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0

2000.02.03

경품이 도박자금으로?

성인 오락실 합법과 불법 사이 … 게임점수 즉석에서 현금화 ‘손님’ 유혹

  • 입력2006-07-03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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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품이 도박자금으로?
    ‘오락실’ ‘GAME ROOM’ ‘24시간 게임랜드’…. 관광호텔에서 한적한 주택가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의 전자오락실에서 ‘경품’이 ‘도박자금’으로 바뀌고 있다.

    1월20일 밤 11시 서울 홍익대학교 부근 A게임랜드. 빠찡꼬나 슬롯머신을 변형한 그랑프리, 트로피, 스피드, 빙고, 럭키세븐 같은 성인용오락기 20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었다. 이 오락실은 동전을 넣고 일정 점수를 올리면 라이터, 화장품, 계산기 같은 경품을 제공한다. 이런 형태의 영업은 97년 정부가 트로피를 순발력과 판단력을 길러주는 오락기로 심의해주면서 합법화됐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손님에게 제공되는 경품을 업주가 현금으로 바꿔주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 오락실의 업주는 “최근 경찰이 단속을 강화하고 있어 경품환전은 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오락실도 이곳처럼 법을 잘 지킬까. 이 오락실에서 500m 떨어진 B오락실에 들렀다. 여기선 100원 당 50점의 기본점수가 주어졌다. 1만원이면 5000점으로 게임을 시작하는 셈이다. 점수를 모두 잃으면 게임은 끝나고 게임을 중단하면 그때까지 얻은 점수에 해당하는 경품이 주어진다. 이 업소는 경품을 돈으로 환전해 줬다. 게임점수가 즉석에서 현금화되기 때문에 사실상의 도박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오락실에서 경험이 많지 않은 일반인이 돈을 딸 수 있을까. 10여 차례 오락실을 찾았다는 고객 이모씨(33)가 1만원을 동전으로 바꿔 그랑프리 오락을 시작했다. ‘종’이나 ‘7’, ‘체리’ ‘젝팟’ 등의 무늬가 가로나 세로, 대각선으로 일치하면 점수가 올라가고 그렇지 않으면 베팅점수를 잃는 방식이다.

    이씨는 1회 베팅점수를 64점으로 잡았다. 1회 베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도 안된다. 20여회 동안 한 번도 일치하지 않아 순식간에 1300여점을 잃었다.



    마침내 가로로 777이 떴다. 720점을 얻었다. 이후 30여회를 내리 진 끝에 다시 720점짜리가 터졌다. 이번엔 저축하지 않고 이 점수로 더블베팅을 시도했다. 오락기가 제시하는 카드가 7 미만의 숫자인지 7 이상의 숫자인지를 알아맞히면 두배인 1440점을 얻게 된다. 50%라는 비교적 높은 확률로 큰 점수를 일시에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여서 이럴 경우 더블베팅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지고 말아 720점을 도로 내놓아야 했다. 이제 그의 남은 점수는 2500여점. 10여분만에 5000원을 잃은 것이다.

    그는 베팅액을 100점으로 올렸다. 따라서 그에겐 최소 25회의 베팅 기회가 남은 셈이다. 무늬가 일치하면 그는 무조건 카드확인까지 들어가기로 공격적인 전략을 세웠다. 900점짜리를 더블로 튀겨 한 번 환호성을 지르긴 했지만 남은 돈을 다 잃는 데는 7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오락실의 업주는 “여기서 100점을 베팅해 5000배짜리를 터뜨린 사람을 직접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지금까지 오락실에 들러서 돈을 따고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홍익대 근처의 다른 오락실업주는 오락실의 ‘모순’을 이렇게 얘기한다. “오락 잘했다고 경품 주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반면 한 시간 유흥비가 4만∼5만원 드는데 경품을 현금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누가 오락실을 찾겠는가.” 따라서 결론은 단속기관과 업주의 숨바꼭질 게임이다.

    요즘 우리 사회엔 장사하려면 경품을 걸지 않고는 안된다는 풍토가 생겨나고 있다. 전자오락실은 이런 풍토가 낳은 해괴한 진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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