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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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막사 포격 계획 세웠다

8인치 곡사포 등 미 포병 동원 심도 있게 검토…반격 우려한 워싱턴선 미루나무 절단만 결정

  • 입력2005-10-11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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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군 막사 포격 계획 세웠다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은 한국전 이후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발생한 첫번째의 인명 희생으로 기록된다. 콘라드 드라토 미 해군 대령(보고서 작성 시기인 1987년 당시 계급)이 작성한 비밀 보고서에는 살해 사건 직후부터 폴 버니언 작전 마무리까지 스틸웰 대장이 취한 일련의 위기 대응 과정이 시간대별로 기록되어 있다. 미8군 사령관의 위기 대응 절차와 방법을 생생하게 알아볼 수 있는 증빙 자료다.

    일본에서 돌아온 스틸웰이 김포공항에서 용산의 미 육군 개리슨 영내에 도착한 것은 8월18일 오후 10시40분. 이때 이미 스틸웰은 세 가지의 선택지를 놓고 상황 판단을 마친 뒤였다. 콘라드 대령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차를 타고 사령부로 돌아오는 동안 스틸웰 대장에게는 ‘군사 학교 교과서식 해결책’으로 세 가지 조건이 제시되었다. 첫째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 둘째 3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는 것, 셋째 의미 있는 모종의 조치를 취하는 것 등이다. 사령부에 도착했을 때 스틸웰 장군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취해야 할 의미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이미 확고한 결심이 서 있었다.’

    용산 사령부로 돌아온 스틸웰은 20분 후 참모들을 소집했다. 하와이의 미 태평양사령부와 워싱턴에는 이미 비밀 전문이 타전된 뒤였다. 스틸웰은 참모에게 세 가지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한다.

    ‘첫째는 이튿날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의 선임 위원인 마크 프루덴(mark P. Frudden) 미 해군 소장이 발표할 항의 성명서였고, 둘째는 북한의 상대방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에게 보낼 스틸웰 명의의 서한이었으며, 셋째는 미루나무 제거 작전서였다.’



    사건 당일인 8월18일 자정이 막 지난 직후, 스틸웰은 바로 아래의 직속 지휘관인 한미 1군단장 존 쿠시먼(John Cushman) 중장에게 구체적인 작전 지시를 내린다. 이 작전 지시는 미루나무 제거 작전인 폴 버니언 작전을 구체적으로 실시하게 될 나머지 핵심 지휘관 두 사람에게도 똑같이 전달되었다. 2사단장 모리스 브래디(Morris Brady) 소장과 JSA(공동경비구역) 경비대장 비에라 중령이었다.

    ‘참모와 직속 하급 지휘관에게 최초 ‘행군 명령’을 내린 뒤 스틸웰 대장은 위기 수습책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보고하기 위해 워싱턴과 하와이(미 태평양사령부)로 눈을 돌렸다. 8월19일 오전 2시 직전, 스틸웰은 미 합참의장과 국방장관,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에게 자신의 문건 및 작전 내용의 윤곽을 보고하며 회신을 기다린다는 보고서를 타전했다. (중략) 이 보고서 말미에 스틸웰은 확신에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지었다. ‘미루나무 제거 작업은 반드시 그리고 단시간 내에 수행되어야 함.’’

    오전 5시30분, 스틸웰은 자신이 직접 메시지 형식으로 된 작전 초안을 작성한다. 작전 시간과 동원될 병력, 지휘관 지침 등 작전 내용을 통일시켜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 시각 워싱턴 합참의 할러웨이 제독(합참의장 대행)은 캔자스에 가 있는 포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의 작전 계획을 보고한 뒤, 워싱턴특별대책반에서 ‘보복 조치’로 논의되었던 사항들을 스틸웰에게 통보한다. 이 보복 조치의 선택 폭은 넓었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북한 선박을 침몰시키거나 포병을 동원해 북한군 막사를 포격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워싱턴특별대책반에서 작성한 한 비밀 문서(2급 비밀/Secret)는 북한군 막사(병영)를 포격하기 위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짜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공동경비구역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국경 경비 막사 파괴’라는 제목의 문서다.

    ‘□일반: UTM BT 937043 근처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국경 경비대 막사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임.

    □목표물 개황: 1. 아래 정보는 이전에 한국에서 활동했던 DIA(국방정보국) 분석가의 개인 관측에 기초한 것임. 2. JSA에서 1.7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개성 육군 병영은 1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막사와 식당, 행정부서가 있음.

    □동원 가능 병력: 임무 수행을 위한 미 포병 병력 충분함. 남한측 비무장지대 내 목표물 관측 가능한 위치에 105문의 포대가 위치해 있음. 이 외 다른 포대가 6~8 시간 내 지원 포격 가능함. 효율적 공격을 위해서는 최소 3차례 포격이 가해져야 함. 본 임무 수행의 최적 대포는 8인치 곡사포(Howitzer)임.

    □작전 개념: 재래식 및 개량 탄약을 사용하는 포신 포대로 국경 경비대 막사를 공격함. 미국 물자 활용.

    □적 병력: 조선인민군은 목표물 인근에 탁월한 포병을 보유하고 있으며 90mm에서부터 203mm(8인치)에 이르는 각종 포대로 무장하고 있음. 최소 4대 1로 적군 병력이 우세한 것으로 평가됨.’

    이 비밀 문서에는 또 막사 포격 작전에 동원될 105mm, 155mm, 8인치 등 3개 종류 포의 최대 사거리, 편차 오류, 사거리 오류 범주, 작약 반경, 완전 파괴를 위한 발사 탄약 수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북한군 개성 육군 병영에 대한 포격 작전은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다.

    할러웨이 제독은 스틸웰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루나무를 잘라내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두 가지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하나는 북한군이 반격할 경우 유엔사 병력의 대처 방법이었고, 또 하나는 유엔사령관(스틸웰)이 어떤 교전 규칙을 지시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강경 보복 조치를 선호했던 워싱턴은 그러나 북한군의 반격을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8월19일 오전 11시, 남한에는 데프콘(DEFCON. Defense Condition)이 4등급에서 3등급으로 올려졌다. 한국전 이후 처음으로 지역(한국) 데프콘 등급이 바뀐 것이다. 하와이 태평양사령부와 워싱턴 펜타곤이 서울과 비선 전화망으로 연결되었고 JSA 작전 현장, 한미 1군단, 미 2사단 사이에는 직통 전화선과 일방 육성 수신용 유선이 가설되었다. 19일 오후, 스틸웰은 미 2사단과 한미 1군단의 현장 준비 상황을 점검하면서 워싱턴으로부터의 최종 작전 명령을 기다렸다.

    워싱턴에서는 스틸웰이 올린 작전 계획서를 놓고 특별대책반이 2차에 걸친 비밀 회의를 가진 끝에 정치적 고려를 포함한 선택지를 만들었고, 키신저 국무장관은 포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캔자스로 날아갔다.

    할러웨이 제독은 H-hour를 8월20일 오전 11시로 잡았음을 스틸웰에게 통보하면서 시간 내 작전 수행 가능성을 물었다. 가능하면 빨리 위기를 수습하고자 하는 것이 워싱턴의 의도였다. 그러나 스틸웰은 21일 오전 7시를 제안했다. 스틸웰에게는 작전 준비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스틸웰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상대로,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전구 사령관(스틸웰)의 말을 들어줄 것을 주장했고 뜻을 관철시켰다.

    20일 오후 1시. 김포공항이 1시간 동안 잠정 폐쇄되었다. 살해당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의 영결식을 위한 특별 조치였다. 스틸웰은 김포공항에서 이 두 미군 장교의 유해가 담긴 관을 비행기에 실어 보냈다.

    포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사전 통보 없이 폴 버니언 작전을 수행한다는 브리핑을 받은 후 마지막 숙고에 들어갔다. 포드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린 시간은 미 동부 시간으로 오전 10시15분(한국 시간 20일 밤 11시15분)이었다. 포드 대통령의 최종 작전 명령은 즉각 워싱턴의 합참에 전달됐고, 합참은 스틸웰에게 최종 명령을 하달했다. 스틸웰이 워싱턴의 최종 명령을 하달받았을 때의 한국 시간은 20일 밤 11시45분이었다. 비밀 문서는 작전 당일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21일 오전 6시48분. 비에라 중령이 지휘하는 태스크포스팀이 키티호크 기지를 출발하면서 폴 버니언 작전은 시작되었다. 소총 부대를 태운 20대의 헬리콥터와 지상군을 지원하는 중무장 헬리콥터 7대가 임진강과 비무장지대 일대 상공을 선회하면서 무장 시위를 했다. 비에라 팀의 선두 요원들은 곧장 미루나무로 다가갔다.’

    ‘7시2분, 무술 유단자로 구성된 한국군 특전대가 곤봉으로 무장하고 공동경비구역에 진입, JSA 소대 지원 위치에 자리잡았다.’

    미루나무 제거 작업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미드웨이 항모에 F-111전투기까지 동원된 대규모 군사 작전이었다. 폴 버니언 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구 사령관인 스틸웰 대장의 총지휘하에 진행되고 마무리되었다. 유엔사령관이자 미8군사령관인 스틸웰 장군의 위기 대응, 위기 수습 능력이 입증된 셈이었다.

    ‘판문점 도끼 살해 사건’에서 폴 버니언 작전이 수행되기까지 사흘간 한국의 자리는 없었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한 역할은 폴 버니언 작전 때 스틸웰에게 한국군 태권도 유단자 병력을 제공한 것뿐이었다. 모든 것은 스틸웰과 워싱턴, 즉 미국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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