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갈 때마다 만화코너에 한번쯤 눈길이 가는 사람이라면, 비슷비슷한 판형과 이름의 만화잡지들 속에서 문득 ‘이게 뭐지?’ 하고 눈여겨본 잡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화끈’이라는 이 특이한 이름의 잡지를 펼쳐보면 익히 들어보지 못한 낯선 만화가들의 낯선 만화로 가득하다. 그냥 끄적거린 낙서 같기도 하고, 공포영화처럼 기괴하고 묘하게 에로틱한 이 만화들을 보면, 누군가는 그 새로움에 흥미를 느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치밀어오르는 거부감 때문에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화끈’은 ‘저예산 독립만화’를 모토로 만들어진 만화잡지다. 96년 6월 ‘우리 만화를 위한 연대모임’(우만연) 소속의 젊은 만화가들이 모여 처음 내놓은 이 잡지는 8호까지 발간되다 중단된 후, 웹진 ‘핫툰’으로 변신했다가 지난 6월 말 재창간해 최근 2호를 발간했다. 이 잡지의 편집장 모해규씨(35)의 말에 따르면 ‘저예산’이란 멋있는 선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 반영이다. 이들은 상업자본의 흐름에서 독립해 창작의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 적은 돈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작품창작, 제작, 유통을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작가들의 역량 부족과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혀 웹진으로 전환,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였는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종이잡지를 만들어 파는 게 필요했다. 독립만화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 독자적인 상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하에 재창간을 하게 됐다.”
재창간한 ‘화끈’의 행보는 소규모 독립만화 잡지운동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독립만화’라는 개념은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히피문화의 흐름에 맞춰 파격적인 만화를 선보였던 로버트 크럼이 그 시초. 버릇없고 불만 많은 바람둥이 고양이를 소재로 한 크럼의 만화 ‘프리츠’는 무기력과 혼돈의 시절을 보냈던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통렬한 독설과 비꼼으로 기성 사회의 질서와 인간관계를 조롱한다는 점에서 이들 독립만화는 기존의 가족만화나 영웅만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단순하고 어설픈 선을 사용해 막 그린 그림처럼 보이는 것도 특징.
국내 독립만화 시대는 90년대 들어 홍익대 만화동아리 ‘네모라미’와 ‘만화실험 봄’ ‘화끈’ 등 젊은 만화가 그룹이 등장하면서 개막되었다. 해방 이후 대본소 만화체계로 유지되던 만화계는 90년대 들어 소년 만화잡지 중심으로 재편되었는데, 몇몇 유명 만화출판사가 주도하는 만화시장을 거부하고 등장한 것이 이들 독립만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만화가들이 주류 상업만화와는 다른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고, 이를 자비로 출판하는 등 출판방식도 예전과 달랐다. 이들은 어설픈 듯한 선의 사용과 개성 있는 칸의 연출로 획일화된 상업만화 스타일에 도전했고, 성이나 불쾌하게 여겨질수도 있는 주제를 과감하게 다루면서 나름의 작품세계를 형성했다.
90년 동료 만화가들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만화 무크지 ‘만화실험 봄’을 만든 신일섭씨(30)는 그 뒤 97년 격월간지 ‘히스테리’를 창간했고 99년 이를 웹진 ‘코믹스’로 전환해 지금껏 운영해오며 언더그라운드 만화계를 지키고 있는 인물. 그는 ‘낙서만화’를 통해 사회현실을 ‘까발리고’ 상업만화에 대항하는 의미로 고의적으로 왼손으로 그린 잘 못 그린 만화를 선보이고 있다. 신씨 역시 ‘코믹스’를 다시 종이잡지로 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예전에는 독자들 자신이 인디 만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웹진은 사람들에게 이런 만화를 알리고 널리 소개할 수 있는 장이었다.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백이면 백, 상업만화나 일본만화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인디 만화 독자층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독자들 역시 젊은 작가들처럼 획일화된 상업만화에 지쳐 있고 새로운 작품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화가 이희재씨의 문하생을 거쳐 상업잡지를 통해 만화가로 데뷔한 신씨는 좀더 자유로운 만화창작 매체의 필요성을 절감, 사재를 털고 빚을 내서 잡지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돈을 벌기는커녕 갈수록 빚만 쌓이는 생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는 결코 ‘비주류 독립만화가’의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만화적 감수성을 도입한 인디 밴드 활동, 설치만화, 만화 퍼포먼스, 만화드라마 제작 등 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는 ‘포르노씨’(신일섭씨의 별칭)의 도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만연에 소속된 만화가들 역시 일본만화, 오락성 짙은 상업만화와는 다른 만화를 선보이겠다는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좋은 만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만화아카데미를 열고 각종 심포지엄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마련에 힘쓰고 있다.
“이현세씨 사건에서 보듯이 만화에 대한 법률적 철퇴는 만화 창작과 소비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칩니다. 만화를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만연하고, 군사정권식 검열체제가 작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해 창의력을 말살시키는 것이죠. 대안만화, 언더만화 등 자유롭고 다양한 만화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우만연 김시내 실장의 말이다.
치열한 상업만화 시장에 용감하게 도전하고 있는 독립만화는 노쇠한 만화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 독립만화가 가지는 싱싱한 생명력은 우리 만화문화를 풍요롭게 할 귀중한 씨앗이다.
“대중예술의 힘은 다수에게 사랑받는 주류 상업예술과 그것을 견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언더그라운드 예술이 공존할 때 비로소 발휘된다. 독자들은 다양한 만화를 보고 싶어하며, 그러한 만화가 시장에 나올 때 우리 만화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독립만화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자들이다.” 만화평론가 박인하씨의 말처럼 지금은 독립만화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화끈’은 ‘저예산 독립만화’를 모토로 만들어진 만화잡지다. 96년 6월 ‘우리 만화를 위한 연대모임’(우만연) 소속의 젊은 만화가들이 모여 처음 내놓은 이 잡지는 8호까지 발간되다 중단된 후, 웹진 ‘핫툰’으로 변신했다가 지난 6월 말 재창간해 최근 2호를 발간했다. 이 잡지의 편집장 모해규씨(35)의 말에 따르면 ‘저예산’이란 멋있는 선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 반영이다. 이들은 상업자본의 흐름에서 독립해 창작의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 적은 돈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작품창작, 제작, 유통을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작가들의 역량 부족과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혀 웹진으로 전환,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였는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종이잡지를 만들어 파는 게 필요했다. 독립만화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 독자적인 상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하에 재창간을 하게 됐다.”
재창간한 ‘화끈’의 행보는 소규모 독립만화 잡지운동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독립만화’라는 개념은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히피문화의 흐름에 맞춰 파격적인 만화를 선보였던 로버트 크럼이 그 시초. 버릇없고 불만 많은 바람둥이 고양이를 소재로 한 크럼의 만화 ‘프리츠’는 무기력과 혼돈의 시절을 보냈던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통렬한 독설과 비꼼으로 기성 사회의 질서와 인간관계를 조롱한다는 점에서 이들 독립만화는 기존의 가족만화나 영웅만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단순하고 어설픈 선을 사용해 막 그린 그림처럼 보이는 것도 특징.
국내 독립만화 시대는 90년대 들어 홍익대 만화동아리 ‘네모라미’와 ‘만화실험 봄’ ‘화끈’ 등 젊은 만화가 그룹이 등장하면서 개막되었다. 해방 이후 대본소 만화체계로 유지되던 만화계는 90년대 들어 소년 만화잡지 중심으로 재편되었는데, 몇몇 유명 만화출판사가 주도하는 만화시장을 거부하고 등장한 것이 이들 독립만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만화가들이 주류 상업만화와는 다른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고, 이를 자비로 출판하는 등 출판방식도 예전과 달랐다. 이들은 어설픈 듯한 선의 사용과 개성 있는 칸의 연출로 획일화된 상업만화 스타일에 도전했고, 성이나 불쾌하게 여겨질수도 있는 주제를 과감하게 다루면서 나름의 작품세계를 형성했다.
90년 동료 만화가들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만화 무크지 ‘만화실험 봄’을 만든 신일섭씨(30)는 그 뒤 97년 격월간지 ‘히스테리’를 창간했고 99년 이를 웹진 ‘코믹스’로 전환해 지금껏 운영해오며 언더그라운드 만화계를 지키고 있는 인물. 그는 ‘낙서만화’를 통해 사회현실을 ‘까발리고’ 상업만화에 대항하는 의미로 고의적으로 왼손으로 그린 잘 못 그린 만화를 선보이고 있다. 신씨 역시 ‘코믹스’를 다시 종이잡지로 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예전에는 독자들 자신이 인디 만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웹진은 사람들에게 이런 만화를 알리고 널리 소개할 수 있는 장이었다.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백이면 백, 상업만화나 일본만화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인디 만화 독자층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독자들 역시 젊은 작가들처럼 획일화된 상업만화에 지쳐 있고 새로운 작품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화가 이희재씨의 문하생을 거쳐 상업잡지를 통해 만화가로 데뷔한 신씨는 좀더 자유로운 만화창작 매체의 필요성을 절감, 사재를 털고 빚을 내서 잡지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돈을 벌기는커녕 갈수록 빚만 쌓이는 생활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는 결코 ‘비주류 독립만화가’의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만화적 감수성을 도입한 인디 밴드 활동, 설치만화, 만화 퍼포먼스, 만화드라마 제작 등 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는 ‘포르노씨’(신일섭씨의 별칭)의 도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만연에 소속된 만화가들 역시 일본만화, 오락성 짙은 상업만화와는 다른 만화를 선보이겠다는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좋은 만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만화아카데미를 열고 각종 심포지엄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마련에 힘쓰고 있다.
“이현세씨 사건에서 보듯이 만화에 대한 법률적 철퇴는 만화 창작과 소비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칩니다. 만화를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만연하고, 군사정권식 검열체제가 작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해 창의력을 말살시키는 것이죠. 대안만화, 언더만화 등 자유롭고 다양한 만화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우만연 김시내 실장의 말이다.
치열한 상업만화 시장에 용감하게 도전하고 있는 독립만화는 노쇠한 만화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 독립만화가 가지는 싱싱한 생명력은 우리 만화문화를 풍요롭게 할 귀중한 씨앗이다.
“대중예술의 힘은 다수에게 사랑받는 주류 상업예술과 그것을 견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언더그라운드 예술이 공존할 때 비로소 발휘된다. 독자들은 다양한 만화를 보고 싶어하며, 그러한 만화가 시장에 나올 때 우리 만화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독립만화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자들이다.” 만화평론가 박인하씨의 말처럼 지금은 독립만화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