티지의 정책보고서 ‘리더십 위임령’(Mandate for Leadership)이야말로 레이건 백악관의 청사진이었다. 연방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를 밝힌 제2의 ‘리더십 위임령’도 곧 발간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통 보수주의, 적극적인 행동주의, 사회 보수주의를 표방해 레이건의 글방 선생 노릇을 했던 헤리티지가 새로운 모습의 보수주의를 내세우는 부시 정권과 얼마나 궁합이 맞을지는 의문이다. 부시 정권은 오히려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우는 AEI에 더 잘 맞는다. 더욱이 AEI는 중도 좌파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상대역으로 중도 우파를 대표하는 데다가, 헤리티지 재단의 회장인 에드윈 폴너조차도 부시와 AEI의 상호 공감대를 인정하고 있다.
전 평화봉사단장 엘레인 차오, 건강 보건 정책 전문가 케이 제임스, 스튜어트 버틀러, 외교정책 연구원 킴 홀름즈, 부시의 교육 자문역인 니나 리스, 베키 던롭 등이 헤리티지에서 보따리 쌀 준비를 하고 있는 브레인들이다.
1919년에 설립된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 연구소도 레이건의 한 기둥이었다.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마이클 보스킨 등이 후버 출신의 대표 주자다.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콘돌리자 라이스가 후버 출신으로 부시 정권에 큰 발자국을 찍었다. 존 카간, 존 테일러 등이 줄을 서 있다.
부시는 이미 후버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2년 전 부시가 캘리포니아 후버 연구소의 조지 슐츠를 찾았을 때, 레이건이 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부시는 2년 후인 2000년 대선의 정책 그룹을 조직해 달라고 슐츠에게 부탁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허드슨 연구소도 부시와 밀접한 관계다. 부시의 최고위 국내 정책 자문이자 전 인디애나폴리스 시장이었던 스티븐 골드스미스가 허드슨과 다리를 놓고 있다.
새 정권은 정책에 굶주리게 마련이다. 싱크탱크가 내놓는 정책을 부시의 차기 공화당 정권은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이게 되어 있다. 미국 정치의 특징이고, 미국식 정책 결정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헤리티지 재단은 얼마 전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원 판사의 부인을 고용해 책상을 하나 내주었다. 차기 행정부에서 일할 임명직 후보군들의 이력서를 취합하는 일을 맡긴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싱크탱크들이 학문적 성과나 능력보다는 이념과 정치 성향에 좌우되는 브레인들의 백악관 ‘대기실’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점점 더 비대해지고 돈을 물쓰듯 하는 싱크탱크들이 보수 관료 집단의 대기실 노릇만 하고, 전문적으로 특정 이데올로기의 창도자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이 글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만약 부시 행정부의 고위직이 헤리티지나 AEI 인맥으로 메워진다면, 부시는 통합형 지도자가 아니라 분열형 지도자가 되고 말 것이다.’
1977년 민주당 카터 대통령 때 인재와 정책의 빼놓을 수 없는 젖줄이 브루킹스 연구소였다. 레이건 때는 헤리티지 재단이 그 역할을 했다. AEI가 부시의 새 공화당 행정부에서 얼마나 싱크탱크의 위력을 발휘할지는 한 달 안에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