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핵 무장의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한 이상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미 한국은 소규모의 재처리 플랜트 구입을 위해 프랑스와 협상을 해오던 중이었다. 미국의 대응책은 크게 두 갈래였다. 우선은 한국이 사용 후 연료와 재처리 플랜트 구입을 위해 접촉하고 있는 캐나다와 프랑스를 상대로 한국에 핵 물질을 공급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직접 한국을 상대로 핵 보유 계획 포기를 종용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이러한 대응책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은 지난 회에 공개한, 국무부에서 작성한 다섯 장짜리 조치 비망록(1975년 7월)이다. ‘캐나다와 프랑스의 입장’이라는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3월에 나온 정책 지침에 근거, 캐나다와 접촉을 했음. 일반적인 핵 수출 정책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바, 캐나다는 한국이 캐나다에서 구입한 원자로에서 사용 후 연료를 재처리하기 전에 캐나다의 승낙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음. 캐나다는 또한 국내의 어떠한 재처리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유보 조치를 해놓았으며, 향후 한국에 대한 핵 지원 정책은 우리와 협조하겠다는 점을 밝혔음.
최근 핵 공급국과의 런던 회동에 앞서 프랑스와도 논의가 있었음. 한국 정부에 프랑스로부터의 재처리 플랜트 구입 계획을 단념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설명했음.’
미국은 다음 조치로 한국의 핵 에너지 관리들을 은근히 조이고 들었다.
‘한국 정부의 원자력 에너지 관리들에게 자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협력 합의서 규정에 한국에 공급된 미국산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 후 연료의 재처리를 거부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음. 협력 합의서 규정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를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했으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그들의 언급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재처리에 대해 총괄적인 의문 사항이 있으면 논의하기를 바란다고 했음.
합의서 해석에 대한 그들의 확인 내용을 접수한 후에는, 핵통제위원회(Nuclear Regulatory Commission)에 고리 1호기 원자로에 공급할 기존의 농축 연료(8월에 공급될 예정) 수출 허락서를 발행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임.
지금까지 한국은 캐나다가 핵 확산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과 재처리 문제에 대해 우리가 취한 예비적인 조치와 관련, 아주 유연하게 대처해왔음.’
이 비망록에 따르면 이미 이때 미국은 한국의 핵 보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한국이 현재 진행중인 핵 보유 계획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망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국내 재처리 능력을 갖추기 위한 현재 계획을 포기하는 쪽으로 한국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스나이더 주한 대사에게 전달된 지난번 메시지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지역 내 시설을 사용할 것으로 보임. 가능하면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 설치될 그 지역 플랜트는 향후 재처리 시설을 필요로 하게 될 한국이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건을 갖추게 될 것임.’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선택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고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국이 대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고 다른 핵 공급국들(캐나다와 프랑스)이 우리에게 기꺼이 협력하기로 한 점에 근거, 현 단계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상대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음.
(1)한국의 국내 재처리 계획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그 계획이 계속 진전될 경우 미국의 핵 물질 지원, 특히 고리 원자로 2호기를 위한 수출입은행의 차관 제공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임.
(2)계획된 파일럿 재처리 플랜트를 진척시키지 말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는 한편,
(3)동아시아 내 다국적 지역 재처리 플랜트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안을 지지하도록 제안함.
단, 현 단계에서는 우리가 동원할 방법이나 또는 한국 외 지역에 설치될 다국적 플랜트에 대한 우리의 기대 사항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는 없음.’
위의 세 가지 방안 가운데 미국이 역점을 둔 것은 한국의 고리 원자로 2호기에 대한 지원이었다. 당시 한국은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경제 개발을 추진중인 한국이 직면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에너지 수급이었다.
1975년 7월24일, 스나이더 주한 미 대사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비밀 전문에는 당시 한국의 에너지 문제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다.
‘한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외부 에너지 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것임. 향후 10년간 이 의존도는 더 심각해질 것임. 에너지 문제와 관련, 미국은 한국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재원을 가지고 있음. 한미간의 새로운 관계 증진에서 한국이 이 재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가 주도권을 활용할 수 있음.
한국은 최근 들어 원자로 개발을 통해 에너지 다양화를 위한 계획을 수립했으며, 동시에 핵 무기 능력 개발을 위한 야망을 가지고 핵 계획도 입안해 가지고 있음. 이 두 가지 문제와 관련, 한국이 핵 무기 보유 야망을 분명히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우리가 평화적 핵 에너지 사용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제안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임.’
에너지를 받겠느냐 아니면 핵 무기를 갖겠느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해야 한다는 것이 스나이더 대사의 분명한 입장이었다. 에너지 부족분을 채워줄 고리 원자로 1, 2호기도 미 수출입은행의 차관 없이는 가동이 불가능했다. 고리 원자로 지원을 위한 수출입은행의 차관은 미국이 한국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열쇠이기도 했다.
한국의 고민은 에너지 부족만이 아니었다. 경제 사정도 악화일로였다. 공식적인 해외 원조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출도 줄어들고 있었다. 외국으로부터의 자본 유치도 시급한 현안이었다. 스나이더 대사의 보고서는 한국에 대한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경제 관계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음. 기본적인 해결책은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의 재정 원조로부터 사적 자본 유입에만 의존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것임. 현 상황에서 미국은, 크게 늘어나는 에너지 비용과 세계 수출 시장의 퇴조로 인한 지불 부족분을 지원하기 위해 공적-사적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강화해야 할 것임.’
에너지 부족, 여의치 않은 외국 자본 유치, 수출 감소 등 핵 개발을 추진중이던 당시 박정희 정권은 악조건과 싸우고 있던 와중이었다. 미국은 이런 박정희의 속사정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고, 더구나 한국의 고민을 덜어줄 해결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데 우리는 적극적인 방법과 미온적인 방법의 두 가지 대안을 고려해왔음. 미온적인 대안은 한국 정부에 더 이상 접근하지 않되, 미국산 원자로에 한해 사용 후 연료의 재처리 거부 권한을 고수하는 방법임. 그러나 이 방법은 한국이 프랑스제 재처리 플랜트를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다른 사용 후 연료를 손에 쥐는 것을 막거나 중지할 수가 없음. 따라서 한국에 접근하지 않는 방법은 핵 확산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불식하지 못하는 것임.
이 방법은 또한 수출입은행의 차관 제공과 이에 따른 웨스팅하우스 사의 제품 판매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음. 의회의 반응도 고려해야 하며, 캐나다와 프랑스, 한국의 기대치에 못 미칠 가능성이 있음.’
결국 미국은 한국 정부에 미국산 원자로의 재처리 거부권만을 행사하는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접근법을 버리고 위의 세 가지 방법, 즉 적극적인 개입 방법을 선택했다. 이 방안은 스나이더 주한대사에게 전달되었고 미국 내에서는 국방부와 CIA, 국가안보회의와 에너지개발 부 등 부처간 협의를 거쳐 확정되었다.
선택의 폭은 좁았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프랑스, 미 의회에 최대한의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미국의 이러한 대응책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은 지난 회에 공개한, 국무부에서 작성한 다섯 장짜리 조치 비망록(1975년 7월)이다. ‘캐나다와 프랑스의 입장’이라는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3월에 나온 정책 지침에 근거, 캐나다와 접촉을 했음. 일반적인 핵 수출 정책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바, 캐나다는 한국이 캐나다에서 구입한 원자로에서 사용 후 연료를 재처리하기 전에 캐나다의 승낙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음. 캐나다는 또한 국내의 어떠한 재처리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유보 조치를 해놓았으며, 향후 한국에 대한 핵 지원 정책은 우리와 협조하겠다는 점을 밝혔음.
최근 핵 공급국과의 런던 회동에 앞서 프랑스와도 논의가 있었음. 한국 정부에 프랑스로부터의 재처리 플랜트 구입 계획을 단념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설명했음.’
미국은 다음 조치로 한국의 핵 에너지 관리들을 은근히 조이고 들었다.
‘한국 정부의 원자력 에너지 관리들에게 자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협력 합의서 규정에 한국에 공급된 미국산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 후 연료의 재처리를 거부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음. 협력 합의서 규정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를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했으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그들의 언급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재처리에 대해 총괄적인 의문 사항이 있으면 논의하기를 바란다고 했음.
합의서 해석에 대한 그들의 확인 내용을 접수한 후에는, 핵통제위원회(Nuclear Regulatory Commission)에 고리 1호기 원자로에 공급할 기존의 농축 연료(8월에 공급될 예정) 수출 허락서를 발행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임.
지금까지 한국은 캐나다가 핵 확산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과 재처리 문제에 대해 우리가 취한 예비적인 조치와 관련, 아주 유연하게 대처해왔음.’
이 비망록에 따르면 이미 이때 미국은 한국의 핵 보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한국이 현재 진행중인 핵 보유 계획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망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국내 재처리 능력을 갖추기 위한 현재 계획을 포기하는 쪽으로 한국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스나이더 주한 대사에게 전달된 지난번 메시지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지역 내 시설을 사용할 것으로 보임. 가능하면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 설치될 그 지역 플랜트는 향후 재처리 시설을 필요로 하게 될 한국이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건을 갖추게 될 것임.’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선택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고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국이 대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고 다른 핵 공급국들(캐나다와 프랑스)이 우리에게 기꺼이 협력하기로 한 점에 근거, 현 단계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상대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음.
(1)한국의 국내 재처리 계획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그 계획이 계속 진전될 경우 미국의 핵 물질 지원, 특히 고리 원자로 2호기를 위한 수출입은행의 차관 제공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임.
(2)계획된 파일럿 재처리 플랜트를 진척시키지 말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는 한편,
(3)동아시아 내 다국적 지역 재처리 플랜트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안을 지지하도록 제안함.
단, 현 단계에서는 우리가 동원할 방법이나 또는 한국 외 지역에 설치될 다국적 플랜트에 대한 우리의 기대 사항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필요는 없음.’
위의 세 가지 방안 가운데 미국이 역점을 둔 것은 한국의 고리 원자로 2호기에 대한 지원이었다. 당시 한국은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경제 개발을 추진중인 한국이 직면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에너지 수급이었다.
1975년 7월24일, 스나이더 주한 미 대사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비밀 전문에는 당시 한국의 에너지 문제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다.
‘한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외부 에너지 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것임. 향후 10년간 이 의존도는 더 심각해질 것임. 에너지 문제와 관련, 미국은 한국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재원을 가지고 있음. 한미간의 새로운 관계 증진에서 한국이 이 재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가 주도권을 활용할 수 있음.
한국은 최근 들어 원자로 개발을 통해 에너지 다양화를 위한 계획을 수립했으며, 동시에 핵 무기 능력 개발을 위한 야망을 가지고 핵 계획도 입안해 가지고 있음. 이 두 가지 문제와 관련, 한국이 핵 무기 보유 야망을 분명히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우리가 평화적 핵 에너지 사용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제안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임.’
에너지를 받겠느냐 아니면 핵 무기를 갖겠느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해야 한다는 것이 스나이더 대사의 분명한 입장이었다. 에너지 부족분을 채워줄 고리 원자로 1, 2호기도 미 수출입은행의 차관 없이는 가동이 불가능했다. 고리 원자로 지원을 위한 수출입은행의 차관은 미국이 한국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열쇠이기도 했다.
한국의 고민은 에너지 부족만이 아니었다. 경제 사정도 악화일로였다. 공식적인 해외 원조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출도 줄어들고 있었다. 외국으로부터의 자본 유치도 시급한 현안이었다. 스나이더 대사의 보고서는 한국에 대한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경제 관계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음. 기본적인 해결책은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의 재정 원조로부터 사적 자본 유입에만 의존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것임. 현 상황에서 미국은, 크게 늘어나는 에너지 비용과 세계 수출 시장의 퇴조로 인한 지불 부족분을 지원하기 위해 공적-사적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강화해야 할 것임.’
에너지 부족, 여의치 않은 외국 자본 유치, 수출 감소 등 핵 개발을 추진중이던 당시 박정희 정권은 악조건과 싸우고 있던 와중이었다. 미국은 이런 박정희의 속사정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고, 더구나 한국의 고민을 덜어줄 해결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데 우리는 적극적인 방법과 미온적인 방법의 두 가지 대안을 고려해왔음. 미온적인 대안은 한국 정부에 더 이상 접근하지 않되, 미국산 원자로에 한해 사용 후 연료의 재처리 거부 권한을 고수하는 방법임. 그러나 이 방법은 한국이 프랑스제 재처리 플랜트를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다른 사용 후 연료를 손에 쥐는 것을 막거나 중지할 수가 없음. 따라서 한국에 접근하지 않는 방법은 핵 확산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불식하지 못하는 것임.
이 방법은 또한 수출입은행의 차관 제공과 이에 따른 웨스팅하우스 사의 제품 판매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음. 의회의 반응도 고려해야 하며, 캐나다와 프랑스, 한국의 기대치에 못 미칠 가능성이 있음.’
결국 미국은 한국 정부에 미국산 원자로의 재처리 거부권만을 행사하는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접근법을 버리고 위의 세 가지 방법, 즉 적극적인 개입 방법을 선택했다. 이 방안은 스나이더 주한대사에게 전달되었고 미국 내에서는 국방부와 CIA, 국가안보회의와 에너지개발 부 등 부처간 협의를 거쳐 확정되었다.
선택의 폭은 좁았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프랑스, 미 의회에 최대한의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