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서울. 은행에서 대출 받기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떼야 하는 김모씨는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만 조작하면 된다. 우선 ‘한국정부 단일 전자 민원 창구’ 사이트에 접속, 인적사항과 비밀번호를 입력해 등본 발급 신청을 한다. 그러면 관할 동사무소로 자동 연결돼 잠시 후 등본이 그의 모니터에 ‘재깍’ 도착한다. 김씨는 그것을 온라인으로 보내도 되고 프린터로 출력할 수도 있다.
국민에게 이런 편리성을 가져다주기 위해 정부는 ‘전자정부’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행정자치부는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법률안’(이하 전자정부법)을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는데 올해 안에 반드시 통과시킨 뒤 2001년 7월부터 전면 시행하겠다는 의지다. 전자정부는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에서 이뤄지는 수만 가지 민원서비스를 전자화함으로써 국민에게 획기적인 편리함을 주겠다는 취지다. 법률안에 따르면 전자정부는 정부의 생산성, 투명성, 민주성 제고라는 3대 목표를 갖는다.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법률안은 그 모태다. 다르게 말하면 전자정부법은 ‘정부’라는 말이 뜻하듯 ‘인터넷 상의 최고권력기관의 헌법’과도 같다. 인터넷이 생활화할수록 전자정부의 파워도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자정부법은 그 목적에 맞게 제대로 작성됐을까.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될 법률안이 국회통과와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별로 없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박동진 교수(정치학박사)가 ‘주간동아’를 통해 ‘전자정부법’에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전자정부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국민편리성과 정부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투명성, 민주성 제고는 기대할 수 없으며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것처럼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까지 있다”며 정부의 법안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박교수는 “정부가 만든 전자정부법은 비민주적, 권위적 온라인 정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박교수는 정부가 전자정부법에서 제시하는 전자정부의 기능과 효과를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전자정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왜 전자정부를 하는가”이다. 단순히 주민등록등본을 집에서 떼는 편리성을 얻기 위해 1조원이 넘는 돈(영국의 전자정부 예산 기준)을 쏟아 붓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미국의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의 해답은 이렇다. “전자정부는 국민이 자신의 의사를 국정 담당자에게 알리거나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길을 넓혀주기 때문에 필요하다.”
정부의 전자정부법은 1조에서 “정부의 민주성을 제고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선언적 표현’일 뿐 법안에서 국민 참여와 민주성 제고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박교수의 견해다. 전자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일은 정부 내 소수에게만 집중돼 있고 국민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전자정부의 운영에 있어 국민권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4조)는 조항 정도가 있지만 이 부분도 운영 주체는 정부 단독임을 뜻하고 있다. 전자정부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곳, ‘문서업무감축위원회’다(41조). 10인의 위원 중 3명이 시민 몫이지만 이들의 활동은 말 그대로 정부 내 문서업무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심의하는 일에 국한된다.
고려대 행정학과 함성득 교수는 “전자정부는 행정효율성 증대 측면만이 아니라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무대’로 기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법률은 이런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 정치사이트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이사는 “법안에서 국민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간접민주주의를 보완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박동진 교수는 “전자정부법률안은 ‘우리만 믿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온라인 정부체제에서 국민의 국정 참여나 정부에 대한 견제가 원천 봉쇄될 개연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 전자정부가 투명하다?
전자정부법은 행정정보의 공개의지를 몇몇 조항에서 밝히고 있다(‘국민생활에 도움되는 정보는 인터넷으로 공개한다’ 등).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특히 ‘단일전자민원창구’엔 거의 모든 정부기관들의 정보가 모여 있기 때문에 전자정부의 편리성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창구에 대해 박교수는 “지금 운영되는 정부 사이트들의 단순 ‘링크’ 기능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포장만 다시 했을 뿐 (정보의) 내용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김능구 대표이사도 비슷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시민단체들의 행정정보공개 요구를 행정기관들은 번번이 무시해왔다. 전자정부가 구현돼도 이런 일은 시정될 것 같지 않다. 전자정부법안엔 행정정보를 인터넷에 띄우겠다는 얘기만 있지 정보공개 범위를 넓히겠다는 내용이 없다. 결국 현행 정보공개법에 안주하게 될 것이다.”
현재 정부기관의 인터넷사이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검색기능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토목업자가 ‘입찰’이라는 검색어로 전국 관급공사 입찰정보를 얻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터넷을 통한 효과적 정보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행정의 투명성을 반감시키는 요인. 그렇다면 전자정부 시행 이후엔 ‘초강력 정부 포털 검색엔진’이 등장할까. 박교수는 “전자정부법엔 이를 담보해주는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전자정부법은 행정기관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동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를 두도록 하고 있다(22조). 공무원들은 이 센터를 거쳐 원하는 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다. 또 전자정부법에 의하면 모든 행정기관의 컴퓨터는 ‘표준화’된다(24조). 이에 따라 이름, 주소, 가족관계, 학력, 병역, 질병명세, 전과 경력, 직업경력, 출입국기록, 납세기록, 금융거래기록, 휴대폰통화명세, 인터넷접속기록, 대출받은 서적명세까지 개인의 정보가 정부기관이나 특정 공무원에 의해 지금보다 훨씬 더 쉽고 효율적으로 수집-유포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99년 건설회사가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개인의 전과경력을 활용해 직원 11명을 해고한 일은 전자정부에 대한 경고로 제시되고 있다.
전자정부법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10조2항의 규정에 의해 다른 기관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만을 공동 이용하도록 한다. 법적으로 전자정부체제 하에서도 개인 프라이버시 정보에 대한 보호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할까. “누군가에 의해 차단된 정보는 바로 그 사람에 의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박교수)
전자정부 내엔 ‘운영자’를 감시하는 외부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박교수는 “권력이 정보를 비민주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면 누가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고 반문한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법은 항상 예외조항 탓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고영삼 정보사회학 박사). 김기중 변호사는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구체적 조항이 명시된 법률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 전자정부가 공무원 24시간 감시한다?
전자정부체제에서 공무원은 종이문서 업무의 상당부분을 전자문서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별로 ID를 부여받아 공무를 보게 된다. 박교수는 “결국 공무원의 24시간 업무행적, 인터넷서핑의 흔적이 매 시점 별로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전자정부법은 보안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26조).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한 보안강화는 바로 내부 통제의 강화와 같은 의미라는 게 박교수의 견해. 그는 “일부 기업체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이-메일 검색 등 각종 전자적 검열, 통제는 공무원사회에선 일상적 일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규형씨(리서치 앤 리서치 대표)는 “전자정부가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자정부 시행으로 당장 예산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곳은 문서업무 줄이기 부분. 전자정부법은 문서업무 줄이기를 독려하고 있다. 또 별도의 사무실을 두지 않고 행정기관이 통신망으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예를 들어 전자민원서비스가 시행되면 연간 1조2000억원의 민원서류발급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같은 전자적 처리의 증가가 관료사회의 경직된 업무관행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 박교수의 시각이다. 일거리가 대폭 없어지는 읍-면-동사무소, 구청 민원담당 직원들의 구조조정 문제도 남는다(행자부는 과거 전자주민카드 실시를 검토하면서 2만1000여명의 감축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교수는 “전자정부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낡은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전자정부 실현 의지를 밝혔다. 이제 국내에서 그 법적 기초가 만들어지려는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고 걱정스런 부분이 많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교수는 “전자정부는 미래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시대전환적 주제’다. 이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려 각계의 비판과 검증,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이런 편리성을 가져다주기 위해 정부는 ‘전자정부’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행정자치부는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법률안’(이하 전자정부법)을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는데 올해 안에 반드시 통과시킨 뒤 2001년 7월부터 전면 시행하겠다는 의지다. 전자정부는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에서 이뤄지는 수만 가지 민원서비스를 전자화함으로써 국민에게 획기적인 편리함을 주겠다는 취지다. 법률안에 따르면 전자정부는 정부의 생산성, 투명성, 민주성 제고라는 3대 목표를 갖는다.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법률안은 그 모태다. 다르게 말하면 전자정부법은 ‘정부’라는 말이 뜻하듯 ‘인터넷 상의 최고권력기관의 헌법’과도 같다. 인터넷이 생활화할수록 전자정부의 파워도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자정부법은 그 목적에 맞게 제대로 작성됐을까.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될 법률안이 국회통과와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별로 없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박동진 교수(정치학박사)가 ‘주간동아’를 통해 ‘전자정부법’에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전자정부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국민편리성과 정부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투명성, 민주성 제고는 기대할 수 없으며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것처럼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까지 있다”며 정부의 법안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박교수는 “정부가 만든 전자정부법은 비민주적, 권위적 온라인 정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박교수는 정부가 전자정부법에서 제시하는 전자정부의 기능과 효과를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전자정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왜 전자정부를 하는가”이다. 단순히 주민등록등본을 집에서 떼는 편리성을 얻기 위해 1조원이 넘는 돈(영국의 전자정부 예산 기준)을 쏟아 붓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미국의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의 해답은 이렇다. “전자정부는 국민이 자신의 의사를 국정 담당자에게 알리거나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길을 넓혀주기 때문에 필요하다.”
정부의 전자정부법은 1조에서 “정부의 민주성을 제고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선언적 표현’일 뿐 법안에서 국민 참여와 민주성 제고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박교수의 견해다. 전자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일은 정부 내 소수에게만 집중돼 있고 국민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전자정부의 운영에 있어 국민권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4조)는 조항 정도가 있지만 이 부분도 운영 주체는 정부 단독임을 뜻하고 있다. 전자정부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곳, ‘문서업무감축위원회’다(41조). 10인의 위원 중 3명이 시민 몫이지만 이들의 활동은 말 그대로 정부 내 문서업무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심의하는 일에 국한된다.
고려대 행정학과 함성득 교수는 “전자정부는 행정효율성 증대 측면만이 아니라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무대’로 기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법률은 이런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 정치사이트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이사는 “법안에서 국민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간접민주주의를 보완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박동진 교수는 “전자정부법률안은 ‘우리만 믿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온라인 정부체제에서 국민의 국정 참여나 정부에 대한 견제가 원천 봉쇄될 개연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 전자정부가 투명하다?
전자정부법은 행정정보의 공개의지를 몇몇 조항에서 밝히고 있다(‘국민생활에 도움되는 정보는 인터넷으로 공개한다’ 등).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특히 ‘단일전자민원창구’엔 거의 모든 정부기관들의 정보가 모여 있기 때문에 전자정부의 편리성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창구에 대해 박교수는 “지금 운영되는 정부 사이트들의 단순 ‘링크’ 기능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포장만 다시 했을 뿐 (정보의) 내용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김능구 대표이사도 비슷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시민단체들의 행정정보공개 요구를 행정기관들은 번번이 무시해왔다. 전자정부가 구현돼도 이런 일은 시정될 것 같지 않다. 전자정부법안엔 행정정보를 인터넷에 띄우겠다는 얘기만 있지 정보공개 범위를 넓히겠다는 내용이 없다. 결국 현행 정보공개법에 안주하게 될 것이다.”
현재 정부기관의 인터넷사이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검색기능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토목업자가 ‘입찰’이라는 검색어로 전국 관급공사 입찰정보를 얻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터넷을 통한 효과적 정보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행정의 투명성을 반감시키는 요인. 그렇다면 전자정부 시행 이후엔 ‘초강력 정부 포털 검색엔진’이 등장할까. 박교수는 “전자정부법엔 이를 담보해주는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전자정부법은 행정기관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동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를 두도록 하고 있다(22조). 공무원들은 이 센터를 거쳐 원하는 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다. 또 전자정부법에 의하면 모든 행정기관의 컴퓨터는 ‘표준화’된다(24조). 이에 따라 이름, 주소, 가족관계, 학력, 병역, 질병명세, 전과 경력, 직업경력, 출입국기록, 납세기록, 금융거래기록, 휴대폰통화명세, 인터넷접속기록, 대출받은 서적명세까지 개인의 정보가 정부기관이나 특정 공무원에 의해 지금보다 훨씬 더 쉽고 효율적으로 수집-유포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99년 건설회사가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개인의 전과경력을 활용해 직원 11명을 해고한 일은 전자정부에 대한 경고로 제시되고 있다.
전자정부법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10조2항의 규정에 의해 다른 기관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만을 공동 이용하도록 한다. 법적으로 전자정부체제 하에서도 개인 프라이버시 정보에 대한 보호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할까. “누군가에 의해 차단된 정보는 바로 그 사람에 의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박교수)
전자정부 내엔 ‘운영자’를 감시하는 외부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박교수는 “권력이 정보를 비민주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는다면 누가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고 반문한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법은 항상 예외조항 탓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고영삼 정보사회학 박사). 김기중 변호사는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구체적 조항이 명시된 법률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 전자정부가 공무원 24시간 감시한다?
전자정부체제에서 공무원은 종이문서 업무의 상당부분을 전자문서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별로 ID를 부여받아 공무를 보게 된다. 박교수는 “결국 공무원의 24시간 업무행적, 인터넷서핑의 흔적이 매 시점 별로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전자정부법은 보안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26조).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한 보안강화는 바로 내부 통제의 강화와 같은 의미라는 게 박교수의 견해. 그는 “일부 기업체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이-메일 검색 등 각종 전자적 검열, 통제는 공무원사회에선 일상적 일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규형씨(리서치 앤 리서치 대표)는 “전자정부가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자정부 시행으로 당장 예산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곳은 문서업무 줄이기 부분. 전자정부법은 문서업무 줄이기를 독려하고 있다. 또 별도의 사무실을 두지 않고 행정기관이 통신망으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예를 들어 전자민원서비스가 시행되면 연간 1조2000억원의 민원서류발급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같은 전자적 처리의 증가가 관료사회의 경직된 업무관행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 박교수의 시각이다. 일거리가 대폭 없어지는 읍-면-동사무소, 구청 민원담당 직원들의 구조조정 문제도 남는다(행자부는 과거 전자주민카드 실시를 검토하면서 2만1000여명의 감축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교수는 “전자정부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낡은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전자정부 실현 의지를 밝혔다. 이제 국내에서 그 법적 기초가 만들어지려는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고 걱정스런 부분이 많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교수는 “전자정부는 미래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시대전환적 주제’다. 이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려 각계의 비판과 검증,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