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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2>|1976년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 관련 문건

“북한은 반드시 대가 치러야 한다”

키신저 국무장관 초강경 발언…항모 발진·핵 전투기 배치 등 18개항 논의

“북한은 반드시 대가 치러야 한다”

“북한은 반드시 대가 치러야 한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 발생한 이른바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 때 미국은 북한에 대한 응징 조치로 미루나무 절단 작전(폴 버니언 작전)을 수행하면서 미 대통령이 전쟁 대권을 발동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1953년 정전 이후 이때만큼 일촉즉발의 극한상황까지 치달았던 적은 없다.

공동경비 구역 내의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지휘하던 보니파스 미군 대위와 배럿 중위가 북한군 장교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다음날,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극비 국가안보회의가 열렸다. 76년 8월18일 오후 3시47분(미 동부 시간)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 국가안보회의의 워싱턴특별대책반(WSAG) 모임은 1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이때의 회의록은 1995년 6월 미 정보공개법에 의해 공개된 9장짜리의 2급 비밀(Secret)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 비밀 회의록에 따르면 CIA 참석자(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으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조지 부시 CIA 국장으로 추정됨)가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다. 데프콘 3(전쟁 불가피 직전 단계)를 발령할 경우, 언론과 미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살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에 대해 포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으로 회의를 주재하던 키신저는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두 명의 미국인을 죽였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고 강경한 자세를 보인다.

모든 가능한 응징 조치의 타당성을 검토한 끝에 워싱턴특별대책반은 어떤 군사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검토해, 이튿날 아침 8시에 다시 모임을 갖기로 하고 해산한다.

국무부의 키신저 장관과 찰스 로빈슨, 필립 하비브, 국방부의 윌리엄 클레멘츠와 모톤 아브라모위츠, 합동참모부(이하 합참)의 제임스 할러웨이 제독과 윌리엄 스미스 중장, CIA 2명, 국가안보회의의 윌리엄 하일랜드와 윌리엄 글라이스틴, 마이클 혼블로 등 12명으로 구성된 이 대책반이 검토할 18개항의 현안은 포드 대통령 기념도서관 자료실에서 입수된 비밀 해제 문서(95년 4월)에 기록되어 있다.



이 18개항의 검토안은 판문점 사건에 대한 대응 조치의 일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는 미 행정부가 어떤 법적 군사적 정치적 고려를 하며,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 어떤 절차를 거치는가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워싱턴특별대책반(WSAG)의 고려 사항

1. 미드웨이 항공모함을 동해로 발진시켜야 하는가(이 문서에서 동해는 Sea of Japan으로 표기되어 있음).

2. F-111 전투기를 남한에 배치해야 하는가(F`-`111은 핵무기를 적재한 전투기로 당시 미 공군이 보유한 최첨단 기종이었음).

3. 남한에서 B-52 폭격기의 폭탄 투하 훈련 비행을 실시해야 하는가.

4. 3번 항에 대한 대답이 ‘yes’일 경우, B`-`52는 공격용 병기를 탑재해야 하는가. 참고: 비행 계획 항로는 북한의 지대공 미사일과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바깥이어야 하며, 합참은 폭탄 투하를 허락하는 다른 조건도 추진할 것.

5. 합참이 1회 이상의 군사적 응징을 해야 하는가.

6. 합참이 추진 중인 조건 외에 특히 북한이 전시 태세를 발령할 경우 다른 군사 행동도 취해야 하는가.

7. 전쟁비상대권법(War Powers Act) 하에서 공식적인 의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가.

8. 의회에 어떤 비공식적 심의안을 발의해야 하는가.

9. CIA가 지미 카터에게 브리핑을 해야 하는가(지미 카터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음).

10. 언제 NATO 동맹국들에 통보해야 하는가.

11. ANZUS 동맹국 및 필리핀 태국에 통보해야 하는가 (ANZUS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3국 동맹체임).

12. 기타 필요한 외교 조치는 무엇인가. 예를 들면 소련 중국 등에 대한 외교 조치.

13. 공동경비 구역 내 미루나무 가지치기와 관련, 다음 세 가지 조건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북한에 사전 통보 없이 빠른 시간 안에 진행시킴

-북한과 언론에 사전 통보함

-행동 보류

14. 유엔사령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서를 보내야 하는가.

15. 안전보장이사회 개최 등 별도의 유엔 조치는?

16. 북한의 가능한 군사 행동 또는 도발에 대처해 어떤 예방책을 취해야 하는가.

-북한의 공격 가능 목표에 대한 정보 재검토 및 정찰 활동

-공동경비 구역 내 상황 파악

-전방 배치군 보강

17. 공보 및 외교 활동의 범위 및 강도 결정.

-데프콘 3 발령 및 F`-`4 배치

-사건 현장 사진 활용(목요일 17:00시에 워싱턴 도착)

-북한의 전시 태세 발령에 대응할 성명서

18. 피살 미군 장교들에 대한 경의 표시는 어느 정도의 고위급 선으로 결정해야 하는가.

A4 용지 두 장에 적힌 이 18개항의 검토 사항 가운데 실제 시행에 옮겨진 것은 일부분일 뿐이다. 북한은 김일성 친서를 통해 즉각 군사정전위원회에 ‘유감’을 표시했고, 포드 행정부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 대규모의 군사 응징 조치를 보류했다.

그러나 판문점 사건 사흘 뒤인 8월21일 오전 7시, 미루나무 절단 작전을 전개하면서 미군은 위 18개항 가운데 미드웨이 항모 발진, F`-`111 전투기와 B`-`52 폭격기 비행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군사 시위를 벌였다.

판문점 사건과 관련,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비밀문서는 ‘한국 활동반 행동 도표’(Korean Working Group Action Spread Sheet)라는 제목이 붙은 행동 계획서다. A4 용지 4장짜리의 이 비밀문서들은 이 18개항의 검토 사항을 기준으로 ‘조치’(action) ‘조치 완료’ ‘조치 진행’ ‘계류’ 등 4개 범주로 된 일종의 진행 검토표인 셈이다.

이 문건의 17번 ‘조치 완료’ 항목은 미 합참이 주한 유엔군 사령관 스틸웰이 김일성에게 보내기로 했던 편지를 발송하지 말 것을 권했다는 점과, 소련 중국 등에 대한 외교 통로는 국무부의 하비브가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주간동아 2000.08.17 247호 (p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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