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0

2000.02.03

인터넷 독립군이 몰려온다

인터넷 방송 창업 봇물… 디지털카메라에 스튜디오 하나면 “나도 방송국 사장”

  • 입력2006-07-06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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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독립군이 몰려온다
    지난 98년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라는 청소년 영화를 직접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파여중 방송반 유소라양(영파여고 1학년). 그 사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유양이 이번에 선택한 무기는 인터넷이다. 유양을 비롯한 20여명의 중고생들은 1월29일 청소년 인터넷방송(www.tvtong.com)을 개국한다. 청소년영상제작단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중3에서 고3까지의 학생이 모여 스스로 제작-연출하고 편집까지 하는 방송국을 탄생시킨 것이다.

    인터넷의 대중화와 디지털 편집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종류의 인터넷 방송들이 출현하는 가운데 ‘우리 손으로 만들고 우리 손으로 보급하자’는, 이른바 ‘인디 방송’들이 뜨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중파 방송 위주로 짜여 있는 방송환경에서 소외되어온 대표적 집단인 중고생들이 만드는 청소년 인터넷 방송이야말로 ‘인디 방송’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개인사업을 꿈꾸는 사람들의 관심도 폭증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종합 인터넷 방송업체인 캐스트서비스에는 일주일에 30~40건의 창업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관심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인터넷 방송 개국을 위해 자료나 교육을 요청해 오는 곳은 이제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학교,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훨씬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인터넷 방송을 아무나 개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백만원대의 디지털카메라가 필수적이고 3000만~4000만원 정도 소요되는 스튜디오 시설도 하나쯤 갖춰야 한다. 아무런 경제적 기반이 없는 청소년들이 방송국을 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서울시를 비롯한 관련단체들의 경제적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 스튜디오 시설을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제공했고 전교조 참교육 영상집단은 이 단체에서 소유하고 있는 6mm 디지털카메라를 중고생들의 손에 들려 내보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일단 인터넷에 있어서만큼은 어른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 정보를 찾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어른들을 따돌린지 오래다. 대진전자공예고등학교 1학년 이주희양은 “전산과 학생들 같은 경우는 대부분 개인 홈페이지를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 라고 말했다. 또 청소년들이 그들만의 시각으로 만들어내는 콘텐츠 역시 공중파 방송의 교과서적인 틀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인터넷방송 개국을 주도한 유소라양이 지난해 말 도쿄 비디오페스티벌에 출품해 최우수상을 받았던 작품 ‘커밍 아웃’의 소재는 놀랍게도 여성들간의 동성애 문제였다.



    여러 가지 인디방송 중에서도 청소년방송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런 ‘파격성’ 때문이다. 참교육영상집단 대표인 김종현교사는 “KBS 인터넷 방송국을 비롯한 30여군데 인터넷 방송에서 청소년들이 만든 영상물만 제공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편집권을 주지 않을 바에야 청소년들이 만든 참신한 영상물을 남의 손을 빌려 유통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대형 공개 스튜디오와 편집, 녹음 장비, 송신시설 등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야만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지상파 방송시스템 아래서는 모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오는 3월 비디오 저널리스트 홈페이지(www.videojournalist.net)를 여는 비디오 저널리스트 장순길씨가 꿈꾸는 인터넷 방송은 한 마디로 동네 방송국이다. 장롱 속에 모셔놓고 아이들의 돌 잔칫날에나 꺼내 찍는 캠코더를 모두 거리에 내놓아 보자는 것이다. 수십만대가 넘는 소형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구석구 석의 이야기들을 사이버 공간상에 풀어놓으면 무엇보다 훌륭한 지역 뉴스 채널이 될 것이라는 구상이다. 장씨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검토하던 국민주방송이 물건너간 것은 결국 엄청난 예산 때문이 아닌가. 인터넷이라면 그 정도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그만한 효과를 갖는 대안매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흔히 ‘1인 저널리즘’으로 불리는 비디오 저널리즘의 유통경로와 한계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던 장씨에게 인터넷은 그야말로 모범답안을 제시해 준 셈이었다. 장씨는 “최소한의 기술적 인프라와 아날로그적 상상력만 있으면 언젠가는 KBS 밤 9시 뉴스나 MBC 뉴스데스크도 이길 수 있다”고 예언했다.

    인터넷 방송은 지금부터라도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다. 유아용 프로그램 전문채널을 만들 수도 있고, 성인용 채널이나 맞선용 채널, 교육용 채널 등 특정 대상에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생산해 낼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채널은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한다. 인터넷이라는 매체 자체가 TV와 달리 처음부터 쌍방향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수용자에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 제작자로 참여하게 된다. 이 말을 방송이라는 매체에 대입시키면 시청자가 곧 작가, 배우, 평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청소년 인터넷 방송에 참여한 청소년영상제작단 이민선대표(상일여고 3학년)는 “수많은 중고생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만큼 단순히 인터넷 방송 운영진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일반 청소년들이 방송제작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큐멘터리 전문 인터넷 방송(www. zestv.com)을 목표로 이미 도메인을 등록해 놓은 케이블TV CTN의 김진수PD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서 그들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 방송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많은 방송인들이 인터넷 독립방송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컴퓨터 한 대로 손쉬운 편집이 가능하다는 이점 때문이다. 영상의 순서에 따라 편집하는 아날로그 편집과는 달리 디지털 편집은 각 영상을 파일 조각들로 쪼개서 자유자재로 분할하거나 끼워 넣을 수 있다. 게다가 값비싼 편집장비는 전혀 필요없다. 디지털 편집용 프로그램만 있으면 노트북 컴퓨터 한 대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인터넷 독립방송국이 활성화하는 데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뛰어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다. 개인용 PC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56K 모뎀 정도로는 양질의 동영상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초고속 통신망 접속이 가능한 일부에서만 인터넷 방송을 제대로 시청할 수 있다. 인터넷방송협회 안성철경영정보실장은 “대형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중계할 경우, 트래픽이 폭증하거나 서버가 다운되는 바람에 시청이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초고속 정보통신망 계획이 실현돼 통신속도 문제만 해결된다면 인터넷 방송은 공중파 방송을 위협할 수도 있는 대안 매체로 떠오를 전망이다. 인터넷 방송을 준비하는 ‘인터넷 독립군’들은 대안 미디어 시대를 준비하는 ‘인터넷 프런티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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