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0

2000.02.03

시험대 오른 한국정치

  • 입력2006-07-06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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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대 오른 한국정치
    한국 정치의 새 천년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동반한 시민단체의 낙선-낙천운동과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당혹스러운 대응으로 시작되었다. 당초 시민단체들이 캠페인을 시작하자 정부와 여당은 위법성 시비를 제기하는 가운데 검찰이 칼 뽑을 준비를 시작했고, 야당은 시민단체들의 운동에 체질적 반감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여당의 태도를 보아 일부 동조하는 듯한 시늉을 하고 있었다. 정부와 검찰의 경고, 국회의원들의 위협에 뒤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이 나왔으나 시민단체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운동을 시민불복종운동으로 확전시키고 대다수의 국민이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돌연 “시민단체 낙선운동을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김대중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

    갑자기 상황은 역전되었다. 여당에서는 시민단체가 선정한 낙천 대상자를 공천에 반영하겠다고 나서고 야당은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면서도 대통령의 두둔발언을 반법치주의적 법의식의 발로이자 시민단체의 운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대중인기주의(populism) 정치행태라고 비난하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거스르기 힘든 ‘정치적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고 시민단체들은 기성정치권에 이은 ‘제3의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언뜻 보면 새 천년 한국정치의 지형이 갑자기 눈에 띄게 변모한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한국정치가 어디로 갈지, 과연 ‘유권자 선거혁명’이 새 천년을 맞이할 때까지도 해결 못한 모순과 폐습을 혁파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든 게 미지수이다. 갈 길이 너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앞으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의 위법성 시비는 선거법개정을 통해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새 천년 벽두에 시민단체들이 거둔 작은 성공은 한국정치의 일대혁신을 위한 사회적 쟁의를 향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그 첫걸음이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좀더 긴 호흡과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그 성과를 제도화하여 정착시키는데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결국 한국정치의 1인지배구조 또는 보스중심의 독과점구조, 그리고 그 폐단을 가져온 핵심고리인 공천제도의 개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낙천-낙선운동은 정치개혁 마지막 기회”

    1인지배구조의 핵심은 비민주적인 공천제도에 있다. 공직선거 후보자들의 선출을 중앙당에서 좌지우지하고, 그것도 총재가 결재권을 독점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밀실공천, 금권-지연-계파에 의한 정실공천이라는 한국정치의 시대착오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상향식 후보자 선출이 지역의 정치적 낙후성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식의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당분간은 공천제도를 유지하되 중앙당에서 공정하게 운영하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의 허구성도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다. 오죽하면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운동에 나섰겠는가. 공천대상자의 자격, 공천과정의 투명성, 공정성, 공천결과의 적정성을 감시하고 공천을 받은 부적격자들을 낙선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비민주적 공천제도 자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도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 참여 민주주의를 통한 정치개혁의 실천, 민주주의의 재발견을 향한 역사적 실험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

    정치권도, 여야를 가리지 말고 이 엄숙한 역사적 소명을 경청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요구에 편승하여 오는 총선에서 좀더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려는 정치적 의도들로부터 단호히 결별하였음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이득이 될지는 몰라도 결국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지연시키는 대죄를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전체가 불신임을 받은 지경에 이르러 누가 얼마나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며 목청을 높인다고 해서 차가운 대중의 시선을 끌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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